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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대병원 등 주1회 휴진
환자들, 병원 찾아 떠돌 판

"단 1시간의 여명일지라도 누가 이들의 삶의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건지 환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이 순간에도 중증 환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치료가 가능한 2차, 3차 심지어 요양병원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환자단체들은 하루빨리 의료 공백을 해소해달라고 호소했다. 말기 암 환자에게 바로 호스피스를 추천하거나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내원하지 말라는 등 치료를 거부 당한 경험도 털어놓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결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양측이 한자리에 앉는 것부터 쉽지 않은 모습이다. 24일 정부 등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오는 25일 출범한다. 환자단체, 시민단체, 전문가 등 민간위원 20명과 6개 부처 정부위원이 머리를 맞대고 필수 의료 중점 투자 방안, 의료 인력 수급 현황의 주기적 검토 방안 등 의료개혁과 관련된 다양한 방향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의사단체는 불참 의사 밝혔다. 이에 정부는 의사단체 5곳과 대통령실·정부 관계자 4명이 참여하는 '5+4 의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나 이마저도 거절 당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1대1 대화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복지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대화의 선제 조건으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와 함께 복지부 장·차관 경질까지 거듭 요구하고 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전날 "정부는 일주일 전부터 '5+4 의정협의체'를 비공개로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의협, 전공의, 의대생, 의대 교수 단체에 의료계-정부로만 구성된 협의체를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만 주장하며 1대1 대화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9일 정부의 의대별 증원 인원 '50~100% 자율 조정' 허용이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의사 단체들이 곧바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의료 정상화를 위해 과감하게 정책적 결단을 내린 것이라면서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증원 규모를 제시하면 의대 증원도 논의가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양측 모두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사이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25일 의대 교수들의 사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몇몇 의사들은 병원을 떠날 채비에 나섰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은 지난 달 28일부터 환자를 대상으로 "사직 희망일은 8월31일로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환자분을 보내드리고자 하니 희망하시는 병원을 결정해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안내하고 있다. 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26일부터 매주 금요일 외래 진료를 휴진한다고도 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병원에 남아 진료를 하는 교수라 하더라도 매주 1회 외래 진료와 수술을 모두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일부 의사들도 사직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의료 대란을 막으려면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의료공백에 대한 대안 제시 없이 의료개혁만 추진하면 여론을 잃고 개혁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역시 원점 재검토 외에 수용 가능한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의견도 우세하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의료시스템이 멈춰 환자가 치료를 못 받는 사고로 이어지면 안 된다"며 "(전공의) 면허 정지를 시키고 정부 의지를 확고하게 밀어붙이면 의사들이 수긍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이런 걸 계산에 넣었다면 지금 제2의 카드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정부와 의료계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상황이다. 국민을 빼고 얘기하니깐 답이 안 나오는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면 의료계에도 큰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의료계 요구처럼 의대 증원을 공론화를 거쳐 추계가 나오면 그 결과를 의사들이 따라갈 수 있을까도 의문"이라며 "의사들도 원점에서 검토가 이뤄져 추계가 나온다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을 비춰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입장에서도 '의료계는 한 명의 정원 증원도 받지 않겠다'는 의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증원을 고수할 거면 이에 대응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와 국민이 받는 피해는 상상 초월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위원장은 "비상 재정에 준하는 국고 지원을 하면서 지역 의료시스템부터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의사도 국가공무원처럼 총동원령을 내릴 정도로 의료 구조조정을 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그 정도 각오가 없으면 정부가 백기 투항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대란으로 환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많이 발생해 사회적 여론이 악화돼야 양쪽이 한발 물러설까 싶다"며 "환자들은 의료계나 정부의 조치를 계속 믿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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