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영국 정권 교체 이뤄낸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따분한 인물"-NYT 조회수 0
분 야 국제 게시일자 2024/07/05 07:45:23

대처·블레어 등 전 총리들과 달리 카리스마도 스타성도 부족
인권 변호사 출신,검찰총장 역임…자기 관리 철저하고 실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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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영국 노동당이 14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가 될 예정인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역대 총리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 아니며 솔직하고 진지하며 실용적인 지도자라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스타머 대표에게는 1980년대 자유 시장 정책을 선도한 마가렛 대처, “쿨한 영국”의 상징이던 토니 블레어 등 전 총리들과 같은 스타성이 없다.

그러나 스타머 대표는 의회 진출 10년도 되지 않고 노동당이 1930년 이래 최악의 패배를 겪은 지 5년도 되지 않았는데 노동당의 집권 능력을 입증했다. 전직 보수당 총리 3명이 저지르는 실수를 부각하면서 핵심 정책 이슈에 초점을 맞춘 덕분이다.

그는 지난 30일 런던의 유세에서 소매를 걷어붙인 채 “파티 게이트, 코로나 팬데믹, 거짓말, 뇌물 수수를 잊지 말라”고 외쳤다.

노동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스타머 대표에 대한 유권자 선호는 크지 않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검찰총장을 지낸 스타머는 정치인으로서 면모가 부족한 때문이다.

스타머 전기를 쓴 노동당 자문위원 출신 톰 볼드윈은 “그는 정치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멋진 말을 하는데 집중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진지하고 문제해결에 집중하며 차근차근 토대를 닦아왔다는 것이다.

◆"지루하지만 집을 완공하는 사람"

볼드윈은 “지켜보기 지루하지만 집을 완공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변화하는 유럽 속의 영국이라는 연구단체 질 러터 연구원은 “일부에선 따분하다고 할 정도로 스타머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가슴 뛰게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총리로서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런던 외곽 서리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성장한 스타머 대표는 어린 시절 유복하지 않았다. 공구 제작자인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했고 간호사인 어머니는 쇠약해 수시로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리즈대에 입학했다가 옥스퍼드 법대를 졸업했다.

스타머 대표의 이름은 키어 하디 스코틀랜드 노조위원장 및 노동당 첫 대표의 이름을 본 따 지은 것이다. 그만큼 부모들은 좌파적 성향이 강했다. 스타머 대표 본인은 청소년 시절 자신의 이름이 데이브나 피트였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스타머는 맥도널드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시위대를 변호하는 등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검찰총장에 올라 귀족 칭호를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법적 논리로 판사를 설득하는데 주력했고 정통 법조인 출신이라는 평판을 받으며 정계에 진출했다.

의회에서 스타머와 논쟁을 벌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스타머 대표를 가리켜 “재미없고 졸리기만 한 대장(Captain Crasheroonie Snoozefes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타머가 분위기 띄우려면 방을 나가는 방법 뿐" 조롱도

스타머 대표는 촌철살인의 언변은 없으나 스캔들로 가득했던 존슨 총리를 끈질기게 추궁했고 총리관저에서 코로나 봉쇄로 금지된 파티를 벌인 사실을 폭로했다.

보수당 의원들이 스타머 대표도 2021년 4월 동료들과 함께 인디안 식당에서 배달한 음식과 함께 동료들과 맥주를 마셨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경찰 수사로 잘못이 드러나면 사임할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무혐의로 밝혀지면서 보수당 지도자들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법을 잘 지키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스타머 대표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좌파 노동당 제레미 코빈 전 대표 시절 브렉시트 문제를 담당할 당시 당내 중도파 모두 그와 함께 일하기를 거부했다.

2019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배해 코빈 대표가 사임하면서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당내 좌파를 달래는 정책을 수용했다.

그러나 대표가 된 뒤로 당을 장악하면서 정계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코빈 전 대표의 에너지 산업 국유화 정책을 폐기하고 근로자에 대한 세금 인상을 거부하고 군대 강화를 약속함으로써 코빈 대표 시절 노동당이 받았던 비애국적이라는 평판을 뒤집으려 시도했다.

당내 만연한 반유대주의도 뿌리를 뽑았다. 그의 부인 빅토리아 스타머는 런던 유대인 가정 출신이다. 보건소 전문 의료인인 부인도 유세에 자주 등장했다. 청소년 자녀 둘을 둔 부부는 자녀들에 대해선 철저히 프라이버시를 지킨다. 가정에선 부인을 따라 유대 전통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당 장악에 주도 면밀하고 가차 없어

코빈 전 대표와 결별할 당시 스타머 대표는 거침이 없었다. 무소속 으로 총선에 출마한 코빈 대표가 노동당 후보가 되는 것을 막았다. 의원 후보들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극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제거했다.

스타머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언변이 뛰어나지 않았던 스타머 대표는 초년병 의원 시절 하루가 다르게 말솜씨가 늘었다. “T.S. 엘리어트 작품 낭독회에서 청중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루하다는 평가는 계속됐다. 최근 길리언 키건 교육장관이 “키어 스타머가 분위기를 띄울 방법은? 방을 나가는 것 뿐”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볼드윈은 스타머가 “따분하다는 평가를 정말 싫어한다”고 했다. 스타며 친구들은 그가 유머가 넘치고 가정을 잘 꾸리고 정치 이외의 일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한다.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축구 시합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축구장을 직접 예약하고 시합 상대도 직접 정하기도 한다. 북 런던의 집에서 가까운 아스날 축구팀의 골수팬이다.

스타머는 신참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노동당 내각의 당내 분쟁에 연루된 적이 없고 고든 브라운, 블레어 등 전 당대표들에 충성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과도 잘 지내는 사이다.

반면 당내에 그와 생사를 같이 하려는 추종자가 적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코빈 대표 시절보다 노동당에 대한 거부감이 적을 뿐이지 스타머에 매료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노팅엄대 스티븐 필딩 정치사 석좌교수는 “키어 스타머는 노동당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고 성공했다. 그러나 노동당을 지지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는 데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노동자 계층 허름한 연립 주택에서 성장

스타머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부족한 점이 있다는데 동의한다. 스타머의 전기를 쓴 볼드윈조차 “뭔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남을 쉽게 믿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다. 여간해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면서 “공구 제작자의 아들”로 “허름한 연립주택”에서 자랐다고 말하는 것조차 의례적이고 기계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볼드윈은 스타머의 개인사에 대한 질문에 한마디로 된 답을 받기가 어려웠다면서 “자신의 내면 전부를 대중에게 공개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분노를 느낄 때의 감정을 묘사해 달라고 하자 직설적이고 간략한 답을 했지만 듣고 싶은 답변은 아니었다고 했다. “정말 화가 났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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