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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탕 3일장...서상혁 대표 "5년간 예술로 목욕시켰죠"

등록 2021.06.22 13: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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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행화탕. 2021.06.22.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Chad Park)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행화탕. 2021.06.22.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Chad Park)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들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몸을 씻는 목욕탕으로 문을 열었고, 최근 5년간 "예술로 목욕"한 곳이다.

"행화탕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어요. 몸의 때를 미는 곳에서 마음의 때와 정신적인 때를 벗기는 곳이 됐었죠. 그 만큼 여러 예술적 기억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행화탕을 운영해온 기획그룹 축제행성의 서상혁 대표는 최근 행화탕 주변에서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행화탕은 지난달 20~22일 삼일장을 치렀다. 주변 아파트 단지처럼 이 지역의 재개발을 앞두고, 건물을 보내주는 의식이었다. 행화탕은 58년생 개띠로 인격화됐다. 장례식엔 약 1000명이 다녀갔다.

행화탕은 서울 시내 드문 대안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더 특별했던 이유는 목욕탕이라는 태생 때문이다. 본래 이름도 '행화탕'이었다. 1958년 대중목욕탕으로 문을 열었다.

약 50년 간 아현동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통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찜질방이 유행하고, 2007년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2008년 폐업했다.

건물은 창고 등의 용도로 사용되며 잠 들어있다가 2016년 서 대표 등을 만나 새로운 사명(使命)을 찾았다.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사명(社命)은 젊은 예술가들의 호응을 얻었다.

[서울=뉴시스] 행화탕. 2021.06.21.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최근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행화탕. 2021.06.21.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최근우) 제공) [email protected]

카페도 겸한 이곳에서 공연·전시 등 그간 공식적으로 선보인 프로젝트만 100여건. 사람 모양으로 얼린 크림을 커피에 반쯤 담근 '반신욕 라테' 등의 메뉴가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누리면서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2018년엔 행화탕 환갑을 맞아 목욕탕을 소재로 한 공연, 전시 등을 선보였고 때수건, 탈의실 키고리 등의 굿즈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키고리는 여전히 서 대표의 손목에 감겨 있다.

그런데 장례식을 찾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을 방문하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서 대표는 "과거에 목욕탕을 이용하셨거나, 아현동 출신이거나, 평소 이 공간에 관심을 가졌지만 와보지 못하셨던 분들도 꽤 됐다"고 귀띔했다.

서 대표는 장례식을 찾은 이들에게 조심스레 방명록 작성을 권했다. 다양한 관점의 '기억'을,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서 대표는 대중이 남긴 메시지를 목록화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행화탕 장례는 끝났지만, 49재 또는 3년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있어요. '3년 탈상'에 맞춰 기록을 나누고 공개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목욕탕은 거울이나 오브제가 돼 자기 자신을 반영하잖아요. 복합문화공간이던 해화탕 역시 마찬가지였죠. 타일에 방문자분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보면, 삶과 일상을 돌아보는 내용들이 묻어 있어요."

[서울=뉴시스] 서상혁 대표. 2021.06.21.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최근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서상혁 대표. 2021.06.21. (사진 = 축제행성(사진촬영 최근우) 제공) [email protected]

서 대표는 이 공간이 재개발로 인한 시한부임을 알고도 운영을 시작했다. 2005년 축제기획 일로 문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공간 자체는 영원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5년 건강 검진을 받으면서 '죽음'을 상정하게 됐어요. 프리랜서로서 불규칙한 삶을 살다보니, 불안이라는 요소가 끊임없이 엄습했죠. 그런데 결국은 모든 생명체가 유한해서 반짝일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것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차이를 만들고, 그러면 미래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행화탕은 사회문화적으로 '도시재생'과 맞물려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한부가 예고됐던 이곳은 사실 '삶 재생'과 더 긴밀했다. 서 대표는 행화탕이 남긴 '문화적 유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과거의 사실을 각색해 오늘의 행위를 더 가치롭게 만든 곳이 아닐까 해요. 또 제게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의미망이 된 공공재이기도 했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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