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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③]'맞을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등록 2017.03.21 08: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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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사진 = 토픽이미지스 제공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대체 왜 때리나.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때린 이유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당사자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대답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치부를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데, 생면부지 기자에게 오죽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문전박대였습니다.

 그래도 때린 당사자의 '고해성사'라도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끈질기게 캐물었습니다. 하나같이 자신의 경험을 밝히기 꺼렸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 없다는 게 이들의 방어 논리였습니다.

 이들의 논리가 관행처럼 굳어진 데는 우리의 침묵과 무관심이 한몫했습니다. 데이트 폭력을 한낱 연인 간 '사랑싸움'으로 덮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면 모두가 편한 탓입니다.

 그러는 사이 여성을 향한 폭력은 사적 영역으로 치부됐습니다. 남성은 폭력의 주체가 되고, 여성은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여성'이라는 판단 기준 앞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제대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을 딱 짚기 어렵지만, 적어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집착과 통제가 어느 정도 묵인되고, 생물학적 우월성을 담보로 '여자는 맞을 만한 짓을 한다'는 남성 중심의 그릇된 인식이 원인입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그릇된 논리와 시각은 나열하기도 벅찹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은 스토커를 얼렁뚱땅 순수한 짝사랑에 빠진 남성으로, 성추행이나 데이트 폭력도 달달한 '로맨스'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데이트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해 '여자가 처신을 어떻게 했기에…'라며 원인과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 여성 행실로 떠넘기기도 합니다. 

 해괴한 논리이자 남성 위주의 선입견이 깊게 박혀 있는 잘못된 판단임에도 버젓이 판을 칩니다. 피해 여성을 데이트 폭력의 원인 제공자로 규정하는 몹쓸 짓입니다. 과거의 유물인 줄 알았던 이런 논리가 지금도 여전하다니. 잠시나마 말문이 닫힙니다. 

 연인을 상대로 한 '데이트 폭력'이 점점 잔혹해지고 있습니다. 목숨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연인사이에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여성을 소유·통제의 대상을 여기는 낡아빠진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달리고 화를 내고,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피해 여성이 '다시 만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는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자신의 폭력 행위에 이렇게 손쉽게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을까. 허탈하기만 합니다.

 연인을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여성을 통제 대상으로만 여기는 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연인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라는 이름표를 꼭 붙여야 합니다.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해야 마땅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단순한 사랑싸움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입니다. 피해 여성이 맞을 만한 짓을 해서 일어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맞을 만한 짓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의 매' 따위는 절대 필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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