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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참사에 국민 모두가 상처…정신건강 상담 꺼리지 않는 분위기 조성돼야[안전사회]④

핼러윈 축제를 만끽하던 지난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로 총 158명이 숨지는 참극이 빚어졌다. 총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친 초유의 참사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 보도를 통해 참사 초기 상황을 적나라하게 담은 영상이 무분별하게 공유된 것도 국민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참사가 일어난 밤사이 SNS에는 의식을 잃고 구조된 시민들을 길바닥에 눕혀놓고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모습, 층층이 깔린 시민들이 팔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고 이들을 끄집어내려는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손을 잡고 당기는 영상이 여과없이 퍼졌다. 참사 초기 언론도 SNS나 제보를 통해 입수한 영상을 흐림 처리 없이 그대로 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몇몇 뉴스에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하기도 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재난 경험자는 ▲재난 피해자(1차) ▲재난 피해자와의 친구, 가족 동료 등(2차) ▲재난 지원인력(3차) ▲지역사회(4차) ▲전국민(5차)로 정의된다. 직접적으로 재난과 연관되있지 않더라도 매스컴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은 경우(5차)도 재난 경험자로 분류된다. 대형 참사가 벌어진 긴박한 상황을 전달하려는 목적의 현장 영상이 사고 당사자가 아닌 일반인이 간접 경험으로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하는 '대리 외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참사 다음 날 10월30일 성명을 통해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참사 당시 영상과 사진의 공유·확산 중단을 요청했다. SNS와 영상매체의 발달로 실제 대형 참사와의 물리적 거리와 관계 없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정신 상담을 꺼리지 않는 사회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7년간 극단적 선택을 한 801명에 대해 진행한 '심리 부검'에 따르면, 사망 전 3개월 이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기관을 방문했던 사람은 394명(49.2%)으로 절반을 밑돌았다. 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도 최근 1년간 정신과 상담 혹은 치료 받았다는 응답은 7.2%에 그쳐 미국(43.1%), 캐나다(46.5%), 호주(34.9%) 등 주요국의 4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가 밀집되는 장소에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난 만큼 적극적으로 자가진단을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달 7일에는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발생한 무궁화호 열차 탈선사고로 출근길 인파가 몰린 서울지하철 1호선 개봉역, 구로역, 신도림역에 질서통제를 요청하는 신고가 쇄도하기도 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제공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 자가진단'은 두렵거나 끔찍하고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 최근 한달새 '악몽', '경계', '죄책감 혹은 원망' 등의 감정을 느꼈는지를 묻고 있다. 여기서 '예'라고 답한 항목이 2개 이상일 경우는 '주의 요망', 3개 이상일 경우는 '심한 수준'으로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센터는 안내하고 있다. 안용민 한국자살예방협회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미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이미 치료를 받는 분들의 경우 이런 참사에 노출되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며 "일상 생활의 지장을 겪을 정도로 불안을 겪고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진형 기자 | 이준호 기자 | 이소현 기자 | 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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