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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탈북 모자 사망 또 '사각지대'…704만명, 정말 안 보이나

등록 2019.08.16 18: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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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탈북 모자 사망 또 '사각지대'…704만명, 정말 안 보이나


【세종=뉴시스】임재희 기자 = "손녀는 부양의무자 아니야. 자식 없고 장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돈을 못 내서 (요양원에서) 쫓겨나? 혹시 할머니랑 주소지 같이 돼 있나? 주소지 분리해. 같이 사는 데다가 네가 소득이 잡히니까 혜택을 못 받는 거 아니야. 주소지 분리하고 장기요양등급 신청해."

지난해 티브이엔(tvN)에서 방영한 '나의 아저씨' 속 한 장면이다. "부모님은 계시니"라는 40대 아저씨스러운 질문으로 시작한 이 장면은 1년4개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을 막 시작했던 기자는 30초 남짓되는 이 대사에서 처음으로 '부양의무자'나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제도를 알게 됐다.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주인공도 잊히지 않는다. 사채 갚느라 하루를 통째로 아르바이트에 쓰고도 그런 제도가 있는 줄 몰라 할머니 입원비 고민까지 떠안고 있었다.

이런 이들을 우리 사회는 '사각지대(死角地帶)'라고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사각지대를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대'란 말이 한 몸인 것이다. 즉, 사각에 놓인 건 한두사람이 아니란 얘기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9년도 성과계획서'를 보면 중위소득 50% 이하인 빈곤층은 지난해 906만9560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복지혜택을 받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22.4%인 202만7894명에 불과했다. 단순 계산으로 복지제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704만명이 넘는다.

왜 이런 사각지대가 생기는 걸까.

우선 어떤 제도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에 따라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드라마에서도 나온 '부양의무자'가 대표적이다. 본인이 소득이 없어도 1촌 직계혈족(부모, 딸·아들) 및 그 배우자에게 소득·재산이 있으면 정부가 기초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 숫자만 93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경우 제도를 고치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약속했고 단계를 밟고 있다. 문제는 고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에 달려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몰라서 생기는 사각지대다.

복지제도는 중앙부처 350개, 지방자치단체 약 6390개에 달하지만 제도를 모르면 끝이다. 제도가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지원 대상이 많아 '보편복지'로도 불리고 '과잉복지'라고 욕도 먹는 아동수당(만 6세 미만)이나 기초연금(소득 70% 이하 65세 이상) 모두 신청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도 당사자가 모르는 상황은 안타깝다. 그래서 복지제도는 설계만큼이나 홍보가 중요하다. 복지부는 몰라서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대대적으로 발표도 하고 지난해 12월부턴 전국 3509개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제도를 알아야 할 사람이 몰라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북한이탈주민 여성과 6살짜리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 지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두 달째 수돗물이 끊겼는데도 인기척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긴 검침원과 아파트 관리인에 의해 발견됐다.

제도의 허점을 탓하기란 쉽다. '왜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에는 이들 모자가 살던 재개발 임대아파트 임차료 체납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는지', '왜 건강보험료를 18개월이나 체납했는데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 않았는지' 등은 어떻게 보면 참 쉽게 할 수 있는 지적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타고 올라가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 애초에 '왜 사각지대가 발생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는지'부터 물을 수 밖에 없다. 보편적 복지제도를 '과잉복지'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와야 한다.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자면 이 정도는 골라낼 자신도 있어야 한다.

이들이 굶주려 사망했을 거란 경찰 추정보다 더 참담한 건 이 죽음을 우리가 막을 수도 있었다는 데 있다.

사망한 어머니는 지난해 10월 아동수당을 신청했다. 그 당시면 모든 아동에게 수당을 주기 전이다. 당연히 해당 지자체는 여성의 소득과 재산을 조사했다. 결과는 소득인정액 '0원'. 그런데 주민센터와 관악구청 등은 아동수당 지급 결정만 하고 말았다. "아동수당 신청이 폭주해 경황이 없었다"는 게 해당 지자체 설명이다.

제도 연계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단계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약자가 물어물어 아동수당을 신청하러 왔는데도 놓친 셈이다.

이런 죽음을 '복지 사각지대' 탓으로 돌려도 괜찮은 걸까. 이럴 때 사각지대란 표현은 '나는 몰랐다'고 당당하게 고백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난의 화살을 피해 숨는 도피처가 아닐까.

기자 또한 그랬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사각지대 때문이네"라고 떠올린 게 전부였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깨달았다. 아동수당 기사를 쓰면서 '행정비용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던 소득·재산조사가 누군가에겐 사회 안전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생명줄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기자 역시 '사각지대'란 표현에 숨고 싶어졌다.

"그런 것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냐?"

앞에서 언급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장면 끝에 이런 대사가 더 있었다는 건 1년4개월이 지나 다시 클립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 대사까지 기억 못 한 까닭은 저 드라마를 볼 당시 기자의 위치 때문일 터다. 지난해 기자는 주인공 편에 서서 '그런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들'을 욕했을 테니까. 보이지 않는 각도란 결국 고개를 돌리고 움직여야만 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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