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화탕 3일장...서상혁 대표 "5년간 예술로 목욕시켰죠"
[서울=뉴시스] 행화탕. 2021.06.22.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Chad Park) 제공) [email protected]
"행화탕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어요. 몸의 때를 미는 곳에서 마음의 때와 정신적인 때를 벗기는 곳이 됐었죠. 그 만큼 여러 예술적 기억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행화탕을 운영해온 기획그룹 축제행성의 서상혁 대표는 최근 행화탕 주변에서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탕은 지난달 20~22일 삼일장을 치렀다. 주변 아파트 단지처럼 이 지역의 재개발을 앞두고, 건물을 보내주는 의식이었다. 행화탕은 58년생 개띠로 인격화됐다. 장례식엔 약 1000명이 다녀갔다.
행화탕은 서울 시내 드문 대안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더 특별했던 이유는 목욕탕이라는 태생 때문이다. 본래 이름도 '행화탕'이었다. 1958년 대중목욕탕으로 문을 열었다.
약 50년 간 아현동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통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찜질방이 유행하고, 2007년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2008년 폐업했다.
건물은 창고 등의 용도로 사용되며 잠 들어있다가 2016년 서 대표 등을 만나 새로운 사명(使命)을 찾았다.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사명(社命)은 젊은 예술가들의 호응을 얻었다.
[서울=뉴시스] 행화탕. 2021.06.21.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최근우) 제공) [email protected]
2018년엔 행화탕 환갑을 맞아 목욕탕을 소재로 한 공연, 전시 등을 선보였고 때수건, 탈의실 키고리 등의 굿즈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키고리는 여전히 서 대표의 손목에 감겨 있다.
그런데 장례식을 찾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을 방문하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서 대표는 "과거에 목욕탕을 이용하셨거나, 아현동 출신이거나, 평소 이 공간에 관심을 가졌지만 와보지 못하셨던 분들도 꽤 됐다"고 귀띔했다.
서 대표는 장례식을 찾은 이들에게 조심스레 방명록 작성을 권했다. 다양한 관점의 '기억'을,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서 대표는 대중이 남긴 메시지를 목록화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행화탕 장례는 끝났지만, 49재 또는 3년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어요. '3년 탈상'에 맞춰 기록을 나누고 공개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목욕탕은 거울이나 오브제가 돼 자기 자신을 반영하잖아요. 복합문화공간이던 해화탕 역시 마찬가지였죠. 타일에 방문자분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보면, 삶과 일상을 돌아보는 내용들이 묻어 있어요."
[서울=뉴시스] 서상혁 대표. 2021.06.21.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최근우) 제공) [email protected]
"2015년 건강 검진을 받으면서 '죽음'을 상정하게 됐어요. 프리랜서로서 불규칙한 삶을 살다보니, 불안이라는 요소가 끊임없이 엄습했죠. 그런데 결국은 모든 생명체가 유한해서 반짝일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것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차이를 만들고, 그러면 미래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행화탕은 사회문화적으로 '도시재생'과 맞물려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한부가 예고됐던 이곳은 사실 '삶 재생'과 더 긴밀했다. 서 대표는 행화탕이 남긴 '문화적 유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과거의 사실을 각색해 오늘의 행위를 더 가치롭게 만든 곳이 아닐까 해요. 또 제게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의미망이 된 공공재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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