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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난폭함 먼저 겪고 얻은 경험 전수…'선배 수업'

등록 2017.01.19 11: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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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선배수업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선배'는 흔히 '자신의 출신 학교를 먼저 졸업한 사람'을 뜻하지만, 요즘에는 학연과 관계없이 직장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으로도 자주 쓰인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이라는 풀이가 먼저 올라와 있다. 외형적인 높이가 아니라 덕행과 경험에서 앞서는 사람이 '선배'인 것이다.

 문제는 선배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부여되는 자격이 아니다. 특히 100세 시대, 이른바 '호모 헌드레드 시대'는 '세대 전쟁'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두터운 인구층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급격히 나이 들어가면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어떤 노년을 준비해야 할까?

 이 책 '선배수업'은 2016년 출간돼 반향을 일으킨 '나이듦 수업'의 시즌 2 프로젝트다. 

 전작이 '문제'가 아닌 '존재'로서의 노년을 고민하면서 '중년 이후의 존엄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모색이었다면, 이번에는 '선배 시민'을 키워드로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나이듦'이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다.

 "나이가 들면 우선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사실 그 경쟁을 못 따라가죠. 이것 자체가 사람이 쓸모없어지고 폐기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것이 어떤 점에서는 행운인 것 같기도 해요. 막 달려갈 때는 잘 몰랐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발끝만 보고 있던 시선을 약간만 들어올리면, 그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p.120)

 삶의 난폭함을 먼저 겪으며 얻은 경험을 후배들에게 풀어놓았다. 노년, 그리고 노년을 준비하는 중장년이 후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6명의 지식인과 6개의 키워드로 이야기한다.

 "창조성의 방향이 아래 세대로 향하는 것이 '생성성' 또는 '생산성'의 핵심인 것이죠. 내가 아래 세대를 보살핌으로써 나를 돌보는 것, 후대에 봉사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이니, 그야말로 상생입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요. 자기의 삶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후배들의 통찰과 에너지를 빌려오는 것, 그러니까 '함께 배우는' 것입니다."
(p.33)

 문화인류학자 김찬호는 한국 사회의 세대 단절 혹은 세대 갈등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래서 공적 영역이 다음 세대를 기꺼이 성장시키고 환대하는,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안 나오고 정말 이 사회가 나를 품어 안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아래 세대와 만나야 해요. 그 접점이 다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만나는 곳이 가정, 일터, 전철 정도예요. 다른 데서는 별로 만날 일이 없어요." (p.51)

 고전인문학자 전호근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며 '성숙'을 기하는 것이 선배의 소임"이라면서, 이를 위해 인생의 목표를 재점검하고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책 읽는 노년을 무시하는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끊임없는 배움과 독서를 강조한다.

 문학비평가 황현산은 모든 것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경험만으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노년에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열린 마음과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학자 박경미은 '불복종'이라는 키워드로 '노년의 저항'을 이야기하는데, 그 핵심은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이다. 특히 온몸으로 불복종의 삶을 살았던 탈근대 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면서, 의료·교육·교통 등 현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이 거대한 시스템이 우리를 어떻게 노예로 전락시키는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미학자 김융희는  고대의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통해 고대 신화에서 계절의 순환이 지니는 상징을 인생에 연결시킨다. 전환점에서 우울이 찾아오기 일쑤지만 그것은 오히려 창조성의 꿈틀거림이며, '쓸모없음'의 소중함을 알아차리고 자유로운 창조와 놀이의 세계에 자신을 초대할 때 더 커다란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인생의 전반부가 완성되고 49세가 되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체입니다. 50세부터는 다른 차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때 자꾸 쇠퇴하는 것에만 주목하는 것 같아요. 반면에 옛날 사람들은 인생 또는 시간을 단순히 쇠퇴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어요. 모든 생명체들은 반대되는 것들을 같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장소를 계속 바꾸는 거예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p.197)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은 문화 생산 주체로서 노년의 다양한 삶의 결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공론장'으로 이어져 사회 참여로 확장되는가를 탐색한다.  고독한 가운데서도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 문화 생산의 주체로서 거듭나야 하며, 공론장에서의 세대 간 만남을 통해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고 의사결정이 이뤄질 때 다음 세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6인의 이야기에 일관되게 흐르는 논지는 자아를 갱신하면서 세상과 새롭게 접속하라는 것, 삶의 주인공으로 중심을 확고히 세우면서도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라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수렴되는 지점에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해야할까. "권위주의와 허세의 낡은 굴레를 벗고, 경쾌한 마음과 배움을 향한 열망으로 젊은 세대를 대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훈계하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로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젊다'와 '늙다'는 말처럼 천지 차이다. '젊다'는 형용사, '늙다'는 늙어가니까 동사다. 그렇다고 서러워마라.'먼저 산 자'―'선배'의 일이 남았다.

 이 책 머리말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글로 시작한다. 홍시여 잊지 말게/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서해문집 펴냄, 272쪽,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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