23일 EU 정상회의...'코로나 채권' 발행 합의할까?
스페인 "1조5000억 유로 기금 조성해달라"
교황 "EU, 형제애적 화합 달성할 수 있길"
전문가들 "돌파구 마련은 힘들 것" 전망
[브뤼셀=AP/뉴시스] 지난 12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 회의 중 숨을 고르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2020.4.14.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들은 23일 화상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방안을 다시 논의한다. EU는 앞서 두 번이 정상회의를 열었으나 EU 공동채권, 일명 '코로나 채권' 발행을 놓고 평행선을 그리며 갈등을 지속했다.
22일(현지시간) 유럽전문매체 유로뉴스 등은 EU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복 기금 마련을 놓고 논란을 계속하고 있다며, EU 역사상 최악의 회담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회담에서 EU 정상들은 지난 10일 재무장관 회의를 통해 합의한 5400억 유로(약 716조3000억원) 규모의 구제 대책안의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지난 2월 시작한 EU의 향후 7년간(2021~2027) 공동체 예산 계획인 '다년도 지출계획(MFF)'에 대한 논의도 이어간다.
◇스페인 "1조5000억 유로 기금 조성" vs 네덜란드·독일 "수용 불가"
코로나 채권이란 EU 회원국이 공동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공동으로 보증하는 채권이다.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 그리스 등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들은 '1조 유로(약 1332조원)'이상의 공동 채권 발행을 요구한다. 경제공동체로서 재정적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날 1조5000억 유로(약 1998조원)의 긴급자금 창설을 제안할 예정이다.
[마드리드=AP/뉴시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9일 마드리드 의회에서 연설을 하던 중 입술을 만지고 있다. 산체스 총리는 23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1조5000억 유로(약 1998조원)의 긴급자금 창설을 제안할 예정이다. 2020.4.23.
반면 코로나19 사태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관리한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공동의 책임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유럽안정화기구(ESM) 틀 내에서의 지원을 주장한다.
유럽판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불리는 ESM은 자금 지원받은 국가에 고강도 긴축 등 구조개혁을 요구한다. 그리스 역시 ESM을 통해 지원을 받은 후 강도 높은 구조개혁으로 고통을 겪었다.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는 지난 20일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ESM은 "나쁜 명성을 가진 제도"라며 거부감을 보였다.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유럽 구제금융을 통한 긴급대출은 각국이 국가 예산을 균형 있게 운용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이뤄져야 한다"한다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EU, 단순한 '하나의 시장' 이상의 공동체"
문제는 코로나 19 대응을 둘러싼 이번 갈등이 유럽의 분열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탈리아 컨설팅업체 테크네(tecne)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EU 탈퇴에 찬성한다"는 답변은 49%에 달했다. 코로나19의 위기의 순간 마스크, 방호복 등 보호장비 수출을 금지한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의 반감도 심화됐다.
부유한 국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발언도 나왔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EU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EU 내 부국이 빈국보다 코로나19의 경제부담을 더 져야한다"고 말했다.
[파리=AP/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에서 진행한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회원국의 필요에 따라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보증해, 공동의 채권를 발행할 수 있는 '코로나 채권'을 발행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엘리제궁에서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모습. 2020.4.17.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EU가 단순한 '하나의 시장' 이상임을 보여줄 '진실의 순간'"이라고 분석하며 "EU의 연대가 무너진다면 남유럽 국가에서는 (극우) 포퓰리스트에 기름을 붓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내일, 아니면 모레쯤 이탈리아와 스페인, 아마 프랑스의 몇몇 지역에서는 극우가 승기를 잡게 될 것이다"고도 부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EU의 화합과 단결을 촉구했다.
교황은 22일 온라인으로 중계된 강론에서 "지금은 우리 사이에, 또 국가 간에 매우 긴밀한 단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EU의 창시자들이 꿈꾼 '형제애적 화합'을 달성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유럽을 위해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EU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나온 교황의 메시지에 유럽 매체들은 "교황이 유럽의 분열의 염려했다"는 해석을 덧붙여 보도했다.
◇돌파구 찾기 쉽지 않을 듯
이번 EU 정상회담에서 주요한 돌파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영국 매체들의 전언이다. 기존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낮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이리시타임스는 이렇게 도출된 합의는 이후 유럽의회 위원회의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세부적으로 조율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세부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내용이 변동될 경우 사실상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코로나19 구제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경제 위기가 유로존 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EU 정상회의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쇼'를 계속 진행하는 데는 충분할 수도 있다"며 정상들의 회담에 기대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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