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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구자경 LG 회장, 재계 첫 無故 승계 단행...세대교체 모범 사례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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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2-14 13:57:42
"소임 다했다...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 이끌어야"
창업세대 원로 경영진과 동반 퇴진하며 세대교체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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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 LG
[서울=뉴시스] 김종민 기자 =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재계의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LG를 이끈 경영인으로서 보여준 성과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에게 물려주어 대한민국 기업사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또 인재양성을 위한 사회 공익활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스스로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신 자연을 벗삼아 간소한 여생을 보내며 은퇴한 경영인으로서의 삶으로도 재계에 귀감이 되며, 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1995년 2월, LG와 고락을 함께 한 지 45년, 회장으로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되며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아직 은퇴를 거론할 나이가 아닌 시기에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결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당시 WTO체제의 출범 등 본격적인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글로벌화를 이끌고 미래 유망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에 앞서 사장단에게 “그간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 왔고 그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으며,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퇴임 의사를 표명했다.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장에서 구 명예회장은 “돌이켜 보면 행운보다는 고통이, 순탄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던 세월이었지만,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늘 곁에 있었기에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경영혁신에 자발적으로 동참해 준 임직원들의 저력과 노고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명과 감사로 간직하게 될 것”이라며,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 이제 공인의 위치에서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되니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서 무상감도 들지만,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구 명예회장은 감회 어린 이임사를 끝으로 임직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식장을 빠져 나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을 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젊은 경영인들이 소신 있게 경영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동반퇴진’을 단행했고, 이러한 모습은 당시 재계에 큰 귀감이 되었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를 결심하면서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배턴 터치가 이루어졌을 때 ‘잘 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경영 승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구 명예회장에게 은퇴는 그가 추진해 온 경영혁신의 일환이었고,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혁신 활동이었다. 그는 훗날 회고에서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되었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후에 구 명예회장은 지인들에게 당시 은퇴할 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섣달을 보내며 나름의 감회를 지니게 되지만 내게는 각별히 다른 의미가 하나 더해진다. 선친의 기일 역시 섣달 그믐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4년의 섣달그믐만큼은 참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때는 이미 마음속의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이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m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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