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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 헬기 사격](중)광주 시민들은 진실을 말해왔다

등록 2017.01.16 09:07:30수정 2017.01.16 09: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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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만에 공식화 한 가운데 5·18기념재단이 12일 오후 광주 서구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1980년 5월21일 오전 11시 금남로 상공을 날고 있는 헬기 사진을 공개했다. 2017.01.14.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만에 공식화 한 가운데 5·18기념재단이 12일 오후 광주 서구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1980년 5월21일 오전 11시 금남로 상공을 날고 있는 헬기 사진을 공개했다. 2017.01.14.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 만에 공식화 했다.

 끊임없이 진행됐던 보수 세력의 5·18 역사 왜곡과 폄훼 속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1980년 5월부터 지금까지 신군부와 계엄군이 국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만행을 증언하고 또 증언해왔다.

 정부기관의 헬기 사격 보고서는 진실 된 광주 정신을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공식화된 것은 1989년 2월23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청문회(광주청문회) 때였다.

 故 조비오 신부는 청문회에서 "5월21일 오후 1시30분에서 2시 사이 전남도청 쪽에서 사직공원 쪽으로 헬기가 날아가면서 번쩍하는 불빛과 함께 3차례에 걸쳐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했다.

 당시 광주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는 1994년 펴낸 책 '5·18 광주사태'에서 "21일 오후 3시15분쯤 헬기가 거리의 군중을 쏘기 시작한 이후 병원에 환자들이 몰려들었다"고 적었다.

 종교인들의 결정적 증언이었지만 군 당국은 한사코 이를 부인했다.

 지난 1995년 전두환 등의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도 헬기 사격 증언을 다수 확보했다.

 5·18 당시 3해역사 군의관(대위)으로 복무 중이었던 김모씨는 검찰에서 "5월21일 선교사로 광주에 있었던 미국인 피터슨 목사의 집을 찾았다. '어떻게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할 수가 있느냐'는 목사의 말에 상공을 보니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는데 '타다닥'하는 사격 소리가 3번 정도 들렸던 것 같고 그와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하는 불빛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이어 "헬기 동체에 부착돼 있는 기관총이나 발칸으로 사격한 것보다는 헬기 탑승자가 시민들에게 위협사격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제가 목격한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히 헬기에서 사격이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재차 강조한 그는 "당시 군 장교로 있었다. 책임이 있다면 공수부대를 파견하도록 결정한 최종 결정권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조사로 역사적인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진술 조서를 마쳤다.

 김씨 이외에 5·18 당시 적십자사 봉사 활동을 하던 이광영씨도 검찰 조사에서 "5월21일 오후 2시 헬기의 탑승자가 몸을 밖으로 내밀고 소총으로 사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5·18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지휘관들도 사실상 헬기 사격 요청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1996년 1월6일 서울지검의 진술 조서에서 당시 전교사 부사령관이었던 김기석은 '5월20일께부터 26일 사이, 황영시 육군참모 차장이 전차와 신군부 측에서 공급한 무장헬기 15대 등을 이용해서 신속히 진압작전을 수행하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어 '그 지시는 곧 전차의 발포와 무장헬기에 의한 기총소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해 법정에서는 황영시와 통화한 내용을 적어둔 1980년 당시 메모지를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황영시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

 검찰 조서에는 '헬기 사격'을 일부 인정한 진술도 있었다.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만에 공식화 한 가운데 5·18기념재단이 12일 오후 광주 서구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헬기사격을 증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2017.01.12.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만에 공식화 한 가운데 5·18기념재단이 12일 오후 광주 서구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헬기사격을 증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2017.01.12.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email protected]

 소준열 당시 전교사 사령관도 검찰에서 '각종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민가나 시민을 향해 기총사격을 한 적은 없고 다만 조선대 뒷산에서 위협사격을 한 적은 있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사실상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이다.

 헬기의 '기관총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광주시민 정모씨는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21일 동구 대의동에서 '드르륵'하고 섬광을 내뿜는 사격 소리가 3~4회 들렸다. 그 사격은 동체에 부착된 기관총에서 이뤄진 것으로 소총보다 조금 컸다. 제가 6·25 당시 전투경찰 지휘를 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기관총 소리가 틀림없다"고 진술했다.

 이 외에 시민 10여명이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헬기 기관총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언은 있지만 헬기 사격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계엄군의 기총 사격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계엄군의 헬기 사격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며 일부 보수 세력은 이를 북한군의 만행이라며 5·18을 왜곡하고 폄훼했다. 어느 순간 헬기 사격, 기관총 난사는 금기어가 됐다.

 1980년 5월 이후 37년 만에, 검찰이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린지 20여년 만에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더욱이 국과수는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행위인 '기총소사'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계엄군 헬기 사격에 있어 기총소사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헬기에 설치된 기관총으로 무차별 난사를 했을 경우 군이 민주화 시위에 나섰던 시민들을 사실상 적으로 규정하고 작전에 나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일부 '탄환'이 전일빌딩 10층 천장 공간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탄환이 발견되면 사용 총기류에 대한 규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진실규명을 위해 국과수에 추가 발굴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정수만(71)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군 기록에 따르면 1980년 5월 계엄군의 헬기에 장착된 발칸포에 1500발이 공급됐다. 안 썼다면 반납해야 하는데 반납하지 않았다"면서 "기관총은 1만759발을 사용한 것으로 돼 있다. 어디에 사용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관련해 20명이 넘는 사람들의 증언과 검찰 진술, 목격담이 있었다"며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37년 동안 묻혔던 이들의 목소리가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조사 보고서와 함께 진실을 밝히는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또 "광주 시민들은 그 동안 진실만을 말해왔던 것"이라며 "5·18 폄훼와 역사 왜곡이 멈추길 바란다. 또 사격 명령자 등 아직도 풀지 못한 그날의 진실이 보다 명확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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