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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김완선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의 멋진 상상력…'영지'

등록 2020.05.26 15: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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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청소년극

[서울=뉴시스] 청소년극 '영지'. 2020.05.26. (사진=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청소년극 '영지'. 2020.05.26. (사진=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영지'의 유치원 시절에 단체사진을 촬영하는데, 그녀의 머리가 '삐딱하게' 기울어진다. 선생님이 그녀의 머리통을 잡아 가운데로 가져다 놓아도 이내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무려 3시간 동안 계속 고개가 숙여졌다. 영지는 진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이상한 아이'로 찍힌다.

1년 만에 돌아온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성열)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청소년극 '영지'는 '틀림'이 아닌 '다름'을 본다. 얄팍하고 경박한 시선으로 영지의 독특한 행동을 재단한 뒤 열한살 짜리 그녀를 함부로 '마녀'라고 낙인찍는 어른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어른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세계를 품기보다 내동댕이친다. 그 가운데서 영지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신비하면서 기괴한 공상을 키워나간다.

또래들은 '트와이스'나 '있지' 아니면 '마마무'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는 김완선. 특이한 것이 아니라 영지의 취향일 뿐이다. "나 오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춤을 추며 김완선의 '오늘밤'을 부르는 영지는 "친구들이랑 하얗게 불태우면서 놀고 싶다"고 바랄 뿐이다.

그녀에게 김완선은 마녀다. 친구가 좋아하는 마마무도 '마녀'다. "마녀라고 불린 사람들은 졸라 멋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지에게 마녀는 나쁜 꾐을 내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닌, 상상력으로 기존 상식을 넘어서는 '쿨한 개척자'다.

영지가 거듭 물구나무를 서고 싶어하는 것도 그래서 이해가 된다. "다른 세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다른 시선'의 고리들을 이어간다. 

'영지'가 평범한 연극을 넘어서는 특별한 점은 일정 서사를 강조하기보다 통통 튀는 리듬감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서사를 아찔하게 뛰어 넘는 춤, 무대 전반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선은 총천연색 무대와 잘 어울린다.

젤리를 먹는 것을 즐기는 영지는 젤리처럼 흐물흐물한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보이고, 물 빠진 수영장을 연상케 하는 무대는 영지 아지트로 곳곳에 잠망경, 사다리, 그리고 미러볼이 눈에 띈다. 

10대 초반의 이야기를 다룬 청소년극은 드물다. '영지'는 다루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세대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뒀다. 어른들의 선전도구로 사용되는 아역 스타, 학원으로 아이들을 실어 보내기만 하는 봉고차 등 아이들을 다루는 고질적 사회의 병폐도 빼놓지 않고 스쳐간다.  

[서울=뉴시스] 청소년극 '영지'. 2020.05.26. (사진=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청소년극 '영지'. 2020.05.26. (사진= 국립극단 제공) [email protected]

그래서 아이들의 상상력 넘치는 바람이 속시원하다.

"나는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의 다리를 갖고 있어. 아가미가 있어. 꼬리도 있어. 내일 달라지고 모레 또 달라질 거야"라고 영지가 외치는 순간, 아이들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은 기분좋게 산산조각난다.

 "불러오자 불어오자 심장을 불러오자"라는 아이들의 주술을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좋아하고있어'(2017)로 호평을 받은 김미란 연출, 국악 그룹 '이날치' 멤버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리듬감 있는 변주를 선보이는 장영규 음악감독, '몸의 언어'의 특별함을 체험하게 만드는 이윤정 안무가의 협업은 끈끈하다.

'마녀'보다 '요정'이라는 수식이 더 어울리는 영지 역의 박세인은 577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엉뚱한 표정부터 유연한 몸놀림까지, 영지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그녀의 갇혀 있지 않는 상상력을 몸으로 체화해낸다.

2018년 국립극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를 통해 개발됐고 작년 5월 소극장 판에서 초연했다. 국립극단이 지난 11일 오후 7시30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X의 비극'은 낭독회였던 만큼, '영지'가 코로나 19 생활방역 체제 이후 처음 공연되는 국립극단의 연극이다.
 
오는 6월 14일까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른다. 좌석 띄어앉기를 시행한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장 방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영지'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다.

29일, 6월 1일, 6월 4일, 6월 5일 오후 1시30분에 국립극단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연 현장을 생중계 송출한다. 또 6월 4일과 5일 공연 종료 후에는 온오프라인 관객과 함께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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