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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랠리 진짜 오나⑤] 금융시장 최악 지났나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얼어붙은 자금시장이 다소 풀리고, 고공행진하던 원·달러 환율이 하향안정세를 나타내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최악의 위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니냔 전망이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에 부합하게 둔화하고, 한국은행도 당초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자 시장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미 노동부는 12일(현지시간) 12월 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6.5% 상승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21년 10월 이후 14개월 만에 최소폭이다. 이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한층 완화되면서,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해 코스피는 13일 전 거래일 대비 0.89% 오르며 2380선을 회복했다. 지난해 10월 1442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도 전일 대비 4.5원 내린 1241.3원에 장을 마쳤다. 두 달여 만에 200원 가량 하락한 것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7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인 102선까지 밀려났다.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꺾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1년여 만에 1100원선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회사채·기업어음(CP) 금리도 하향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AA- 등급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10월21일 5.73%로 연고점을 찍은 뒤 13일 4.65%까지 하락했다. A1 3개월물 CP 금리도 지난해 12월9일 5.54%로 연고점을 찍은 이후 4.93%로 내려왔다 특히 회사채 시장은 우량물을 중심으로 개선세가 확연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요예측에 나선 회사채들이 완판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1일 수요예측을 실시한 GS에너지(AA등급)는 3년물 1200억원, 5년물 500억원 등 1700억원 모집에 1조5600억원 주문이 들어왔다. 같은 날 SK지오센트릭(AA-등급) 수요예측에서도 2년물 700억원, 3년물 1000억원, 5년물 300억원 등 2000억원 모집이 완판됐다. 롯데제과도 수요예측에 흥행하면서 회사채 발행규모를 기존 15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일시적인 완화일 수도…비우량물·부동산PF 등 리스크 여전 다만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에 다소간의 온기가 돌고는 있지만, 아직 실물경기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이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반응이다. 일시적인 완화 현상일 수 있단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급격해진 자금시장 경색 국면이 정부의 시장안정대책 이후 진정되는 모습이나, 신용도가 높고 자금 축적을 통해 재무융통성이 우수한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래하는 차환 부담을 정부의 정책자금이나 국책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조달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단 의견이다. 또 국내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점차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긴축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미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 등 해외발 리스크의 확대 등 새로운 리스크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상황이 양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미국과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이 높고 한미 금리 역전도 여전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실적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의 CPI가 10%대 가까이 치솟던 상황 보다는 안정되긴 했지만 금융시장에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글로벌 금융시장의 양호한 출발에도 여전히 경기침체 공포는 소멸되지 않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단순히 경기침체 논란이 아닌 경기 침체를 둘러싼 새로운 혹은 변형된 주장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미 연준의 이례적인 금리인상 사이클도 한 몫을 했지만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이 기술혁신, 팬데믹 및 신냉전 분위기 등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음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다양한 침체 시나리오의 등장은 하반기 경기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시장에서는 자금시장 경색의 진원지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는 '서울 둔촌주공(올림픽 파크 포레온)'이 정부의 지원사격으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시장에서는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2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둔촌주공 조합이 지난해 말 신청한 7500억원 규모의 사업비 보증을 승인했다. 둔촌주공 미계약 사태로 관련된 건설사와 부동산 PF ABCP, 금융사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 부실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이에 일반분양 정당 계약률과 상관없이 오는 19일 만기 예정이었던 7231억원 규모의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일에 맞춰 상환이 가능해졌다. 조합은 당초 오는 17일까지 예정된 정당계약을 바탕으로 상환할 계획이었으나, 예상보다 저조한 청약률과 시장 위축 등으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이번 HUG의 보증으로 자금 압박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정부의 1·3 부동산 규제 완화책으로 초기 계약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둔촌주공이 이번에 위기를 잘 넘긴다 해도 PF 리스크는 언제든 다른 사업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화약고'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금리인상으로 자금조달 환경이 위축되며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미분양주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원자재, 인건비, 물류비 등 높아진 원가부담과 거시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주택 구매 수요가 단기간 내 회복되긴 어려울 전망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PF 차환 리스크 확대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고 금융비용 증가로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저하됨에 따라 기존 계획 대비 착공 전환 프로젝트 규모가 감소할 수 있다"며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분양을 통해 미분양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으나, 지방 중심의 주택 포트폴리오를 가진 업체들의 경우 중기 매출 기반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정책적 지원에도 지속되는 금리 인상과 투자심리 위축, PF사업성 악화 등을 감안할 때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며 "올해도 상반기 중 차입금, 유동화증권 등의 만기가 집중된 건설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험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당국 "BBB-등급사도 지원…PF-ABCP 장기대출 전환 보증" 이에 금융당국도 최근의 시장안정세를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현재 운영중인 총 4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집행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비우량 회사채·CP까지 안정세가 확산될 수 있도록 비우량물 지원도 강화한다. 적어도 돈이 돌지 않아 문제가 생겨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겠단 것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약 6조4000억원의 지원여력에 더해 9조원의 추가 캐피탈 콜이 가능한 상황으로, 우량물 중심으로 시장수요를 뒷받침하면서 지원대상과 규모 확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또 약 7조6000억원 규모의 산은·기은의 회사채·CP매입프로그램을 통해 비우량회사채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확대 개편해 5조원을 신규 공급하고 지원대상도 일반기업 BB-이상, 여전사 BBB-이상까지 확대한다. 특히 브릿지론에서 본PF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사업자보증 약 12조9000억원과 함께 단기 PF-ABCP를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사업자보증도 이달 중 신설·운영해 정상사업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증권금융 등을 통한 증권사 유동성 지원프로그램도 지속 운영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는 위기시에도 개별회사의 문제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라며 "다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은만큼 향후에도 면밀히 모니터링·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정옥주 기자 | 박은비 기자 | 이주혜 기자 | 류난영 기자 | 강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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