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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이젠 발포명령자다④]무차별 학살 증거 '검시조서'

희생자 165명 광주지검 검시조서·사체검안서 분석
"초등·중1 마을에서 목욕하던 중 엠-16 총상에 사망"
"귀가하다·주택 안방·숙직 근무·남편 기다리다 총상"

등록 2020.01.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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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과 시민들의 분노, 항쟁이 끝난 뒤 광주 모습이 담긴 영상이 38년만인 9일 오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 처음 공개됐다. 희생자가 잠들어 있는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다. 2018.05.09. (사진=5·18민주화운동기록관 공개 영상 촬영)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과 시민들의 분노, 항쟁이 끝난 뒤 광주 모습이 담긴 영상이 38년만인 9일 오후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 처음 공개됐다. 희생자가 잠들어 있는 관 위에 태극기가 덮여 있다. 2018.05.09. (사진=5·18민주화운동기록관 공개 영상 촬영)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사망기록이 담긴 165명(경찰·방위군 포함)의 '검시조서'에는 신군부가 시위 진압이 아닌 총기 사용을 통해 '광주 학살'을 시도 했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뉴시스는 7일 5·18 희생자 165명의 시신 검안 기록인 '광주지검 검시조서'와 '사체검안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현재 희생자에 대한 기록은 검시조서와 사체검안서, 광주보안대 '검시결과보고서'가 남아있다.

희생자 사인은 항쟁 초기인 18~20일은 계엄군의 구타와 흉기에 의한 타박사와 자상사(23명)가 대부분이었다. 20일 오후부터 27일까지는 총상(129명)이었으며 차량사(13명) 등이 있다.

또 검시조서에는 희생자의 사망당시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어 계엄군의 잔혹성을 드러냈으며 '비고'란에 기록된 사망경위를 토대로 시위와 상관없는 희생이 많았음을 증명했다.

검시조서상 1번 희생자는 고등학교 3학년 여고생으로 '1980년 5월23일 오전 9시 지원동 장소불상, 엠-16총상·하복부 총상'으로 '사망 일시 장소·사인'이 기록돼 있다.

2~5번·10번·18번 희생자는 사망 장소와 사인이 각각 1번과 같았으며 "화순읍 자신의 집에 가기 위해(2번)·이유없이 가출(3번)·집에서 목공일을 하러 간다고 출타(4번)·데모에 참가하기 위해 출타(5번)·화순군 능주면 소재 누나집으로 가던 중(10번)" 등으로 사망경위가 '비고'에 남겨져 있었다.

6번과 17번 희생자는 초등 4학년·중 1년 생으로 "5월24일 오후 1시10분·50분께 효덕동 소재 저수지에서 목욕하고 귀가 중 엠-16 총상 사망"이라고 기록돼 있다.

5월27일 오전 3시 전남대병원에서 숨진 7번 희생자는 "5월21일 오후 4시50분께 무등극장 앞 사무실에서 칼빈 총상", 사망 장소가 '인성고등학교'로 나와있는 9번 희생자는 "진흥중학교 1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안전여부를 알기 위해 길을 가던 중 엠-16 총상에 사망"했다고 적시돼 있다.

68세 여성 16번 희생자는 "광주 서구 쌍촌동 안방에서 엠-16 유탄에 의해 사망"했으며 19번과 33번, 42번·154번·158번 희생자(14세)는 "옛 전남도청 앞 데모를 구경하던 중 피격", 23번 희생자는 "5월27일 숙직 근무 중 총성을 듣고 광주고등학교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가 엠-16에 피격 됐다"고 적혀 있었다.

희생자 29번으로 기록돼 있는 18세 남성은 "광주에서 재수를 하던 중 담양으로 귀가하다 유탄에 피격" 당했다. 

25세 남성 46번 희생자는 "5월21일 오후 2시께 금남로에서 피격당한 사람을 부축하다 엠-16에 피격당함", 53세 여성 37번 희생자는 "광주 북구 운암동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유탄에 피격" 된 것으로 기록됐다.

5·18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윤상원 열사는 검시조서에는 72번 희생자 '윤개원'으로 기록돼 있었다.
  
29세 남성으로 기재된 조서에는 "사망 일시 및 장소가 5월27일 전남도청으로 나와있으며 사인은 '예리한 흉기에 의한 자상과 3도 화상'"으로 적시돼 있었다.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사망기록이 담긴 '검시 조서'.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2020.01.07.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사망기록이 담긴 '검시 조서'.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2020.01.07. [email protected]


성명과 주소 '불상', 연령대 '4세 가량'으로 추정된 91번 희생자는 "사망 일시 1980년 5월27일, 효덕동 뒷산에서 발견돼 6월7일 오전 11시 조선대병원에서 검안이 이뤄졌으며 심한 부패로 총상 이외 사인 추정 곤란"으로 기록돼 있었다.

임산부 희생자(당시 23세)는 검시조서상 93번으로 "5월21일 오후 1시50분께 광주 북구 중흥동 앞길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피살, 6월7일 오전 11시 조선대 부속병원에서 검시, 사인이 엠-16 총상"으로 밝혀져 무고한 희생이었음을 보여줬다.

이 밖에도 14세 여성인 74번 희생자는 "5월27일 오후 9시40분께 장소 불상에서 외출을 하던 중 계엄군의 요구에 불응해 피격"을 당했으며, 75번 희생자 50세 남성은 "1980년 5월24일 오후 8시40분께 광주에 있는 자녀를 주거지인 전남 나주로 피신시키다가 피습을 당해 국군통합병원 입원 중 사망"으로 적혀 있다.
 
29세 남성인 87번 희생자는 "5월22일 오후 5시50분께 부인의 분만을 위해 내광해 광주 쌍촌동 번지 불상의 친척집에 투숙 중 엠-16 총상에 피격"됐으며 138번·142번 희생자는 5월21일 공장을 나가던 중, 종업원 찾으러 나가다 사망한 것으로 적시돼 있었다.

99번~103번 희생자는 "광주교도소에서 군 작전상 일어난 사건이므로 사인이 엠-16으로 추정"됐다.

145번 희생자는 "1980년 5월23일 오후 2시 총성이 들려 동구 지원동 집 앞에서 동네사람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던 중 사망", 23세 남성 155번 희생자는 "제대한 뒤 은행 행원시험에 응시했고 5월21일 오후 3시께 형을 만나러 가던 중 총살을 당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163번·164번 희생자는 "1980년 5월21일과 22일 오후 10시께 '장소불상'에서 엠-16 총상에 숨졌으며, 6월2일 주민신고에 의해 지원동 주남부락 뒷산에서 발굴"로 기록돼 있다.  

마지막으로 165번 희생자는 5·18 암매장지로 지목되고 있는 옛 광주교도소 앞 야산에서 1980년 6월2일 주민신고로 발견된 27세 남성으로 엠-16 총상에 의한 사망"으로 적시돼 있었다.

검시조서를 토대로 당시 사체검시는 1980년 5월25일부터 6월16일까지 총 14회에 걸쳐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입회하에 민간 의사와 군의관에 의해 진행됐다.

희생자는 항쟁 초기인 19일부터 나왔지만 수일이 지난 후 검시가 이뤄졌으며 부패로 인해 사인은 의사의 육안과 감각에 의해 결정됐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5·18이 40년이 되도록 정확한 사망자와 행불자 숫자, 사망경위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에 구성된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민간인 총격 사망, 사체 암매장, 발포 명령자 등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