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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는 한일 관계⑤]전문가 진단 "불신만 쌓였다…당분간 악재 관리"

"일본이 굉장히 편협하게 외교를 하고 있다"(김준형 국립외교원장, CBS라디오) "일본이 소아병적으로 일을 한다"(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MBC라디오) "일본 언론에서 누가 먼저 인사를 했네 얘기하는 것부터 사실 약간 촌스럽다"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 MBC라디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의 한일 약식 회담이 무산되면서 정부와 여당에서 일본을 향한 볼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일 양국이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일본이 정상 간에 자연스러운 만남조차 피하면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뿌리 친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당분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기보다는 대화 신호를 계속 발신하면서 G7 약식회담 불발과 같은 악재를 관리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반기 한국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고, 일본 역시 9월 중의원 총선거를 치르면서 양국 모두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일 간 신경전은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2019년 7월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본격화됐다.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로 맞섰고, 조건부 유예로 가까스로 위기를 봉합했다. 하지만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다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한 상황이다. 올해 들어선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결정을 내리면서 한국 정부가 강력 반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일본이 도쿄올림픽 지도에서 독도를 마치 일본땅인 것처럼 표시해 독도 도발에 나서면서 갈등 전선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요구하면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바이든 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이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지지를 확보하겠다는 포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일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은 채 한국 정부를 향해 거듭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양국의 정상과 정부 간에 신뢰 관계가 너무 떨어져 있다. 우리는 한일 관계에 대한 자세를 바뀠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신뢰할 만한 변화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일본 역시 한국의 태도나 자세 변화를 평가해 대화에 나서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2018년부터 한일 간에 진실 공방을 계속하면서 정작 풀어야할 문제들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불신만 쌓여가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만나자고 하지만 일본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사실상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관건은 갈등의 핵심에 있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최근에는 서울중앙지법이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서도 각하 판결이 나오면서 사실상 사법부가 아닌 외교의 영역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최은미 연구위원은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배상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상반된 판단이 나오면서 일본에서 봤을 때는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사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국내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철희 교수는 "일본과 풀어야할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를 나눠서 해야 한다"며 "최근 강제징용 판결이 대법원 판결과 다르기 때문에 관망하겠다는 태도도 가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봐도 좋지 않냐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의 계절이 됐다는 점이다. 외교가에서는 '한일 관계는 70%가 국내 정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일 관계를 외교적으로만 풀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만큼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돌입한다. 스가 총리 역시 9월 중의원을 해산하고 재집권에 성공해야 하는 당면 과제가 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꼬인 한일 관계를 매듭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실적으로 희망적이지는 않다"며 "일본이 뜨뜻미지근하더라도 우리는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표명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한국 내에서는 일본과 상관없이 행동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반일(反日) 프레임을 활용하려는 필요성이 제기되면 한일 관계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며 "내년 3월까지는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한일 간에 신뢰를 조성해 다음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역시 "한일 관계를 풀기보다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정부가 한일 관계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죽창가를 이야기하면서 기름을 붓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일 갈등 현안과 별개로 협력 사업 모색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나 영토 문제는 한일 간에 의견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봉합하거나 타협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 문제, 미국과의 동맹 현안, 코로나19 대응 등 보건 협력 문제는 한일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이국현 기자 | 박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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