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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폭등전야①]'원가 반영' 못박은 尹정부…요금 정상화 가능할까

한국전력(한전)이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는 가운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전기 요금에 대해 원가주의 원칙을 못 박았다. 원가를 반영해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면서도 발전 단가가 비교적 낮은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물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원자력 발전 비중을 즉각 상향할 수 없어 단기간 내 원가를 낮추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관련 업계에선 요금 인상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물가 상승 우려와 인상에 대한 저항 심리도 있는 만큼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골디락스 존'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기흥 인수위 대변인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기자회견장에서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중점 과제를 발표하며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밝혔다. 인수위가 발표한 원가주의 요금 원칙은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의 변동분 등을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 시행령은 공공요금에 대해, 적정 원가에 적정 투자보수를 더한 총괄원가를 보상하는 수준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물가안정법과 전기사업법 등에 따라 총괄원가주의를 따르고 있는 현행 전기 요금은 구입 전력비와 송배전 비용, 판매비, 투자보수 등을 합해서 결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80% 이상은 원자력과 천연가스, 석탄 등 연료로 생산된 전력을 구입하는 데 소요되는 구입 전력비다. 즉 연료 가격이 오르면 전기 요금 인상으로 바로 연결되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연료 가격이 오르더라도 전기 요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연료비 상승이 한전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에 정부와 한전은 연료 구매 비용을 3개월마다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이마저도 정부가 물가 상승을 우려해 연이어 시행을 유보하면서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 한전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2월 전력 구입단가는 킬로와트시(㎾h)당 162.5원으로 전년 동기(90.8원) 대비 78.9% 올랐다. 같은 기간 판매단가는 ㎾h당 115.2원으로 2.3% 증가에 그쳤다. 전력구입비와 판매수익은 각각 7조5836억원, 5조4767억원으로, 전력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 한 달간 2조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 등으로 국제유가, 액화천연가스(LNG), 유연탄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하면서 적자 폭이 커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증권가에선 한전이 올 1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5조원을 웃도는 등 분기 사상 최대 수준의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일부 증권사는 6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한전은 올 1분기 역대 최대 적자가 예상되면서 우량 자산으로 평가되는 필리핀 세부 화력 발전소의 매각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 출범 뒤 실제 전기 요금에 원가가 반영되면, 올해 20조원까지 전망되고 있는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수위에서 원가주의 원칙과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아 전기 요금에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전기 요금 인상이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원가 반영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물가 관리도 하고 원가주의도 적용한다고 하면 상당히 모순되는 것"이라며 "물가 관리 부분에 부닥치면 (원가주의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높아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인수위의 발표를 보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최소한 줄여주고 나머지 인상 요인을 점진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것"이라며 "급격한 전기 요금 인상 부분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원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인수위의 구상도 단기간에 이루기는 어려워 전기 요금과 물가의 상승을 한 번에 막기엔 역부족이다. 유 교수는 "원전 가동률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당장 원전을 통해서 전기 요금을 낮출 수 있는 측면은 거의 없다"며 "신한울 1·2호기의 시험 가동이 끝나면 전기 요금을 낮출 수 있는 요인은 있지만 1년은 더 걸린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험 가동 중인 신한울 1·2호기는 1호기가 시운전 과정에서 오류를 일으키면서 1·2호기 모두 내년 9월로 정상가동이 미뤄진 상태다. 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 여론도 관건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비판하며 전기 요금 동결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뒤집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올 3분기 연료비 연동제 결정이 차기 정부의 원가주의 적용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주헌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은 "하반기에 국제에너지 시장 상황을 살펴서 전기 가격을 결정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관행이 아닌 원가주의에 입각해서 잘 결정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 고은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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