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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남과 북에서 길어올린 사진들, 노순택 '핏빛 파란'

등록 2018.09.22 0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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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틀

붉은 틀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여기 그을린 몇 점의 사랑, 아니 삼겹살이 있다. 이 사랑은 익다 말았다. 아니 타다 말았다. 삼겹살은 그저 음식이기에, 우리는 그저 바라본다.
붉은 틀

붉은 틀

이것이 타다 만 사람의 살이라면,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북한 포격으로 불에 탄 연평도의 가정집 냉장고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붉은 틀

붉은 틀

이성은 차이를 구분하고, 감성은 공통점을 모색한다고 했던가.내 눈엔 여전히 불에 탄 사람의 살로 보인다. 그을린 사랑의 살로 보인다. 아리구나. 너와 내가 힘겹게 칠한 파랑이 핏빛 파란이라니.”(작업노트 중)

사진가 노순택(47)의 '핏빛 파란-블러디 분단 블루스(Bloody Bundan Blues)' 전시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인 광주시립사진전시관에서 개막했다. 2018 광주비엔날레를 맞이해 광주시립미술관이 특별 기획했다.

노순택은 다큐멘터리 사진 분야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다. 사진 부문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4)에 선정된 작가이기도 하다. 

분단인 멀미

분단인 멀미

이번 전시는 그동안 진행해 온 여러 작업들 중 분단문제와 비교적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 작업을 추려서 엮었다. 중심에 둔 작업은 ‘붉은 틀’이다. 이 연작은 북한에 관한 세 개의 시선을 담았다.

작업을 시작한 이래 작가의 관심사는 늘상 분단의 작동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분단의 작동과 오작동, 분단체제의 정교함과 어설픔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분단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만큼이나 존재론적인 질문인지 모른다. 분단의 어떤 풍경은 가시적이고, 어떤 풍경은 비가시적이다.

분단인 달력, 경고

분단인 달력, 경고

메인 주제인 ‘붉은틀’ 연작은 총 3장으로 구성, 북한 속의 북한, 남한 속의 북한, 그리고 북한에서 만난 북한인과 남한인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북한에 분단의 모순과 갈등이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 지 사진과 텍스트들을 통해 보여준다.

제1장 ‘펼쳐들다’는 북한사회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의 일단을 제시한다. 일사불란하고 화려한 단결이 춤을 춘다. 북조선식 종합예술의 긍지와 신념, 경이가 펼쳐진다. 부제를 ‘질서의 이면’이라고 붙였는데, 그것은 숨은 그림 찾기로 드러나는가 하면, 모습을 저 너머에 감추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사진은 질서의 표면을, 그것도 매우 협소하게 보여주므로, 이면을 읽어내는 건 관람객의 몫이다.

2장 ‘스며들다-배타와 흡인’은 북한이라는 공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곳을 탐색하는 남한인들의 풍경을 담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기 남북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숱한 이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발 딛기 어려운 곳이다.

분단인 달력, 경고

분단인 달력, 경고

방문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명감에 사로잡힌다. 쉴 틈 없이 사진기를 꺼내드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 촬영행위는 ‘여기에선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서야 가능하다. 허락과 동시에 사람들은 권총을 꺼내듯 재빠르게 사진기를 꺼내고,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듯 셔터를 누른다. 북한사람들도 감시와 체제선전을 위해 남한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가끔 사진기는 상대방에게 건네져 우호와 기념의 정을 나누는 가교의 역할마저 담당한다. 이때 서로는 기꺼이 상대방의 사진사가 되어준다.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죽일 듯 총을 겨누던 남과 북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게 사진기를 겨누는 모습은 거룩하고 기이한 의식의 전환처럼 보인다. 그 순간 사진은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찍어야만 하는’ 것이다. 저마다가 찍어댄 사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떻게 공유되고 기념되었는지는 상상할 뿐이다.

3장 ‘말려들다’는 북한이라는 거대상징이 남한에서 어떻게 재현, 제시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오랜 시간 북한은 남한에서 빨갱이 괴물 전쟁광 흡혈귀로 재현돼 왔다. 벌건 대낮 서울시청광장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형상화한 인형의 모가지가 잘리고 인공기와 함께 화염에 휩싸이는 풍경은 어딘지 끔찍하지만 낯설지 않다.

분단인 달력, 5월

분단인 달력, 5월

북한은 남한사회를 분열시키는 동시에 강력한 통합을 강제하는 존재였다. 무엇이든 북괴빨갱이 탓을 하면 만사형통이니까. 북한보다 북한을 더 애용하게 된 우리는 누구일까. 괴물과 싸우다가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리는 ‘전복된 자기모순’은 남한만의 비극이 아니다. 1장 ‘펼쳐들다’와 3장 ‘말려들다’는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준다.

또한 속칭 ‘삐라’ 살포 현장을 포착해 남북한 선전전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데마고기’ , 보수 우익 단체 시위 현장 사진을 통해 진정한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주는 ‘애국의 길’ , 분단 이래 분단 관련 사건을 빼곡히 적어놓은 달력인 ‘분단인 달력’ , 중국에서 북한 접경지역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들로 이뤄진 ‘분단인 멀미’ , 연평도 포격 및 천안함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 우리가 진정으로 분노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끔 하는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와 ‘가면의 천안함’ 연작도 전시한다.

사진 전문 독립 큐레이터인 최연하 평론가는 “‘성실’한 사진가 노순택이 분단 이후 ‘실성’한 시대상을 ‘넝마주이’처럼 수집한 장면들은 사진의 형식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에 의해 표상된 우리 시대의 역사적 삶과 실제 상황에 대한 상호 교차적 통찰을 하게 한다”고 평했다.


데마고기

데마고기

전시는 11월11일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에는 쉰다. 평일 주말 공휴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운영으로 오후 8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작가가 제작한 분단인 달력 2019년 5월분을 제공한다. 5000부 한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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