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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2005년 5월 김일성 생가서 '내가 후계자' 첫 공표" 日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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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13 19: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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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조선인민군 전연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10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2019.05.10. (사진=조선중앙TV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 총서기의 뒤를 이을 후계자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표된 시점은 2005년 5월이라는 북한 내부 자료가 발견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3일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김정은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처음으로 공표된 과정에 대해 적은 주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의 학습자료를 입수해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학습자료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은 원수님'이라는 제목으로,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자료의 핵심은 김정은이 2005년 5월 조부인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해 처음으로 자신이 김정일의 후계자라는 결의를 북한 간부에게 공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지금까지 조선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에서는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자료의 하이라이트는 "그날은 보통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 날 경애하는 원수님(김정은)의 만경대 방문은 참으로 막중한 의미를 갖는다"란 대목이다.

2005년 5월 당시 김정은은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의 학생이었다고 한다. 신문은 자료에서 김정은의 만경대 방문을 '막중한 의미'라고 한 것에 대해 혁명의 성지에서 후계자가 될 각오를 분명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경대는 1972년 4월 환갑을 맞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 빨치산 투사와 모여 최초로 후계자 문제를 논의한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자료에는 김정은이 이러한 만경대의 경위에 대해 생각하며 "그 때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위대한 수령님(김일성 주석)을 잃었으며, 항일혁명투사들도 하나 둘씩 사망하고, 젊었던 지휘관들도 머리가 하얗게 변했지만 우리 조국은 여전히 분열돼 있다. 혁명의 종국적 승리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 학습자료는 조총련 산하 주일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중앙상임이사회가 작년 9월 9일 북한의 건국 기념일에 발행한 것으로 같은 해 12월에 제 2판이 나왔으며 평양인쇄공장에서 인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이 자료가 작성된 목적은 조선총련 간부들이 김정은의 인물상 등을 배우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자료 첫머리에 "후계자의 중대한 사명은 특출한 자질과 능력, 풍모를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적혀 있는데, 신문은 이에 대해 경험이 부족한 가운데 세습으로 후계자가 된 것에 대한 불안감 및 의심 등을 불식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후계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표한 시점이 왜 2005년 5월이어던 것일까. 이에 대해 신문은 진상은 불분명하지만,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의 1주기와 관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2004년 5월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암으로 사망한 고영희를 기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다만 김정일 총서기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후계자 옹립 움직임이 가속하는 등 상황은 급변했다. 이로 인해 김정은은 2010년 9월 조선 노동당 대표자회의에 나타나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김정일 총서기는 2011년 12월에 사망했다.

학습자료에는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이 일제강점기 일본군과 싸울 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권총 2자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 교과서에는 조선혁명이 이 두 자루의 권총에서 시작됐다고 쓰여 있는데, 김정은은 만경대에서 이 권총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자료에는 "총은 만경대 가문이 대대로 전달해 이어가는 바톤이다", "나(김정은)도 어릴 적부터 그 총을 혁명의 바톤으로 계승해왔다. 총의 혈통을 이어받아 반드시 통일해, 우리나라를 강성번영 강국으로 만든다.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대를 이어 선군의 깃발을 높이 들고 국가권력을 모든 면에서 강화해 나가야 한다"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에서 공부한 이유에 대해서도 적혀있다.

김정은은 만경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장과 군사령관 중에는 소련의 프룬제 군사대학이나 보로실로프 총참모부 군사대학 출신자가 많은데, 그런 이름있는 군사대학에서 공부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적혀있다.

이어 "(그러나) 나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 주석)은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청년운동을 지도받았을 때, 국제당이 운영하는 공산대학에서 유학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뿌리치고, 우리나라(북한)의 실정에 맞는 혁명노선과 방침을 나타내기 위해 인민들 사이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군님(김정일)도 소련의 모스크바 종합대학에서 공부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 땅에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배우고 조선혁명의 책임있는 주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겨,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것 아니겠느냐”며 자신이 김일성 군사종합대학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학습자료에서는 격렬한 반미 기류도 눈에 띈다. 자료에는 1866년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에 진입한 미국 상선 '셔먼호'를 민중이 격침시킨 사건에 대해, 반격을 주도한 것은 김일성 주석의 증조부인 김응우라고 적혀있다. 학습자료에는 십여년 전 어느날 김정은이 대동강변에 있는 셔먼호 격침 기념비를 찾아 "셔먼호의 침략이 우리나라에 대한 미제의 침략역사의 최초라면, 미제 침략자들에 반대했던 첫 전투의 선봉투사는 김응우 선생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 게이오(慶応)대학의 이소자키 아쓰히토(礒崎敦仁) 준교수(북한정치)는 이 학습자료에 대해 "북한 정치체제의 근간에 관련되는 최고 지도자의 정통성을 당국이 해설한 일급 자료"라고 말했다.


ch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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