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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의료계

지난 2014년 3월 서울 강남의 G성형외과에서 쌍꺼풀과 코 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뇌사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유령수술(대리수술)의 실체가 드러난 지 7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말 인천의 한 척추 전문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행정직원이 허리수술을 한 것으로 밝혀진 데 이어 지난 8일 광주의 한 척추 전문병원에서도 의사 대신 간호조무사들이 수백 건에 이르는 수술을 해온 정황이 확인됐다. 대한민국 의료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재평가받는 계기가 된 '의료 한류'의 민낯을 드러낸 부끄러운 이면이다. 환자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의사나 무자격자가 행하는 유령수술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적발 사례가 극히 일부인 데다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해도 유령의사나 수술을 지시한 원장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여서다. 의료계 내부에선 첫 유령수술 사건인 2014년 여고생 사망 당시 검찰의 부실 수사로 수술을 주도한 해당 병원 유모 원장이 엄벌이 아닌 사기죄로만 처벌 받아 유령수술이 오히려 횡행하는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 김선웅 천안메디성형외과 원장(의료범죄척결 시민단체 '닥터 벤데타' 대표)은 "검찰이 당시 '전관변호사 군단'에 휘둘려 방향을 잘못 잡은 결과"라면서 "만약 (원장 유씨가)살인죄나 중상해죄로 기소됐다면 의료계에서 유령수술을 하라해도 절대로 안할 것이다. 당시 검찰이 면죄부를 줬다고 소문이 났다"고 폭로했다. 김 원장은 "해당 병원에서 전직 대법원 판사 등이 포함된 초호화 전관 변호사 10여 명을 선임하면서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사기죄로만 기소하라고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더라. 결국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유령수술 공장 난립을 초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당시 법제이사이던 김 원장 등 집행부 2명은 유씨를 상해와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지난 2016년 유씨를 사기죄로만 기소했다. 치과나 이비인후과 의사가 성형외과 의사보다 몸값이 싸 원장이 그 차익을 노렸다는 것이다. 수술에 동의하지 않은 의사가 환자의 신체에 칼을 댔지만, 검찰은 상해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유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벌금 300만원 형이 확정됐다.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면 의료진은 보통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받는다. 업무상과실치사죄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김 원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범주를 뛰어넘는 대단히 반사회적인 범죄인데 사기죄가 말이 되느냐"면서 "의사면허가 아닌 환자의 동의가 중요한데, 살인죄로 처벌을 안 하니까 (유령수술을)해도 되는 것처럼 돼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기관 간 과도한 경쟁도 유령수술 확산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스타의사라 할지라도 하루에 어떻게 수십건씩 수술할 수 있겠느냐"면서 "의료기관 간 경쟁이 심해질수록 환자는 안전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의사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면 수술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도 유령수술을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대리수술이 발생한 인천21세기병원은 정부가 인정한 전문병원이고 안전하다는 인증도 받아 많은 환자가 믿고 찾았지만 결국 의사가 아닌 직원들에게 수술을 받은 꼴"이라면서 "정부는 부실 인증과 관리감독 소홀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유령수술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료계의 자정 능력 강화에 기대거나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김 원장은 "일부 의사의 일탈로 보면 안 된다"면서 "지금 터져 나오는 한 두군데 뿐이겠나. 일부 의사가 정상적으로 수술하고 대부분은 유령수술을 하고 있어 자정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짚었다. 또 "유령수술은 수술실에 CCTV를 달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유령수술 의사를 처벌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며 "다만 수술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는 있어 CCTV를 달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유령의사나 수술을 지시한 원장에 대해 살인죄, 중상해 죄를 적용해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벼운 처벌에 그치면 병원들은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유령수술을 계속 남발해 환자가 사망하면 유가족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해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고 환자에게 막대한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다. 시민건강연구소 관계자는 "대리수술은 결국 환자가 죽고 다치는 것이 문제인데 의사면허 제도 만으로 환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면서 "면허만 있고 제대로 된 지식과 기술, 태도, 윤리를 갖추지 못한 의료인은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의료기술이 향상되려면 환자를 진찰하고 정상적으로 수술해야 하는데 유령수술 의사들은 진료기록에 남지 않아 수술 과정을 복기하고 개선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환자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유령수술 실태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는 유령수술 사망자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사망하면 병원은 거액의 합의금을 유가족에게 주면서 '외부발설 금지 조항'(사망사고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합의금을 반환해야 한다)이 담긴 합의서를 작성하도록 종용하기 때문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는 의료의 전문성과 은밀성으로 인해 의료기관이나 의사에 비해 절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의사면허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유령수술, 무면허 대리 수술 근절을 위해 전면적인 실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때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김선웅 원장은 "복지부로부터 10년간 성형수술로 사망한 환자가 7명이라고 들었다"면서 "성형외과에서 사망한 환자만 500명 정도이고 이 중 유령수술로 절반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정부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건수만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접수된 것부터 시작해서 다 조사해야 한다. 국가와 의료 시스템만 믿고 수술대에 누웠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환자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백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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