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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글로벌기업 '혁신'을 배워라]⑤피아트

등록 2016.01.08 06:00:00수정 2016.12.28 16: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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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로 구 경영진 실수 극복한 '피아트'…美 시장진출로 매출 다각화  구 경영진 실수로 내수시장에만 집중하다 "죽음의 냄새 맡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무능한 임원 물갈이…관리직 간부 2000여명 해고

【서울=뉴시스】강덕우 기자 = 자동차 마니아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국제적인 드림카 '마세라티'와 슈퍼카의 대명사 '페라리', 곱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유명한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 '알파 로메오' 등을 소유한 거대 자동차 그룹 '피아트'가 몇 년 전만 해도 파산의 위기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를 뜻하는 카(Car)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성한 '카마겟돈(Carmageddon)'이란 단어가 나올 정도로 부진했던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시장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이탈리아의 피아트는 세계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1899년 설립된 피아트는 이탈리아 '토리노 자동차 공장(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FIAT)'의 영문 앞글자를 따 만들어졌다.

 피아트는 한국의 현대자동차그룹과 비슷하게 승용차와 농기구, 건설, 통신, 보험 등 9개 분야의 사업체를 산하에 두고 있었으며, 이탈리아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국민차 회사다.

 20세기 피아트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성장세를 이어왔다. 1969년 당시 이탈리아 3위 기업이었던 자동차 제조기업 '란치아'를 인수했다. 같은 해 경영난을 겪어오던 페라리의 지분 50%를 인수한 뒤 1985년에는 지분을 85%까지 확장했다. 이어 1987년에는 알파 로메오, 1993년에는 마세라티를 인수하는 등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 왔다.

 피아트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발발 이후 1차 석유파동을 견뎌낸 뒤 1975년에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상용차 및 중장비 제조기업인 '이베코(IVECO)'를 설립할 정도로 안정성이 있는 회사였다.

 '자동차 거대공룡' 폭스바겐과 함께 유럽 자동차 업계의 패권을 다툴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피아트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내수에 집중하자는 경영진의 그릇된 전략선택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1980년대에는 우노(Uno), 1990년대에는 푼토(Punto)라는 소형차 모델에 의존해 내수 시장에 집중해 온 피아트의 결정이 오히려 변해가는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지 못해 유럽 자동차시장에서조차 점유율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판매량 감소로 뒤늦게 위기를 감지한 피아트 경영진은 90년대 말부터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약 15억달러를 투자했지만, 때마침 들이닥친 중남미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1990년 유럽에서 시장점유율 13.8%를 차지해 폭스바겐을 이어 2위 기업으로 군림했던 피아트가 급속도로 잃기 시작하면서 2003년에는 8%, 2004년에는 5%까지 밀려났다.

 2002년부터 적자 행진을 이어가며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이한 피아트는 설상가상으로 2003년 1월 조반니 아넬리 명예회장 등 대주주 아넬리 일가의 주요 인물 2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파산위기에 몰렸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위기에 빠져 쓰러져가던 피아트를 살린 인물은 2004년 영입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최고경영자(CEO)다.

 회계사 출신인 마르치오네 CEO는 취임 상황을 되돌아보며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라고 말한 바 있을 정도로 피아트의 경영상황은 난장판이었다. 2004년 피아트의 누적적자는 120억달러(약 14조2308억원)에 달했다.

 마르치오네 CEO는 죽음의 문턱에 오른 피아트를 살리기 위해 취임 직후 과감한 구조조정부터 단행했다.

 그는 먼저 피아트를 위기로 몰아넣은 관리직 간부부터 해고했다. 그는 관리직 2만명 중 10%에 달하는 2000여명을 과감히 잘라내고, 그 자리에 유능한 중간 관리자를 승진시켰다. 또 새로 부임한 간부들에게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물어 '철밥통'이라 믿고 안주하던 사내문화 자체를 개혁했다.

 수익성이 저조한 부문도 도려냈다. 마르치오네 CEO가 취임한 지 50일 만에 피아트는 보험과 항공우주 부문 자회사를 각각 25억달러, 17억달러에 처분하면서 다각화 전략을 청산했다.

 마르치오네 CEO는 다각화 전략을 접은 대신 자동차 부문에 집중하고 세계 자동차 시장에 눈을 돌렸다. 그는 "비용절감을 위해 한 두 개 공장을 폐쇄할 수 있지만, 전 세계의 강력한 차량 수요에 주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피아트는 세계시장에 다시 진출하기 위해 경쟁사로 여겨지던 인도의 '타타모터'와 중국의 '체리모터' 등과 적극적인 기술제휴를 맺어 신차 개발에 드는 비용과 생산비를 절감했다. 신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 2007년에는 소형차 '피아트 500(친퀘첸토)'을 성공적으로 출시해 유럽 자동차 시장의 점유율도 회복하기 시작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분 뒤 피아트는 위기로부터 회복해 2005년 4분기에는 흑자전환을 실현했다. 이후 2009년 1분기까지 15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오는 성과를 거뒀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회복세에 들어섰던 피아트도 다시 한 번 휘청거리며 2009년 1분기에는 순손실 4억1100만유로를 기록했다. 하지만 마르치오네 CEO는 세계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생산설비를 수정하고 유럽생산량의 15%를 수출로 돌리겠다"며 입지를 굳혔다.

 2009년에는 미국 3대 자동차 기업 중 하나였던 '크라이슬러'가 금융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하자 피아트가 이를 인수하면서 '피아트-크라이슬러(FCA)'로 다시 탄생했다. 피아트는 크라이슬러의 인수를 통해 SUV와 중형세단 제품군을 확보하고, 유럽지역과 소형차에 의존하던 매출구조로부터 완전히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턴어라운드 전문가' 마르치오네 CEO의 세계화 전략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2012년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유럽 시장에서 2억3800만유로의 손실을 기록하고 판매량 역시 2007년 대비 40%나 줄어들었지만, 세계 시장으로 이를 만회하고 오히려 9만5100만유로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2% 증가한 수치다.

 피아트-크라이슬러의 고공행진은 2015년에도 이어졌다. 지난 2분기 매출액은 292억30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순이익도 69%나 급증한 3억3300만유로를 기록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지난 5일 지난해 12월 자동차 판매량은 21만7527대로 전년대비 12.6% 성장했다며 증가세도 68개월째 이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는 설립 이후 최고 수준의 판매량이다.

 특히 크라이슬러와 합병으로 확보한 지프인 '체로키'의 판매량은 42% 증가해 12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혁신적이고 과감한 세계화를 고집한 결과 피아트-크라이슬러는 현재 세계 7위 자동차그룹으로 등극했으며, 르노와 포드,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빅 5'를 자리를 넘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주 8일 근무하는 것으로 유명한 워커홀릭 마르치오네 CEO의 피아트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435만대를 기록한 자동차 판매량을 2018년까지 680만대까지 늘릴 것"이라며 인도와 중국 자동차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