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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본 한국영화 100년] ④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영화·영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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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2-22 12:23:33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기록, 1956년작 '시집가는 날'
배우 강수연, 베니스서 3대 영화제 최초로 여우주연상
임권택,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서 처음으로 수상
3대 영화제 최고상 최초는 2012년 김기덕의 '피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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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시집가는 날' 스틸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12.22 photo@newsis.com


※ 뉴시스는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최초로 본 한국영화 100년]을 특별기획했다.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의 원형 추적기를 시작으로 △ 최초의 영화스타 변사 △ 최초의 총천연색 영화 △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작 등 최초의 기록들을 심도 있게 추적해 한국영화 100년사를 실감있게 재구성할 것이다.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1919년 영화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한국영화가 100년을 맞았다. 한국영화는 일제 치하, 6·25전쟁, 검열의 시대였던 군사 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명맥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특히 올해에는 한국영화 100년의 결실로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영화의 역사만큼이나 한국영화의 국제 영화제 수상 역사 또한 길다. '최초로 본 한국영화 100년'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자와 수상작들을 소개한다.

◇최초의 해외 영화제 수상,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영화 최초로 외국에서 상을 받은 기록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바로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희극영화상을 수상한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1957).

줄거리는 이렇다. 맹진사(김승호)는 외동딸 갑분이(김유희)를 세도명문 도라지골의 김판서 아들 미언(최현)에게 시집보내게 돼 기뻐 어쩔줄 모른다. 어느 날 한 선비가 맹진사 댁에 묵으며 김판서 아들이 절름발이라고 전하고, 당황한 맹진사는 궁여지책으로 하녀 입분(조미령)을 딸 대신 미언에게 시집보내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사실은 진정한 아내를 맞으려는 김판서 아들의 속임수였다. 입분은 행복해지고 허영에 찬 맹진사 일가는 고배를 마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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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시집가는 날' 포스터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12.22 photo@newsis.com
이 작품은 이풍토색이 강한 민속극으로 유머와 풍자가 자연스럽게 그려진 작품이다. 프랑스 연극을 원용해 한국의 전통적 희극을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집가는 날'의 수상 이후, 배우 김승호가 제7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로맨스빠빠'(감독 신상옥, 1960)로, 제8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박서방'(감독 강대진, 1960)로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수상을 이어 나갔다.

아시아영화제는 1950~1960년대 아시아영화의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역할을 했다. 1954년 동남아시아영화제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이 영화제는 4회부터 '아시아영화제'로 개칭했다.

당시 아시아영화제가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한국영화계는 아시아영화제 참가를 계기로 아시아 영화산업을 시찰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의 산업 기반 조성에 적극 반영할 수 있었다.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서 여우주연상 거머쥔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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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씨받이' 스틸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12.22 photo@newsis.com
강수연은 1987년 개최된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1966년생인 강수연은 4살 때부터 동양방송의 전속 아역 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83년작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손창민과 함께 최고의 아역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강수연은 '아역 출신은 성인 연기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성인 연기자로도 굳건히 성공한다. 1987년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를 시작으로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3회나 수상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은 가히 강수연 원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멜로부터 사회성 짙은 작품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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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씨받이' 포스터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12.22 photo@newsis.com
강수연에게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1986년작 '씨받이'다. 

이조시대 대가집 종손 신상규와 그의 부인인 윤씨와의 사이에 손이 없자 상규의 어머니와 숙부 신치호는 필녀의 딸 옥녀를 씨받이로 간택해 집안으로 들인다. 합방하는 날, 옥녀를 대면한 상규는 옥녀의 빼어난 용모에 반하고 부인 윤씨는 옥녀를 질투한다. 옥녀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상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되자, 필녀는 옥녀를 타이르나 옥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옥녀가 아들을 낳자, 그 아이는 곧 윤씨의 품에 안기고 아기의 얼굴도 못본 옥녀는 떠나야만 했다. 결국 옥녀는 자신의 한많은 생을 죽음으로써 마친다.

강수연은 94분의 러닝타임 동안 소녀에서 한 서린 상실감을 지닌 여자로 성장하는 '옥녀'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임권택 감독은 옥녀 캐릭터를 두고 "나이와 관계없이 엄청난 체험의 세계를 살아낸 캐릭터"라고 말할 정도로 옥녀 캐릭터는 20대 초반의 배우가 연기하기에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배우 강수연을 "천부적 소질, 깊이 있는 매력, 연기를 향한 집념"의 세 단어로 표현한 바 있다.

◇최고 권위의 영화제 칸에서 최초로 상 받은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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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묘동 단성사 영화역사관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임권택 감독이 축사하고 있다. 단성사는 1907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다. 한국인이 제작한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한 곳이기도 하다. 2016년 영안모자 계열사인 자일개발이 인수해 이름을 단성골드빌딩으로 바꿨다. 지하 공간에 1개 상영관과 영화역사관을 조성, 학생들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2019.10.23.chocrystal@newsis.com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장편영화 최초로 상을 받은 때는 2002년대에 들어서다.

다른 3대 영화제인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가 1960년대부터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가리지 않고 한국영화를 초청했던 것과 달리 칸은 비교적 늦게 한국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임권택 감독에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감독상을 안긴 작품은 '취화선'이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 말기의 화가 오원 장승업에 관한 전기영화다. 조선이 외세에 무너지고 서구 열강의 근대 문물이 폭력적으로 한반도를 침략하던 시기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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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취화선' 스틸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12.22 photo@newsis.com

평론가 정성일은 이 영화가 은유적인 의미에서 장승업의 삶과 예술적 성장 과정에 깊이 공감한 임권택 자신의 자서전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장승업은 그림에 대한 체계적 훈련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경지를 이뤄 나갔으며, 그러면서도 어느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의 새로운 경지를 추구했다.

임권택 감독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직후 좌우익 대립에 부모가 연루돼 고향에서 숨막히게 살았다.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가출했고, 거기서 만난 군화장수들을 따라 휴전 직후 서울에 올라온 뒤 충무로에서 제작부로 영화를 시작했다.

황금종려상을 두고 겨루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매회 20편 내외가 초청된다. 황금종려상과 함께 그랑프리(2등상, 심사위원대상), 심사위원상(3등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감독상 등이 걸려있다.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한지 두 해 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로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2007년에는 '밀양'의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2009년에는 박찬욱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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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포스터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19.12.22 photo@newsis.com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해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를 안은 작품은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다. 이 작품은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3대 영화제 다음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 중 하나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로 201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김기덕 감독은 유독 베니스영화제와 인연이 깊은데, 2004년에는 '빈 집'으로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역시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특별 은곰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장선우 감독이 '화엄경'(1994)으로 알프레드 바우어상(시각효과상)을 탔다. 최근에는 2017년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여자연기자상)을, 김보라 감독이 '벌새'(2019)로 수정곰상(제너레이션14플러스)을 받으며 수상을 이어 오고 있다.

올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국은 명실상부 세계 3대 영화제 중 두 군데서 최고상을 받은 국가가 됐다. 베를린영화제에서도 곧 황금곰상의 소식이 전해지길 고대한다.   

<도움말 주신 분=한상언 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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