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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전쟁]③美 '줄세우기'에 흔들리는 자유무역 질서

등록 2018.03.26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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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AP/뉴시스】장 클로드 융커(왼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도널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의장이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3.24 

【브뤼셀=AP/뉴시스】장 클로드 융커(왼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도널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의장이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03.24

미 관세 10% 증가시 2020년 세계교역 3.7% 감소
전 세계 무역전쟁 비용 약 500조원
세계 평균 관세율 10%로 높아지면 韓성장률 0.6%P 하락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양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대공황 이후 구축해 온 자유무역 질서는 70여년 만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달한다. 두 나라가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며 무역 장벽을 쌓을 경우 다른 나라들도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미국이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현재보다 10% 더 부과하고 다른 나라들이 대응할 경우 2020년까지 세계 교역 규모가 3.7% 감소하고 세계 경제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세계 경제가 무역 전쟁으로 치르는 비용은 4700억 달러(5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꺼내든 '관세 폭탄'에 중국과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이 보복을 예고하고 있어 이번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이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600억 달러(약 65조원)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미국산 돼지고기, 철강 제품 등 3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EU는 미국이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내놓자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청바지 등 미국산 소비재와 오렌지, 쌀 등 농산품에 대해 25% 수준의 보복 관세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무역 전쟁이 세계 경제 성장세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중국의 경제 침략을 겨냥한 대통령 각서(Memorandum Targeting China’s Economic Aggression)’에 서명하면서 “이는 여러 가지 조치의 시작일 뿐(This is the first of many)"이라고 밝혔다.

라인스 프리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의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역 불균형 문제"라며 "그는 무역 이슈에 있어서는 '뼈다귀를 문 개'와 같다.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오히려 동맹국들에게 줄세우기를 하며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심산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2일 한국, EU, 캐나다, 멕시코,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동맹국에 대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4월 말까지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국가와 맺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한편, 동맹국들과 더욱 강한 결속력을 만들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도 큰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EU와의 협상에서 관세 면제를 받고자 하는 국가들이 해결해야 하는 5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5개 조건은 ▲미국에 대한 철강·알루미늄 수출량을 2017년 수준으로 제한 ▲중국의 다양한 무역 왜곡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처 ▲주요 20개국(G20) 세계철강포럼에서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력 ▲미국과 협력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중국의 불공정 무역 사례 발굴 ▲미국과의 안보협력 강화 등이다. 

최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NEC)으로 임명된 래리 커들로는 지난 14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항해 우방국들과 힘을 합치거나, 중국이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이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때 보여줬던 '유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무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뜻이 맞는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뜻의 유지연합은 미국이 영국, 호주, 일본 등 동맹국들을 이라크전에 동참시키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다.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다른 나라들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과 단일 대오를 형성할 경우 눈앞의 관세는 면제받을 수 있겠지만 중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EU는 미국의 관세 일시 유예 방침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EU는 23일 EU 정상회의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안보를 근거로 이 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미국 산업 전반에 걸친 보호는 과도한 생산력이란 실제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EU는 미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조치에서 일시 면제됐지만, 이 면제는 영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일본은 당혹감을 표시하면서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23일 한국제와 중국제 탄소강 배관용 부품에 최대 69.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전선에 합류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미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에 놓였다.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당장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피할 수 있겠지만 중국의 경제 보복 위험이 있다.

중국은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로 중국인 단체여행객의 한국 관광을 중단하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각종 불이익을 줬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중국에 많은 양의 중간재를 수출하고 국가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전 세계 평균 관세율이 현재의 4.8%에서 10%로 높아질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0.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 자산운용 글로벌 시장전략가 한나 앤더슨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시장은 미국, 한국, 대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시장에 있는 기업들이 중국 제품의 글로벌 공급 사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ING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버트 카넬은 "(미국의) 관세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중국이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며 "그럴 경우 매우 빠르게 글로벌 규모의 이전투구가 될 수 있다. 이 분쟁은 미국과 중국의 문제지만 아시아 다른 지역들도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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