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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앤트맨' 상상력…미래 바꿀 게임체인저

# 지난해 10월 중국과학원은 66큐비트(qubit; 양자컴퓨터 연산단위) 양자 컴퓨터 ‘쭈충즈(祖沖之) 2호’를 내놨다. 3년 전인 2019년 구글이 개발한 시코모스(53큐비트 양자 컴퓨터)를 뛰어넘는 성능을 갖췄다. 루차오양 중국과학기술대 교수는 “슈퍼컴퓨터보다 억억억배 빠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중국의 자긍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IBM이 127큐비트 양자 컴퓨터 ‘이글’을 전격 공개한 것. 중국이 ‘쭈층즈2호’를 발표한 지 불과 20일 만의 일이다. 아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 는 “100큐비트 이상 성능으로 기존 컴퓨터를 능가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쓰게됐다”며 “오는 2024년엔 1121큐비트 컴퓨터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양자컴퓨터 패러다임을 둘러싼 미국 중국 간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양자컴퓨터가 ICT(정보통신기술)은 물론 경제·산업 경쟁력과 국가안보 체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 기술로 주목을 받으면서다. 이에 질세라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도 기술 개발 경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지만 우리나라도 결코 늦지 않았다"며 조언한다. ◆‘앤트맨’ 현실이 된다…양자컴퓨팅의 원리 양자컴퓨터는 양자(量子;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리단위) 역학 원리를 정보처리에 적용한 미래 컴퓨팅 기술을 말한다.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1억배 이상 빠르다. 일반 컴퓨터는 0 아니면 1로만 계산한다. 이때 사용되는 연산단위가 1비트(bit)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계산한다. 즉 0과 1이 분리되지 않아 많은 정보처리가 가능하다. 이런 속도 향상은 양자역학 현상인 중첩, 얽힘으로 가능하다. 양자역학 속 중첩, 얽힘 용어는 이따금 공상과학(SF) 영화에 등장했다. 마블영화 ‘앤트맨’에도 나왔다. 주인공 스캇이 실종된 줄 알았던 재닛과 정신적으로 연결된다. 행크핌 박사는 “두 사람이 양자 얽힘 상태”라고 말했다. 거리와 무관하게 양자 상태로 얽혀있는 현상을 언급한 것이다. 또 앤트맨에서 몸이 분신처럼 여러 상태가 보인 장면으로 양자역학 속 '중첩' 상태를 표현했다. 양자컴퓨터는 수많은 정보라도 중첩과 얽힘으로 연결돼 더 많은 계산이 가능한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정보 단위로 기본 '비트' 대신 ‘큐비트’를 쓴다. 1큐비트가 0과 1, 2개의 상태를 동시에 가진다. 1개 값만 가진 1비트에 비해 2배 빠른 계산이 가능하다. 2큐비트는 00, 01, 10, 11 4개 상태를 동시에 가져 2비트보다 4배 빠르며, 3큐비트는 8배, 4큐비트는 16배로 늘어난다. 그만큼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덕분에 여러 연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큐비트의 수가 늘어날수록 처리 가능한 정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2019년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단 3분 만에 풀어낸 이유다. ◆ 신약개발·물류자율주행·금융 등 활용분야 '무궁무진'…보안 분야에선 '양날의 검' 양자컴퓨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압도적인 성능 때문이다.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어 인공지능(AI), 보안, 물류·교통, 금융,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기술 진화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분야가 바이오 의료 분야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보다 쉽게 분자 설계와 분석을 할 수 있어 개발 속도를 1~2년 단축할 수 있다.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 기술과 접목해 개인 맞춤형 치료 서비스 시대도 앞당길 수 있다. 특히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에 비해 '시뮬레이션'에 유리하다. 가령 식물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화학 에너지로 변환하는 원리를 밝힐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태양열 전지의 에너지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지구촌 식량난 문제 해결에도 응용할 수 있다. 날씨나 교통체계 정체 등과 같은 난제도 해결할 수 있다. 실제 폭스바겐은 구글 디웨이브와 손잡고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중국 베이징의 고밀도 지역 교통 흐름을 최적화하기 위한 시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최적화 경로를 계산하는 데에도 적합하다. 기존 컴퓨터로는 최적 경로를 찾기 위해선 모든 순열 계산을 해야 하나, 양자컴퓨터로는 모든 경우의 수를 한꺼번에 계산할 수 있어 물류 운송이나 자율주행 등의 분야에 적극적인 활용이 기대된다. 금융 분야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금융 상품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는데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AI(인공지능) 분야도 양자컴퓨터 기술이 접목될 경우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되는 분야다. 최근 연구가 시작되고 있는 양자신경망(QCNN)이 대표적이다.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활용분야는 아이러니하게 양자컴퓨터 기술 오남용을 막는 보안 분야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따지고 보면 양자컴퓨터는 기존 사이버 보안체계를 뒤흔들 무기다. 현재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암호체계인 공개키 암호화방식(RSA)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RSA는 천문학적인 수를 소인수분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해독하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뛰어난 연산 능력으로 단기간에 RSA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존 암호화폐 보안체계마저 깨트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국가 안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양자컴퓨팅이 국가안보에 민감한 문제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양자 컴퓨팅 기술로)스텔스기를 탐지하는 레이더나 해킹의 위협 없는 암호 통신 기술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또 같은 기술로 상대방 암호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는 기술이 가능해 사이버 안보체계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직 일러…패라디임 경쟁 나서야 물론 양자컴퓨터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큐비트를 이용한 연산 방식 자체가 안정성이 떨어진다. 큐비트 숫자가 늘어날 수록 에러율도 높아질 수 있다. 속도가 빨라지더라도 큐비트 연산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에러보정 기술이 함께 개발돼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유의미한 활용을 위해선 수백~수만개의 큐비트가 필요한데, 아직은 개발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다. 제대로 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려면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과 세계 패권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국가적 연구와 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는 “양자 기술은 컴퓨팅, 보안, 센서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다”라며 “다만 과거 양자 기술 개발에 국가가 소홀했던 만큼, 이제부터라도 관련 국책기관, 학계, 민간 기업 등에 대한 투자 및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송종호 기자 | 윤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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