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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의림지 인공섬 '순주' "수심·청정도 가늠하는 기능했다"

등록 2017.03.30 16: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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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제천시 세명대 김종수 외래교수는 삼한시대 수리시설 의림지 내 인공섬인 '순주'가 저수지의 수심과 청정도를 가늠하는 용도로 설치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25일 촬영한 의림지 내 인공섬인 '순주'. 2017.03.30.  ksw64@newsis.com

【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제천시 세명대 김종수 외래교수는 삼한시대 수리시설 의림지 내 인공섬인 '순주'가 저수지의 수심과 청정도를 가늠하는 용도로 설치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25일 촬영한 의림지 내 인공섬인 '순주'. 2017.03.30.  [email protected]

김종수 세명대 외래교수, 김이만 '학고집' 관찰기록 주목

【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제천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삼한시대 수리시설 의림지(義林池) 내 인공섬인 '순주(蓴洲)'가 수심(水深)과 청정도를 가늠하는 기능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종수 세명대 외래교수는 최근 '한국전통문화연구' 18집에 실은 논문 '15~19세기 의림지의 관개·수리시설 연구'에서 제천 출신 오상렴(吳尙濂·1680~1707년)의 시문집 '연초재집(燕超齋集)'을 인용해 "1696년(조선 숙종 22) 제천 현감 홍종우(洪鍾宇·1661~1726년)가 의림지에 '작은 섬(小嶼)'을 만들고 초목을 심었다"며 이 작은 섬을 순주로 파악했다.

 오상렴의 스승인 이서우(李瑞雨·1633~1709년)의 시문집 '송파집(松坡集)'에 실린 김봉지(金鳳至·1649~1675년)의 '제천16경'에 '순주'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이 의림지 순주는 어떤 용도였을까.

 김 교수는 제천 출신으로 의림지 인근에 살았던 김이만(金履萬·1683~1758년)의 문집 '학고집(學皐集)'을 주목했다.

 김 교수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노라니 맑고 얕은 정도가 순주에 기록된다'는 김이만의 관찰 결과에 대해 순주의 용도가 수심과 청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파악했다.

 다만, 조선 후기 화가 이방운(李昉運·1761~1815년)의 서화첩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의 의림지도에는 순주가 그려져 있지 않다.

 김 교수는 이 순주의 이름이 의림지의 옛 특산물인 '순채(蓴菜)'에서 따온 것으로 봤다.

 의림지의 순채와 관련해 김 교수는 "김이만은 의림지에 서식하는 다양한 어족·조류·식물종을 기록했고 의림지의 특산물로 명성이 드높았던 순채는 '임호채순기(林湖採蓴記)'라는 기문 양식을 빌려서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고 말했다.

 김이만은 문집에서 '자신의 집이 의림지와의 거리가 5리 정도로 가까워 순채를 텃밭에 있는 과실처럼 했다'고 할 정도로 순채에 관해 가장 상세한 관찰과 기록을 남겼다.

 【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제천시 세명대 김종수 외래교수는 삼한시대 수리시설 의림지 내 인공섬인 '순주'가 저수지의 수심과 청정도를 가늠하는 용도로 설치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순주에 관한 관찰 기록을 남긴 김이만의 시문집 '학고집'. 2017.03.30.  photo@newsis.com

【제천=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제천시 세명대 김종수 외래교수는 삼한시대 수리시설 의림지 내 인공섬인 '순주'가 저수지의 수심과 청정도를 가늠하는 용도로 설치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순주에 관한 관찰 기록을 남긴 김이만의 시문집 '학고집'. 2017.03.30.  [email protected]

 김이만은 '임호(林湖·의림지)의 순채는 우리나라에서 으뜸이다. 호수 근처의 백성이 다만 배불리 먹을 뿐만 아니라 멀고 가까운 곳에서도 왕래하고 한다'고 해서 의림지 순채의 명성을 전했다.

 의림지 순채는 여러 문헌에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의림지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2개의 못에 순채가 있다'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천현 조에는 '순채(蓴) 의림지에서 난다'고 적고 있다.

 앞서 송파집에서도 '순주의 물이 깊지 않고 순채가 물에 많다'고 했다.

 이 순채는 채취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수가 줄었다.

 김 교수는 "의림지 주변에 일정한 규모의 촌락이 형성됐고 그에 따라 수질 악화와 같은 위해 요인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림지 순채는 1972년 대홍수 때 저수지를 축수하는 과정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김이만의 '의림지기문(義林池記文)'에 정인지(鄭麟趾 ·1396~1478)가 작은 못인 '선지(鐥池)'를 구축했다는 기록에 주목하고 15세기 중·후반부터 의림지에 친지(親池·어미 못)와 자지(子池·작은 못)형 수리체계가 운용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의림지의 수원(水源)은 용두산에서 유입되는 계곡수와 저수지 자체의 기층 부위에서 샘솟는 천원(泉源)의 두 인자가 제공돼 깊은 수심과 막대한 저수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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