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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미분양 7만가구]③건설업계 "정부가 매입해 달라"...혈세 투입 모럴해저드 논란

최근 미분양이 한 달에 1만가구씩 급증하며 우려를 낳고 있지만 정부는 추가 대책 마련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 요구하고 있는 미분양 주택 매입에 대해선 아직 때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다양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6만8107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5만8027가구에 비해 17.4%(1만80가구) 증가한 규모다. 이 수치는 국토부가 내부적으로 미분양 위험수위라고 정한 6만2000가구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한달 사이 1만810가구가 늘어난 데 이어 12월에도 1만80가구가 늘어나는 등 두 달 연속으로 1만 가구 넘게 급증했다. 증가율도 4개월 연속 두 자릿수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시장 위축 정도에 따라 올해 말 미분양이 11만 가구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미분양 급증으로 직격탄을 맞은 건설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지금 분양가대로라면 거의 이익이 나지 않아 (주택 공급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에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보증 개선을 통한 주택사업자의 자금조달 여건 개선과 정부의 미분양 주택 매입, 주택거래 정상화 지원, 탄력적 주택공급 여건 조성 등을 요청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매입 임대사업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건설 중인 미분양 주택을 현행 공공 매입 가격수준(최고 분양가 70~75%)으로 매입한 뒤 준공 이후 사업 주체에 환매하는 '환매조건부 매입'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08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자 '환매조건부 매입'을 시행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공정률 50% 이상인 단지를 환매조건부로 2008년 5000억원, 2009년 1조5000억원 규모로 약 1만가구를 매입했다. 대책 시행 2년 만인 2010년부터 주택경기는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고, 여건이 나아진 건설사들은 대부분의 주택들을 다시 환매로 사 갔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매입하거나 임차해서 취약계층에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깊이 있게 검토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언급하면서 정부 부처들도 LH 매입임대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근 LH의 한 미분양 주택 매입과 관련해 고가 매입 논란이 불거지고, 건설사 지원을 위해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내 돈이었으면 그 가격에 안 샀을 것"이라며 LH를 질책한 뒤 "현재 특정 (미분양) 물량을 정부가 떠안아야 할 단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원 장관은 "미분양 증가세가 방치되면 눈사태처럼 시장 전반에 경착륙 악영향이 있을 수 있어 압력요인 해소를 위해 실수요, 급매물 중심으로 거래 규제가 과도한 부분을 해소해 미분양이 시장에서 소화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도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악성이지 일반 미분양 물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모두 주택시장 위기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가 미분양 주택 매입에 나섰던 2008년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전국 미분양 물량이 16만 5599가구(2008년 12월)까지 치솟았고 '준공 후 미분양'도 5만가구에 달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로 심각한 위기는 아니라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7518가구 수준이다. 또 원 장관은 건설업계를 향해 "건설사들이 지난 7~8년 부동산 경기 호조로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해외 건설시장에 나가든지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자구 노력도 안 하면서 가격 급등기에 무분별하게 금융을 끌어다 놓은 것을 정부가 다 떠안으라는 건 시장경제 원리상 있을 수 없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미분양 매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여러 의견이 갈리고 있다. LH의 매입임대는 온전히 국가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금 낭비 논란이 있고, 환매조건부 매입의 경우에도 최근 전세사기 급증으로 HUG의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보다 미분양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만큼 꼭 미분양 매입이 아니더라도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대책 마련 의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미분양은 부동산 시장의 경기 변동과 상황에 따라 단기에 물량이 폭증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며 "정부도 부동산 관련 대출(PF대출, ABS, ABCP 등) 등의 자금흐름을 집중 점검하고 향후 미분양이 더 급증한다면 건설사의 유동성 공급방안 마련과 미분양 주택 수요자에 대한 세제혜택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가혜 기자 | 강세훈 기자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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