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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네팔에 꿈을 심은 꿈나무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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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8-13 09:37:37  |  수정 2016-12-28 15: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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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재엽군. 담푸스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밀레니엄 트랙을 걷고 있다.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54>

 아빠의 권유로 참가한 여의도여자고등학교 1학년 이소림양은 사전 교육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고 봉사도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이 신선하고 설레여서 오히려 괜찮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출발 전날 너무 신나서 잠 못이루고 밤을 꼬박 샜다. 그 탓에 첫날부터 공항에 늦게 도착해서 ‘아 이제 난 엄청나게 힘들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마스떼코리아 직원들과 다른 봉사대원들이 신경을 더 써주고 챙겨줘 감동받았다. 정말 기상 시부터 취침 시까지 끊임없는 봉사 일정과 저명 네팔인 초대 네팔 알기 교육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더 보람차고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추억이 된 것 같다.

 그녀는 네팔 현지 사정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열악해서 가슴이 찢어졌다. 옷이나 펜, 사탕 등을 나누어줄 때마다 그나마 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펜이나 사탕 같은 작은 것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또래 학생들을 보고 많이 반성했다. 한번은 친할머니와 많이 닮은 분에게 구호물품을 전달할 때 유독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인사를 해 줘서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담푸스는 산촌이라서 관광업, 호텔 등을 하는 이들 외에는 매우 빈곤하다. 오히려 빈부차가 커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클 수 있다. 팔이 부러졌는데도 포카라 병원으로 가는 승합차 비용 2000 루피(약 2만2600원)이 없어 바로 못 내려가서 다음날 버스(1130원)를 기다려야 하는 어린아이의 할머니가 나마스떼코리아 봉사대원들이 묵는 숙소로 찾아왔다. 누구든지 듣고는 돈을 건네주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NGO에서 바로 대응해 줬고 며칠 후 깁스를 한 어린이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밖은 비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어두운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학교 교실은 불을 못 켜서 깜깜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으로 겨우 글씨가 보일 뿐인데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몇 몇 빼고)을 본다. 귀국해서 그동안 등한시했던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교사가 되어보는 교육봉사활동에서는 과연 자신이 또래 애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9학년 아이들이 너무 잘 따라해 주어서 재밌게 수업을 끝냈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행복하게 가르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최근 갖게 된 ‘보컬 트레이너’의 꿈을 더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지인이나 동생한테도 나마스떼코리아를 추천해서 다음 봉사활동에 꼭 보내고 싶어요. 대학에 가서도 또 여길 올 생각입니다. 혹시 기억상실을 해도 이번 경험만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감회를 전하는 소림양의 꿈이 잘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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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왼쪽부터 박진하, 이다래(인턴), 김고운, 정유나, 이소림양. 텃밭을 가꿀 씨앗을 들고 있다.
 어머니 소개로 참가를 하게 된 일산 백신고등학교 1학년 박진하양은 멀고 긴 여정에 지쳐도 너무 지쳤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을 반겨 준 마을사람들의 ‘나마스떼’라는 계속되는 인사에 피로가 많이 풀리게 된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봉사활동은 정말 고되고 힘들었다. 교육봉사에서는 ‘연 날리기’ 수업을 진행했다. 보조 교사인 소림양과 생애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둘 다 많이 미숙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믿고 따라온 학생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쉬웠던 건 연을 제대로 날리지 못한 것이다. 애초부터 우기라서 날씨 등 여러 악조건으로 인해 연이 날지 못할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오니 많은 실망을 했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았어도 무언가를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느끼는 행복 자체가 자신에게 큰 기쁨이었음을 깨달았다. 특히, 학비를 벌기 위해 봉사단원들이 머물렀던 숙소에서 일하던 꺼멀라와 그 짝꿍, 두 네팔 소년이 학교 수업에서 만든 연에 ‘l♡Jinha. I♡Sorim. I love Korea’라고 적어 넣은 것은 잊을 수가 없다.

 수업이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유나양의 물고기 낚싯대 만들기, 이소림양의 K팝 노래 수업, 김고운양의 맥간 아트까지. 아이들과 나누었던 수업 하나 하나가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있는 수업이었다. 같이 호흡하고 따라와 준 네팔 친구들이 무척 고맙다. 수업 봉사 뿐 아니다. 우리의 씨앗을 가지고 가서 텃밭에 심었다. 풀을 베고 땅을 갈아 씨를 뿌렸다. 나중에 다시 이곳에 올 때 즈음, 이들이 심은 무궁화 등이 아름답게 자라 있기를 소망하며 하산했다.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집집마다 찾아가 인사하며 간단한 안부를 물었는데 모두 다 웃으면서 반겨 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김세억 드림센터 건립추진위원장이 중국공장에서 직접 만들어 힘들게 나른 와이셔츠를 집집마다 나누어 주고 학생들에게는 연필과 사탕을 나눠줬다. 나로 인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것을 느꼈다.

 “봉사란 본디 남을 도와주고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봉사가 끝난 지금 남을 도와주고 무언가를 베풀지 않아도 그저 그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하며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봉사가 되는 듯해요. 다음에 자신이 심어 놓은 희망과 나눠 놓은 행복이 이곳을 밝게 빛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담푸스는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담푸스를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이 생기면 반드시 이곳에 데려와서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가꾸어 논 담푸스를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눔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봉사라는 것은 남뿐만 아니라 나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니까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역사이야기’ 등 나마스떼코리아 국내 교육행사에 적극 참여해 왔던 서울 화곡중학교 2학년 최재엽군은 국내에선 봉사활동을 셀 수 없게 많이 한 베테랑이다. 해외봉사활동은 처음인데다 최연소인지라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했다. 현지 도착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된 의료봉사에서 열악한 학교 학생들의 표정이 왠지 굉장히 행복해 보여서 보기 좋았다. 또한 몸이 편찮은 환자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의료봉사 안 가는 날에는 식물학자 전영문 송광생태연구소 소장님과 식물채집을 다녔어요. 트레킹 비슷하게 산길을 가는데 길이 전날 내린 폭우로 많이 무너져 있었어요. 그런 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조금씩 고치면서 정말 길을 만들면서 갔어요. 나중에 돌아올 때 보니까, 글쎄 그 길로 하교를 하는 항생들이 꽤 많이 있었어요. 2시간 정도를 걸어서 등하교를 하는데도 학생들의 표정이 전혀 어둡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걸어서 15분밖에 안 되는 포장된 거리를 이용해서 통학하면서도 불평을 꽤 많이 했었는데. 그런 생각이 나서 제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길을 고쳐놔서 아이들이 무사히 등하굣길을 다니게 되어 다행이었어요. 이번 봉사활동은 아직 짧지만 제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어요”라는 감회를 전한 재엽군의 아버지 최원석 변호사는 이번 봉사활동을 계기로 NGO 고문변호사가 되어 네팔 이주민 등에게 무료법률상담을 자원봉사해주기로 했다. 참 맑고 밝은 인연이다.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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