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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위안부 합의' 각하…이럴려고 4년 묵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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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12-30 18:06:40  |  수정 2019-12-30 18: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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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모욕적이기까지 했던 합의와 발표로 괴로워하셨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각하'라는 답변은 부적합합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 취재를 위해 찾은 수십 명의 기자마저 숨을 죽였다. 추위로 오들오들 떨던 기자들은 한 변호사가 재판소 앞에 서자 순식간에 목소리를 낮췄다. 작은 몸짓도 없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12·28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에 대한 위헌 확인 헌법소원 심판에 '각하' 판정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심리를 종결한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판단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2015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쓴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이후 시작된 할머니들의 고통은 4년 만에 이처럼 허무하게 끝났다. 아니, 고통의 시계는 바로 그 순간 다시 째깍대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을 대리해 헌법소원을 진행한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동준 변호사는 "2015년 기습적 위안부 합의 발표 이후 막막한 상태에서 유일한 희망으로 찾은 게 헌법재판소였다"며 "그들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었음에도, 이날 인권 최후의 보루로써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턱밑에 붙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어 들어갔다. 열댓 명의 기자들은 그의 턱 밑 부근으로 녹음기를 찔러 넣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날 패배한 것은 이 변호사만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조약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며 "그러므로 이 합의로 할머니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고 각하 판단의 취지를 밝혔다. 
 
당시 합의에는 '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지시하는 표현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일본 정부 출연금 규모가 언급되기는 했으나 정확한 금액 및 시기,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2015년의 대한민국 정부는 조약의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합의를 진행해 놓고 위안부 문제를 종결하려 했다는 얘기다.  
    
할머니들은 기껏해야 추상적인 상태에 머무른 합의 때문에 4년이나 모욕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이제 다시는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 됐다. 
 
할머니들이 모욕을 당한 게 고작 4년뿐일까. 할머니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리고 70년 전에도 같은 모욕을 견뎌왔다.
 
민변이든, 국가든, 앞장서 문제점을 지적해야 했던 언론이든 하루바삐 나서 위로를 건네야 한다. 그리고 그 모욕을 해소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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