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기획특집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①]아우토반의 충격, 한강의 기적을 만들다

獨 아우토반 보고 온 박 前대통령 고속도로 구상 1년 예산 4분의 1 '429억' 막대한 공사비로 비판도 2년5개월 만에 완공…최빈국서 경제 강국 발돋움 77명 희생자 낳기도…금강휴게소 인근에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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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공사중인 경부고속도로.(사진=한국도로공사 제공)

경부고속도로가 오는 7일 개통 50주년을 맞는다. 1970년 7월7일 첫 발을 내딛은 경부고속도로는 건설초기 효용성에 대한 회의와 막대한 재정부담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50년이 지난 오늘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밑거름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국가산업과 국민생활의 대동맥으로 자리매김했다. 뉴시스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맞아 4차례에 걸쳐 경부고속도로의 역사와 개통 의미, 미래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서울=뉴시스] 강세훈 기자 = 1970년 7월7일 대구시내공설운동장.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준공식이 거행됐다. 대전~대구 구간을 마지막으로 경부고속도로 428㎞ 전 구간 개통을 알리는 행사였다. 훗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성장의 토대가 된 경부고속도로가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추진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기차로 12시간, 기존 도로로는 15시간이 걸리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 시간을 4시간30분대로 크게 단축시켰다. 철도 위주였던 수송 구조는 도로 위주로 바뀌었고, 화물수송이 신속·대량화되면서 수송 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나 물류 대변혁을 가져왔다.

◇독일 아우토반 보고 온 박 前대통령의 고속도로 구상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그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964년 12월 박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와 함께 독일 순방길에 올랐다. 1967년부터 시작될 제2차 5개년계획의 준비를 서둘러야 할 시기여서 독일에 가서 경제건설의 방법을 직접 보고 배워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고속도로였다. 독일어로 자동차도로를 뜻하는 '아우토반'을 기반으로 독일이 경제 부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였다.

박 전 대통령은 첫날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이튿날 쾰른 시로 가 독일의 첫번째 고속도로인 본~쾰른 아우토반을 승용차로 달렸다. 이때 주행시속이 160㎞였다. 당시 박 대통령을 비롯해 동승했던 참모진들 모두 엄청난 속도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두 차례나 중간에 차를 멈추게 하고 2~3분동안 차에서 내려 노면과 중앙분리대, 교차시설 등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때가 경부고속도로 건설 결심을 굳힌 순간이었던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만찬 후 호텔로 돌아와 참모들에게 '고속도로를 달려보니 기분들이 어떻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이후 3년 뒤인 1967년 4월 박 대통령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도로총연장 428㎞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공표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있어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착공 당시 정치권과 언론, 학계의 극심한 우려와 반대에 부딪혔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당시 국가 예산의 24%인 429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국책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 간 복선철도가 이미 있어 고속도로는 중복투자이고 수도권과 영남권 등 특정지역에 대한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각계에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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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70년7월7일 대구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서울~부산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사진=한국도로공사 제공)
또한 당시 자동차 등록대수는 5만 대에 불과해 "한국의 모든 차들을 줄 세워봐야 다닐 차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속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추진됐다.

의식주도 해결하기 어려운 시절 자본, 기술, 장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었지만 희망 하나로 시작된 도전이었다.

1968년 2월1일 경부고속도로 첫 구간인 서울~수원간 고속도로를 착공한 데 이어 구간별로 단계적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수많은 반대 뿐 아니라 유달리 모질었던 자연재해가 공사를 어렵게 했다. 공사는 어렵고 위험해 때로는 소중한 인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도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장비가 없으면 사람이 대신하고, 땅이 얼면 불을 피우고, 장마로 교량이 유실되면 다시 더 튼튼하게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경부고속도로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68년 10월 공사 시작 9개월 만에 서울~오산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12월에는 오산~대전, 대구~부산 구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부족한 자본과 기술력의 한계, 여론의 반대 등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는 완전 개통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피나는 노력의 대가로 얻어진 경사였다.

1970년 7월7일 대구시내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준공식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박 대통령도 눈물을 쏟아내고 '군·관·민'이 하나 되어 감동과 감격과 환희의 순간을 같이 했다.

박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고속도로 개통은 민족의 오랜 꿈과 숙원이 실현된 것"이라며 "고속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으며 조국 근대화 작업을 계속 추진하면 자립과 번영의 내일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2년5개월, 429억원, 892만 명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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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본~쾰른 아우토반 주행을 위해 숙소를 출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일행.(사진=한국도로공사 제공)
개통 당시 경부고속도로는 동양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였다. 공사에는 16개 건설사, 3개 군 공병단, 건설장비 165만대가 투입됐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은 892만8000명에 달했다.

총 공사비는 429억7000만원으로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국가 예산의 24%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1968년 2월1일 첫 삽을 떠 2년5개월 만인 1970년 7월7일 완공했다.

단기간에 고속도로를 완공하면서 난공사 구간에서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준공구간인 당재터널(현 옥천터널) 구간은 건설당시 최장터널이자 최초의 피암터널로, 협곡에 위치해 진입로 설치가 불가하고 퇴적층 지대여서 13번이나 낙반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포함해 전 공사 구간에서 77명의 숭고한 희생자를 낳았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충북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금강4교 북쪽)에 위령탑이 세워졌고 개통식 이후 한 달 만인 1970년 8월7일 위령제가 거행됐다. 이 날은 아침부터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서울~부산 고속도로 건설 공사사무소의 소장을 맡아 산업 역군들과 고락을 함께했던 허필은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와병 중에도 억수같은 비를 무릅쓰고 위령제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지금도 매년 순직자들의 영혼을 추모하고 업적을 빛내기 위해 도로의 날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수많은 산업역군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진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비포장 길을 돌아 15시간 이상 걸렸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 시간이 4시간30분으로 단축됐다.

이로 인해 해상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점유하던 부산항이 서울과 고속도로로 연결되면서 수출입 물동량이 증가하고, 산업 및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역시 1960년대의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과 수출 중심으로 근대화됐다. 이를 통해 6·25전쟁의 비극을 겪으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던 대한민국을 세계경제 10위권으로 만드는 초석이 됐다.

경부고속도로는 도시화·현대화와 국가균형발전을 촉진했을 뿐 아니라 여가문화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여준 문화적 자산이기도 하다.

명절 귀성, 전세버스, 명승지 관광, 휴게소, 톨게이트, 고속도로 순찰대, 수학여행 등이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북 금릉군 봉산면 광천동 '추풍령고개'에는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 서 있다. 428㎞ 서울~부산 고속도로의 중간인 214㎞ 지점에 해당한다. 탑 전면에는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 통일의 길"이라고 새겨져 있다.

후면에는 "우리나라의 재원과 우리나라의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에 있어서 가장 짧은 시간에 이뤄진 조국 근대화의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자랑이라고 새겨져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kangs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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