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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이젠 발포명령자다⑤]항쟁 10일간 165명 중 129명 총상 희생

총상, 고문 후유증 113명·공식 행불자 84명…총 362명 집계
행불자 신고 448명 넘어…"신군부는 희생자 축소 등 왜곡"

등록 2020.01.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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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끌려가고 있는 소년 시민군의 모습. 정씨는 "당시 고작 14살, 16살 정도의 어린 애들도 시민군에 동참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서울=뉴시스】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끌려가고 있는 소년 시민군의 모습. 정씨는 "당시 고작 14살, 16살 정도의 어린 애들도 시민군에 동참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대부분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하지만 발포 명령자는 40년이 되도록 밝혀지지 않고 있다.

8일 조선대학교 민주평화연구원이 발간한 '5·18민주화운동 사망·상해·실종·암매장 사건 및 성폭력 등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한 선행조사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80년 5·18 당시 계엄군 등의 발포와 구타 등으로 희생된 사망자는 총 16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항쟁이 끝난 이후 총상으로 인한 부상 등으로 고통을 받다 숨진 희생자는 113명이며, 주검조차 찾지 못하고 실종자로 남아있는 행불자도 84명으로 총 362명이 숨졌다.

그날의 고통을 안고 있는 부상자(상이자)도 2504명이며 이 중 1217명은 연행 뒤 고문 등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40년을 버티고 있다.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항쟁 10일 동안 사망자 165명 중 대부분은 계엄군이 발포한 총탄에 숨졌다.

무고한 양민학살이었음을 증명하는 첫 희생자였던 김안부(노동)씨와 김경철(농아인)씨는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과 군화발에 맞아 숨지는 등 '타박사'로 인한 사망은 14명이다. 

흉기 등에 찔려 숨진 열사는 윤상원·김경환·민병열 등 9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시위대가 운전하는 차량에 치어 숨진 경찰관 4명 포함, 차량사고로 숨진 희생자는 13명이다.

나머지 129명은 총상으로 숨진 것으로 당시 시신 검안을 했던 의료진과 검사들은 기록했다.

5월20일 광주역 집단발포로 10여명이 숨지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21일 50여명, 22일 20여명, 23일과 24일 40여명, 최후 항쟁이 벌어졌던 27일 20여명 등이다.

【서울=뉴시스】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의 모습. 정씨는 당시를 "한민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기억했다.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서울=뉴시스】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의 모습. 정씨는 당시를 "한민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기억했다.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희생자 장소별로 분류한 결과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일원이 6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외 광주에서 시외로 빠져나가는 길목이었던 진월동·송암동에서 16명, 교도소 부근 11명, 학동·지원동 등에서 11명, 광주변전소 총격 3명, 해남지역에서 2명 등 52명이 도심 곳곳과 전남 해남 등지에서 무고한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50여명의 희생자는 사망 뒤 이곳저곳으로 옮겨져 정확한 장소를 특정할 수 없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1980년 5월26일부터 6월19일까지 시행한 검찰의 검시 결과는 보안사가 같은 해에 시행했던 것보다 6명 많은 165명이었으며 총상의 원인을 카빈보다 M-16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안사가 작성한 사인별 통계는 M1과 카빈으로 인한 사망자를 94명, M-16 총사자는 24명, 오발 사고 14명으로 기재해 왜곡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주남마을 미니버스 사망자가 17명이지만 신원확인자가 3명밖에 되지 않아 사실 규명과 함께 전면적인 재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록도 명확하지 않다"며 "현재 행불자 신고만 448건에 이르고 있어 사망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