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광장

"백두산 연구, 남북 공동연구 절실하다"

백두산이 언제 얼마만큼 폭발할 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현대 장비·기술을 이용해 뚜렷한 전조 현상을 확인한다면 분화 예측 오차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이윤수 전 포항공대 환경과학부 교수는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CT, 조직검사, 내시경 검사 등을 진행하듯이 화산도 시추 장비를 통해 직접 마그마 활동을 파악하거나 여러 장비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화산폭발지수(VEI) 6 규모로 폭발했는데, 폭발 전에 과학자들의 주기적인 모니터링으로 분화를 예측한 바 있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당시 미국 지질조사국과 필리핀 화산지진연구소는 피나투보 화산에서 수증기가 발생하는 걸 확인한 뒤 약 10주 동안 지진계로 측정하는 등 주기적으로 화산활동을 감시했다. 이후 폭발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확인한 연구진은 당국에 주민 대피 경고를 요청해 인근 주민들이 화산 폭발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백두산 연구 활동의 열쇠는 백두산을 영토로 둔 중국과 북한이 쥐고 있다. 이들의 허가가 있어야 우리 연구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연구진이 모여 백두산 화산 연구에 더 발을 디딜 수 있다. ◆ 백두산 연구 기술·장비 부족한 北…"남북 백두산 공동 연구, 북한이 먼저 제안해"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과 백두산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기상청 지원으로 설립된 부산대 화산특화연구센터는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중국 활화산연구센터 등과 한-중 백두산 공동 관측 장기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센터장인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중국 측은 화산성 지진 관측, GPS 활용한 지표 변형 관측을 맡고 있다. 우리 측은 화산 가스 성분과 농도와 온천수 온도 변화, 백두산 천지 지표 융기·침강 연구 등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공동 연구로 백두산 화산 활동에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백두산 일부 지역은 북한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화산성 지진, 지표면 변형 등을 연구한다면 분화 예측 오차 범위를 더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공동 연구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북한도 백두산 분화의 직접적인 피해 범위에 있는 만큼 연구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지만, 대북제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양측 모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남북한 백두산 공동 연구 협상은 크게 4차례 진행했다. 이 중 앞서 3번은 모두 북한이 제안해 시작했다. 첫 협상은 2007년에 있었다. 2000년대 초 백두산 분화 징후가 뚜렷해지자 북한도 백두산 분화를 연구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우리 측에 제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전 교수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측이 우리 측 환경부에 연락해 백두산 공동 연구를 제안했는데, 정권 교체 이후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무산됐다"고 전했다. 이후 협상은 2011년에 있었다. 이 전 교수는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유럽 하늘길을 막히자 백두산 분화 이슈가 다시 떠올랐는데,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는 946년 백두산 대분화의 1000분의 1 수준"이라며 백두산 연구에 시급함을 느낀 북한이 다시 협상의 문을 연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2010년 2월 백두산 인근에서 규모 6.9의 강진이 발생했고, 특히 협상일로부터 약 보름 전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낳은 동일본 대지진도 있어 남북 모두 백두산 연구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다. 이때 남북 대표단은 백두산 공동연구를 위한 학술토론회와 현지답사를 포함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이 역시 북한 당국의 태도 전환으로 합의안을 이행하지 못했다. 세 번째 협상은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됐지만 두 달 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논의가 진전돼지 못했다. 2018년 네 번째 협상 때는 우리 측이 먼저 제안해 진행했으나 대북제재 등 비학술적인 부분의 문제로 무산됐다. ◆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北에 연구 장비·기술 지원해야" 우리 연구진이 북한 영역의 백두산을 연구하려면 우리 정부, 북한 당국의 허가와 함께 광대역 지진계, 컴퓨터 등 관측·분석 장비들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장비 중 대부분은 현재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에 따라 반입할 수 없는 전략물자로 구분돼 있다. 그러면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공동 연구는 이뤄질 수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미 북한이 서방 국가 연구진과 함께 연구한 사례가 있다며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 백두산 공동 연구 2차 협상이 결렬된 이후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 과학자들에게 백두산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북한이 2011년 국제공동연구기관에 백두산 화산 관측 연구를 위해 장비 반입 협조를 구했는데, 영국 정부 관계자 등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 도와달라고 요청해 2년 만에 반입이 허가된 것이다. 윤 교수는 영국 정부가 해낸 걸 우리 정부가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며 백두산 분화의 시급성을 감안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남북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영국 정부가 유엔을 상대로 '백두산은 분화 가능성이 높은 화산이니 마그마방의 깊이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측·분석 장비가 꼭 들어가야 하니 허가해달라'고 요구한 끝에 공동 연구가 가능했다"며 "북한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우려된다면 연구 기간이 끝난 뒤 우리가 가져온 장비들을 다시 챙겨 나오면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백두산 분화의 위험성을 알고 정치·외교 등 비학술적인 문제를 떠나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국제사회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민 기자

구독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