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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 기밀해제 문서에 김일성 살인 일화·암살기도로 부상" VOA

등록 2017.11.09 06: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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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AP/뉴시스】일본 도쿄에 있는 조선학교 교실에 9월 26일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사진이 걸려있다. 2017.11.02

【 도쿄=AP/뉴시스】일본 도쿄에 있는 조선학교 교실에 9월 26일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사진이 걸려있다. 2017.11.02

  CIA 문서 "김일성, 닭고기와 함께 요리된 개고기 좋아해"

 【서울=뉴시스】 이현미 기자 =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해제 문서들을 통해 북한 김일성 주석의 과거 행적들이 공개됐다. 학창시절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일화에 암살기도로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은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VOA에 따르면 기밀해제된 것들 중 1949년 작성된 CIA 문서는 김일성 의 정체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일성의 정체(identity)'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당시 북한 지도자로 활동하는 김일성이 실제로는 김성주라는 인물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성주가 김일성이 되기까지의 행적을 자세히 묘사했다.

 김성주는 14세 때 부모를 따라 중국 만주로 이주했다. 이후 중국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중 급우의 돈을 훔치다 발각됐고, 이 사실이 알려질 게 두려워 도주를 하던 중 급우를 살해했다.

 결국 중국 내 다른 지역에 정착한 김성주는 이후 당시 소련으로 가기로 결심했지만 이 때도 돈이 필요해 최씨 성을 가진 남성을 하얼빈에서 살해했다는 게 CIA의 설명이다.

 18세가 된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의 초기지도자인 리리싼을 만나 중국공산당 청년 조직원으로 가입했는데, 얼마 후 리리싼의 신임을 얻어 중국 공산당원이 된다.

 CIA는 1919년 실제 항일운동을 펼쳤던 김일성 장군이라는 인물이 존재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일성 장군은 어느 순간 사라졌는데, 리리싼이 김성주의 이름을 김일성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 때가 1931년 10월이다. 

 이후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백두산 일대의 게릴라군 사령관으로 활동하게 된다.

 CIA에 따르면 당시 김성주는 공산주의를 전파하면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했지만 이런 모습은 리리싼을 만족시켰다. 김성주는 이후 군 고위직으로 진급을 거듭하게 되고, 결국 소련 연방의 스탈린도 김성주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CIA는 이 문서에서 김성주가 영특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스탈린에게 높은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스탈린과 김성주는 한반도의 공산화에 황금기를 맞게 됐다고 CIA는 덧붙였다.

 해당 문서는 1949년 9월 CIA가 작성해 같은 해 12월 비밀문서로 미 국무부와 육·해·공군에 보고됐다. 이 문서의 비밀해제가 이뤄진 시점은 2011년이다.

 김일성 주석이 실제로는 김성주라는 의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그러나 CIA 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IA의 또 다른 문서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김일성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1951년 작성된 '김일성 배경 정보'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7년부터 1950년 5월까지 평양 남산동의 한 주택을 공식 거처로 삼았다.

 이곳은 과거 일본인 히로타가 거주했던 곳으로 김일성은 5명의 요리사를 비롯해 20명을 하인으로 뒀다고 CIA는 덧붙였다. 다만 요리사 등과의 관계가 좋았고, 종종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사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고 되어 있다. 

 김일성은 주로 육류를 선호했고, 생선류와 채소는 거의 먹지 않았다고 이 문서는 명시했다. 또 닭고기와 함께 요리된 개고기를 가장 좋아했으며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로 이 메뉴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당시 평양에서는 김일성의 체중이 이 요리 때문에 불어났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CIA에 따르면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김일성 주석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았고, 이 기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했다. 흡연은 적당히 했고, 와인을 선호했지만 음주량은 많지 않았다. 취침은 밤 10시, 기상은 새벽 4시였다는 자세한 일상까지 기록돼 있다.

 이 문서는 김일성의 취미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테니스를 열정적으로 했고 종종 승마를 즐기기도 했으며, 운동 삼아 나무를 격파하거나 사격에도 능한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운전은 할 줄 몰랐다고 기록돼 있다.

김일성은 또 러시아 포크댄스를 선호했지만 종종 아내와 서양식 사교 댄스 행사에 참여했다. 아울러 1년에 2~3번 정도는 평양 만경대 인근 지역 식당에서 기생들과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CIA는 김일성이 대사관에 파견된 소련 고위급 인사와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과 어울리곤 했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상황도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이 가족과 정부 관계자들을 평양에서 탈출시켰으며, 거주지와 사무실 내의 모든 문서를 불로 태웠다고 전했다.

 1950년 6월 남한을 침공한 북한군이 약 4개월 만인 10월을 전후해 한미 연합군의 반격으로 평양을 내주던 때로 추정된다고 VOA는 전했다. 

 또 다른 CIA 문서는 김일성이 1951년 6월6일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북한군 장교에게 암살을 당할 뻔한 사실도 전하고 있다. 김일성은 당시 오른쪽 폐에 부상을 입었으며, 평양의 중앙인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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