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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대출규제②]머리 자르랬더니 아예 삭발?....당황한 금융당국

등록 2021.08.29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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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에 가계대출 한시적 신규 취급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농협은행은 이날부터 11월 30일까지 전세대출, 비대면 담보대출, 단체승인 대출(아파트 집단대출) 등의 신규 신청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2021.08.24.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에 가계대출 한시적 신규 취급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농협은행은 이날부터 11월 30일까지 전세대출, 비대면 담보대출, 단체승인 대출(아파트 집단대출) 등의 신규 신청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2021.08.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정옥주 최홍 기자 = "농협의 신규대출 취급중단과 같은 조치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금융당국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NH농협은행발(發) 신규대출 중단 사태로 인한 '풍선효과'가 전 금융권으로 확산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이 지난 23일부터 오는 11월 말까지 신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전면 중단한데 이어,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도 일부 대출상품을 중단했다. 농협중앙회도 27일부터 지역농·축협에서 준조합원·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농협발 대출중단이 전 금융권으로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자, 금융당국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농협이 대출중단이란 초강수를 둔 것은, 올해 가계대출 취급 목표치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초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초 제시한 연중 목표치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증가세가 높은 주담대 취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단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금융위는 "대형 시중은행을 포함한 대다수 금융회사들은 가계대출 자체 취급 목표치까지 아직 여유가 많이 남아있다"며 "따라서 농협은행·농협중앙회의 주담대 등 취급중단과 같은 조치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우리·SC제일은행이 일부 대출상품 취급을 중단한 것을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와 엮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언짢은 심경도 드러냈다. 이는 예년에도 통상적인 리스크관리 노력과 경영마케팅 차원의 조치일 뿐, 농협 사례와 엮지 말란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공언에도 상황은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주담대·전세대출 뿐 아니라 신용대출도 줄줄이 축소되고 있다. 앞서 전세대출을 중단한 우리은행은 주담대 우대금리 최대한도도 축소키로 했다. 또 농협이 개인 신용대출의 최고한도를 1억원 이하, 연소득의 100%로 축소한 데 이어 하나은행도 27일부터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범위 이내로 제한했다. KB국민·신한·우리·카카오 등 타행들도 다음달 중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키로 했다.

대출 조이기 현상은 비단 은행권에만 그치지 않고 보험사와 카드사 등 제2금융권 뿐 아니라 증권사로도 확산되는 조짐이다.

한국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신용공여 한도 소진으로 예탁증권담보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개인들이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를 막기 위한 조치다. 보험사들도 대출심사를 강화하거나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은 올 초 연간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치로 4.1%를 정했는데, 삼성생명 등 일부 대형 보험사들은 이미 목표치를 넘었거나 임박한 상황이다. 특히 삼성생명은 지난 6월말 증가율이 4.4%로 이미 목표치를 넘어 신규 대출을 대폭 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카드사들도 내년 7월부터 적용되는 차주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조기적용 등 총량관리를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머리 자르랬더니 아예 삭발하고 나타난 격"

금융당국이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급증한 가계부채가 우리나라 경제의 뇌관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본격적인 금리상승기가 도래하면서 '영끌'족, '빚투'족은 물론,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중소기업·소상공인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급증한 가계부채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가계부채가 몸집을 불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보호해야 할 취약계층 등 실수요자들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단 점이다. 금융당국의 본래 구상은 투기적 대출 수요를 억제하면서 실수요자는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현장에선 이러한 정책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압박에 은행들이 무차별적으로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정작 생계자금과 전세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실수요자들까지 모두 피해를 입게 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총량은 총량대로 관리를 하되 전세대출 등 꼭 필요한 부분은 가급적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려 한다"며 "기본적으로 전세대출에 대해서는 금융권에도 계속 지원할 것을 요청은 하고 있는데 은행들로서는 전반적인 대출 공급한도를 맞춰야 하다 보니 전세자금 등 실수요 대출도 관리 대상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전체적으로 총량관리를 하다보면 어려움은 분명히 있다"며 "전세대출, 정책모기지 등 실수요 대출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정책하겠다"고 말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실수요자에 대한 공급은 지속하면서도 투기 수요는 차단하겠단 정부의 방향은 솔직히 가능하지 않다"며 "현장에서 대출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방법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더군다나 최근엔 일반적인 신용대출의 80~90%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자금 용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니 한도 제한이나 금리 인상으로 가계 대출을 억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실수요자 피해를 지적하고 있는데 금융당국도 전세대출 같은 실수요 대출까지 건드리는 것을 원친 않았을 것"이라며 "농협의 대출중단 조치가 금융당국의 의도였든 아니든 간에 이러한 후폭풍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 입장에선 마치 두발 단속에 나섰더니 은행들이 아예 삭발하고 나타난 격이라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출 고삐 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 후보자도 "가계부채 관리를 최우선 역점 과제로 삼고, 가능한 모든 정책역량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2023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키로 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일정을 앞당길 가능성도 시사했다.

제2금융권의 마이너스 통장도 관리대상이 될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금융위는 시중은행에 대한 규제로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내년 7월부터 제2금융권 한도성 여신의 미사용 금액에 대해서도 대손충당금 적립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서민들의 급전 창구로 여겨지는 2금융권의 마이너스 통장마저 개설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