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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은 잘못했지만 미투는 글쎄"…갸웃거리는 남자들

등록 2018.03.31 12: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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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 및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18.03.27.since1999@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 및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email protected]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치부하는 듯한 시선 불편해"
"미투 폭로 중 사실 아닌 것도 있어…어떻게 다 믿나"
'폭로자 의도 의심' '꽃뱀 냄새 난다'는 식 댓글 흔해
'펜스룰' '90년생 김지훈' 등 여성 배제와 조롱도 등장
전문가들 "남성 공격이 아니라 구조적 변혁 움직임"
"허위 폭로 극소수 사례…전체 진정성 의심 옳지 않아"
"위계권력 문화 희생자엔 남성도 포함…함께 바꿔야"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문화·예술·정치계 등 각 분야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당수 남성들이 '미투 운동'이 불편하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다.

 여성을 향한 성희롱과 성폭력에는 반대하고 혐의가 드러난 이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다면서도 미투 운동은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치부하는 듯해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다.

 대학생 최모(25)씨가 그렇다. 최씨는 "주변에 '여사친(여자사람 친구를 뜻하는 말로, 연인관계는 아닌 이성 친구를 이르는 말)'이 많아 함께 이야기를 많이해서 나름대로 여성들의 입장을 평균 남성보다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최근 사회관계서비스(SNS)를 통해 미투 지지 선언을 보면 불편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마치 모든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이나 추행을 가할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라고 보는 것 같다"며 "사실 이윤택씨나 조재현씨 같은 사람들은 일부 아니냐. 내 주변만 봐도 그런 사람들이 없는데 마치 모든 남성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강모(31)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강씨는 "지금 미투 열풍이 강해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모든 폭로를 무조건 사실로 단정하는 식이라 불편함을 느낀다"며 "실제로 몇 년 전에 허위 성희롱 폭로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지 않았나. 유명 연예인에게 돈을 목적으로 접근해오는 등 허위 사실을 꾸며대는 일이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데 어떻게 모든 폭로를 진짜라고 믿는지 의문"이라고 의아해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피켓을 들고 '성차별, 성폭력 즉각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18.03.23.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피켓을 들고 '성차별, 성폭력 즉각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18.03.23. [email protected]

여성과 교류를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펜스룰'이다. 여성과 함께 있는 걸 가급적 피한다는 것인데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서 유래한 말이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은 '그냥 이쯤 되면 여자하고 남자하고 격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 '아예 펜스룰을 철저하게 지키는 게 속 편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나아가 미투 폭로자들을 '꽃뱀'이라든가, '뒤에서 딴 소리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폭로된 유명인들 관련 기사 댓글에는 '(폭로자 의도를) 의심해봐야 한다', '꽃뱀 냄새가 난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급기야는 여성 차별이 아닌 남성 차별을 공론화하는 '유투' 계정이 만들어지거나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 이야기를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비꼬는 의미로 '90년생 김지훈'이라는 프로젝트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게시되기도 했다. 남성으로서 겪은 성차별의 내용을 소설로 쓰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반응이 강남역 살인사건 때 보인 남성들 반응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건물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사건에 대해 '여성혐오 범죄'라는 분석이 제기되자 상당수 남성이 "조현병에 의한 개인 일탈인데도 왜 남성 전체를 가해자로 모느냐"는 반발을 보였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2016년 5월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2016.05.18.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2016년 5월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 여성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2016.05.18. [email protected]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투 운동은 남성이라는 개인을 공격하자는 게 아니라 성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구조적 개혁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 때 불었던 '나도 피해자다' 운동 또한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로 변화시켜가자는 운동이었다"며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차별과 폭력 경험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이것을 변화시키는 데 참여해달라는 요청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세연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도 "지금 미투 운동은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일어나고 그 행위가 용인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며 "남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미투 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들을 배제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펜스룰은 여성을 배제시킴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여성'이 아니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남성'"이라며 "비판의 화살은 그 남성들을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부대표는 "일부가 제기하는 '꽃뱀'이야기나 허위 폭로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라며 "실제로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례적인 사례를 들어 전체 피해 사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지난해 8월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최근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7.08.06.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지난해 8월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최근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7.08.06. [email protected]

이들은 미투 운동이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돼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남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한국사회 문화에서 자라온 남성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라며 "이런 전반적인 사회 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 미투 운동"이라고 밝혔다.

 권 부대표는 "권력과 위계가 공고한 문화 속에서 자라온 남성들이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위계적 문화로 희생되고 억압받는 것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위계권력 문화를 바꾸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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