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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해방 후 친일세력이 왜곡…독립운동 正史로 기록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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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19 18:30:40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 인식' 국내학술대회 열려
"佛레지스탕스 4년 활동했지만 지금도 최고 대접"
"우리는 아직도 친일 문인들 기리는 문학상 즐비"
"의열단, 기록찾아 독립운동사서 정사로 기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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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선의용대 성립기념 사진. 조선 의용대는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 등이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든 독립운동부대다. 이후 조선의용대원 일부는 조선의용군으로, 다른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했다. 2019.06.19. (사진=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열단원들을 재조명하고, 의열단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선의열단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 인식' 국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관련 전문가와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학술대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조선의열단원을 소개하고, 친일경찰의 고문과 탄압을 고증하는 한편 당시 독립운동 활동을 방해한 밀정의 폐해를 고발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조강연을 맡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발제문에서 "(의열단은) 일제강점기 가장 치열하게 왜적과 싸우고도 해방 후 남북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그 행적이 왜곡되거나 주요 인물들이 숙청당했다"며 "의열단과 그 후계 단체들은 이제 100주년을 맞아 정명(正名)을 찾고 합당한 평가를 받아 역사에 정사(正史)로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관장은 '약산 김원봉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등을 저술한 국내 의열단 연구 권위자다.

이어 김 전 관장은 의열단 활동을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견주며, "프랑스는 비록 짧은 4년 동안의 항독(抗獨) 레지스탕스 운동이지만, 전후 그들이 국가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고 곳곳마다 이들을 기리고 전시하는 수백 개의 기념관이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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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 인식' 국내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19.09.19. (사진=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그러면서 "프랑스는 해마다 이들과 유족, 연구자들에게 '레지스탕스상'을 수여한다"며 "우리는 아직도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즐비한 데 비해 부끄럽고 부럽다"고 술회했다.

또 김 전 관장은 "(의열단원들은) 조국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았다. 역사상 보기 드문 결사체였다"며 "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우리 독립운동사는 무척 건조하고, 기백이 없는 민족이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김 전 관장은 "의열단은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냉전과 친일세력이 집권한 긴 세월 동안 금제와 배제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며 "그 자리에 만군(만주군)과 일본군 장교들이 올라앉아 권력을 휘두르고 독립운동사를 왜곡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사의 정사(正史)처럼 읽혀지고 세습됐다"고 지적했다.

김 전 관장은 "그나마 단장 김원봉 정도만 주목되었을 뿐, 창립단원과 나중에 참여한 유명 무명 다수의 단원들은 대부분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며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의 표현대로 '셈해지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고 언급했다.

김 전 관장은 특히 "김원봉 단장에 대해서는 치열한 독립운동은 외면한 채 해방 후 북한에서의 행적을 과대왜곡하면서 욕보인다"며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일생에 들어가 있는 시대의 양(量)을 준거로 해야한다라고 하지 않던가"라고 반문했다.

김 전 관장은 "의열단은 그동안 '기록을 남기지 않는' 조직의 특성상 시기별로 단원들의 정확한 성명과 숫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라도 의열단이 활동했던 중국 각지의 기록을 찾고 증언을 들어 독립운동사의 정사(正史)로 기록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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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 인식' 국내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19.09.19. (사진=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의열단의 규모에 대해서 많게는 1000명에서부터 적게는 100명 안팎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비밀 항일결사라는 이유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경무국 첩보를 보면, 의열단원 숫자를 200명 안팎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영국에 보고된 1923년 SIS 극동지부 보고서는 의열단원을 약 2000명으로 추산하고, 도쿄에도 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미국 여류작가 님 웨일즈는 의열단원이었던 김산을 인터뷰해 쓴 소설 '아리랑'에서 1927년까지 체포돼 처형당한 의열단원이 700명에 달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날 잘 알려지지 않은 의열단원에 대한 재조명도 이뤄졌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김주현 경북대학교 교수, 홍윤정 심산김창숙선생기념관 학예실장, 김형목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신영숙 항일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등이 발표자로 나서 각각 김상옥, 신채호, 김창숙, 박재혁, 박차정 등 의열단원에 대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장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조선총독부의 해외첩보활동을 담당한 경무국 파견원에 대해 발표하고,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김원봉 서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이 교수는 김원봉 서훈과 관련, 독립운동을 했으나 남북 양쪽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현행법에 단서를 붙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한편 추진위는 이번 국내 학술대회에 이어 오는 10월22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의 의열단 활약을 한·중·일 3국 전문가들과 재조명할 계획이다.

앞서 추진위는 지난 7월9일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추진위는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조선의열단과 약산 김원봉, 100년을 기억하다'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추진위는 9~10월 국내 및 국제 학술대회를 가진 뒤, 오는 11월9~10일 의열단 창단일에 맞춰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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