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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현대차 백오더 100만대-①] 공급망 탓만…내 차 언제 받나

현대자동차가 고객들에게 주문은 받았지만 제때 생산하지 못한 이른바 '백오더(주문대기)' 차량이 100만대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백오더 물량은 지난해 현대차 연간 판매량(389만대)의 25.7%에 해당돼 현대차 실적의 발목을 잡는 본질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백오더 차량은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른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 감소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파괴력이 커 현대차가 전사적 차원에서 백오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 같은 대규모 백오더 사태가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백오더 100만대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선 현대차 차량 출고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져 현대차 고객들의 이탈이 가속화 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글로벌 고객 주문에도 불구, 출고하지 못한 백오더 물량이 지난 8월 말 기준 총 100만3000대에 달한다. 백오더란 주문을 받았는데도 기한 내 생산하지 못한 차량이다. 현대차 노사기획팀은 "백오더 물량이 내수 67만1000대, 수출 33만2000대로 총 100만3000대에 달한다"며 "이 같은 대규모 백오더 물량은 글로벌 부품 공급망 불안 때문이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와 연료탱크 부족, 코로나 중국 봉쇄 등이 백오더 물량이 쌓이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백오더 문제 심각하지만 전사적 대응책 마련은 '미흡' 현대차의 백오더 적체 현상은 연간 실적을 뒤흔드는 파괴력이 있지만 현대차는 좀처럼 백오더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당장 현대차 내부적으로도 백오더 문제보다는 IRA 도입에 따른 미국내 전기차 판매 감소 현안에 더 치중하는 장면도 엿보인다. 단적으로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지난 8월23일과 지난달 21일에 연이어 2차례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정 회장이 한 달이 채 안되는 주기로 두 번이나 미국을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현대차 측은 정 회장 출장이 미국 LA판매법인 점검 같은 IRA 대응이 주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선 IRA는 '미래의 위기'인 반면 백오더 물량 증가는 '눈앞의 위기'로 실적에 미치는 파장은 백오더 쪽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연간으로 현대차와 기아 등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판매한 전기차 실적은 총 4만6300대 정도로 현대차 단일 기업의 백오더 물량 100만3000대와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인다. 물론 IRA는 판매에 직접 타격을 주기 때문에 생산 차질인 백오더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백오더를 획기적으로 줄이면 IRA 손실분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IRA는 특히 미국 정부를 움직여야 하는 사안으로 현대차 같은 민간 기업 차원의 해법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정의선 회장이 IRA 못지 않게 백오더 물량 장기화 문제에도 본질적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 회장이 백오더를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IRA의 해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유예기간 등으로 당장 해법이 보이는 문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 수급난은 차량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라며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대체 부품을 찾거나 수급의 해법을 찾는 등 다각도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대량 백오더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차는 2020년 차량용 전선 다발인 와이어링 하네스가 부족해 백오더가 급증한 이래 지난해에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올해에도 역시 차량용 반도체와 연료탱크 부족이 백오더를 촉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 명칭만 바뀔 뿐 3년째 '부품 공급망 부족' 사태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공급망 대책으로 차량별 반도체 최적 배분과 대체 소자 개발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공급망에 숨통이 트일 조짐은 없어 보인다. 이에 앞서 올 초에는 공급망 관리 전담 조직 신설과 협의체 신설 등도 내세웠지만 이 역시 뚜렷한 해법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3년째 수급난' 해법 못 찾고 '노조 특근'만 요청해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는 백오더 해결을 위한 임시방편으로 노조 측에 특근 근무를 더 확대하자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아가 주목된다. 실제 현대차 울산공장 노사기획팀은 노조를 상대로 백오더를 줄이기 위해 유연근무가 답이라고 제안했다. 현대차 노사기획팀은 노조를 상대로 사측 입장이나 중요 현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대차 노사기획팀은 최근 배포한 유인물에서 "당장 수급이 어려운 부품에 대해서는 결품 통과 후 후장착(리워크) 등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확보된 부품으로 최대 생산 추진을 위해 라인별 단독 특근 등 탄력적 라인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 변동성 확대와 연계해 판매 호조 차종에 대한 원만한 증량 협의 등 노사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는 사측의 유연근무 강화가 본질적인 해법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이미 조합원들이 차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특근도 하면서 적극 나서고 있다"며 "생산 차질의 원인을 노조의 근무시간으로 돌리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차량용 반도체 같은 부품의 원활한 수급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부품 공급망 문제를 사측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를 마치 노조가 생산에 적극 나서지 않아 대규모 백오더가 생긴 것처럼 주장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백오더→출고 장기화→고객 이탈, 악순환 가중 현대차의 대규모 백오더 지속 현상은 자칫 고객들의 현대차 이탈을 부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판매 직원들은 차량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있는 차량이 없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신차 대기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단적으로 아반떼 하이브리드나 싼타페 하이브리드 같은 차량은 신차 계약 후 20개월을 기다려야 차량 열쇠를 받을 수 있다. 국내 일부 판매 직원들은 울산공장에서 차량을 빨리 만들어 달라고 공장을 항의 방문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미국 현지 판매 딜러들도 백오더 해결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부품 수급난 이전만 해도 미국 현대차 딜러들은 2주 정도 차량 재고를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현재는 5일치 재고 밖에 없고, 그마저도 고객들이 기다리지 못해 이탈하는 모습이 자주 벌어진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미국 뿐 아니라 한국 고객들의 현대차 이탈 현상도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수입차를 구입한 한 소비자는 "현대차의 인기 차종은 18개월에서 24개월씩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이 기간이면 새 모델이 나올 수도 있다"며 "현대차를 1년 넘게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점은 고객을 고려하는 처사가 아니다"고 밝혔다.

정윤아 기자 | 안경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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