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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적금 신드롬

은행권의 예·적금 수신금리 인상 경쟁으로 자금 쏠림 현상이 우려되면서 금융당국의 고민도 커지는 모양새다. 은행으로의 과도한 시중자금 쏠림은 저축은행 등 다른 업권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 상승도 뒤따른다. 그러나 자금경색 사태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금융당국으로서는 은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필요한 가운데 은행의 수신금리 인상 경쟁을 강하게 압박할 명분이나 수단도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수신금리 인상 자제령을 내린 상태다. 앞서 지난 1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국민·농협·부산·신한·우리·하나·SC 등 7개 은행 부행장들과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어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 자제를 당부했다. 예·적금 금리 인상 경쟁으로 은행이 시중자금을 '블랙홀' 처럼 빨아들이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시중은행이 정기예금 금리를 5%대로 올리며 고객 유치 경쟁에 가속 페달을 밟자 저축은행권에서도 정기예금 금리가 연 6%대에 진입한 상황이다. 시중은행에 비해 상황이 열악한 저축은행으로서는 높은 예·적금 이자로 고객을 유인할 수 밖에 없는데 은행이 예금금리를 올리면 어쩔 수 없이 이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중은행에 비해 인프라나 편의성이 떨어지는 저축은행은 높은 금리로 고객을 유치해야 해서 울며 겨자먹기 식의 이자 인상"이라며 "유동성이나 건전성이 떨어지는 제2금융권의 자금이탈을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짚었다. 은행의 예금금리 인상 경쟁은 보험업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은행으로의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생명보험사들 역시 저축보험, 연금보험 등의 금리 경쟁에 내몰리며 금리 5%대 저축성보험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량채권인 우량채를 통해 자금조달이 가능한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창구가 예·적금으로 제한적이다. 보험업권도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자금조달 창구가 막히자 저축성보험을 통한 현금 확보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이나 생명보험사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경쟁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흐른다. 지난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은행장 간담회에서 "시중 자금흐름에 있어서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으로 제2금융권 등 다른 부문에 유동성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것은 불가피하나 은행들이 금리상승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없을지 고민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은행의 예금금리 상승은 결과적으로 대출금리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예금금리가 상승한다는 것은 곧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는 의미이며 가뜩이나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상승 압력이 작용하던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급등케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픽스는 신용대출 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전세자금대출 등 은행권 변동형 대출금리의 기준이 된다. 시중은행의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단이 조만간 8%를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올해 안에 9%선까지도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출을 최대치로 끌어모아 집을 산 '영끌족'과 빚을 내 전세를 구한 '전세난민'들의 비명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예금금리 상승은 현금성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반길 일이지만 대출이 불가피한 취약계층에게는 결국 대출금리 부담 요인이 되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제2금융권의 유동성과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를 동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마냥 은행만 압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은행이 예금금리 인상 경쟁에 나선 이유에는 국내외 금리 인상 기조도 자리하지만 자금경색 사태에 따른 금융당국의 은행채 발행 자제 주문도 한몫을 한다. 금융당국은 자금경색 사태에 대응하면서 시중은행들에 은행채 발행을 자제시켜 왔다. 은행채는 한전채와 함께 레고랜드 사태 전부터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여 왔다. 은행 통합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맞추기 위해 발행한 우량 채권인 시중은행채를 대량으로 찍어낸 탓이다. 이런 가운데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위축으로 기업의 자금줄이 말라가면서 그나마 남은 채권 수요마저 은행채와 같은 우량 채권으로 몰리면 자금경색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은행체 발행 자제령을 내렸던 것이다. 반면 은행 입장에서는 주요 돈줄인 은행채가 막힌 상황에서 당연히 예·적금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금리를 높여 유인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당국은 자금경색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데 주력해 왔다"며 "가계부채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당장 은행채 발행을 풀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자금경색 사태에 대응하면서 유동성 공급 최전방에 은행을 앞세웠다. 은행은 특수은행채·신전문금융채권·회사채·기업어음(CP) 및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등으로 화답했고 금융당국도 건전성이 가장 우수한 은행업권에 기댔던 측면은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공시를 도입하는 등 '이자 장사' 압박을 가했던 데 대한 볼멘소리도 들린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이익 추구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이어가자 줄줄이 대출금리를 낮추고 예금금리를 올린 가운데 예대금리차 공시로 은행별 예금금리가 매월 공개되면서 시장금리 상승분 이상으로 예금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대출과 달리 예금금리에 있어서는 직접 규제 수단이 없다는 게 고민거리다. 결국 LCR이나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같은 유동성 비율 규제 완화 뿐인데 금융당국은 국제 기준 스탠다드나 국내 금융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성 문제 등으로 아직 이에 조심스런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의 과도한 예금 경쟁이 제2금융권의 예금 금리를 올리고 궁극적으로는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금융당국이 최근 LCR과 예대율 규제를 완화해준 만큼 은행도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김형섭 기자 | 이주혜 기자 | 류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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