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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손학규가 저런 취급 받을 분이 아닌데"

등록 2020.02.25 15:17:57수정 2020.02.25 21: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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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이승주 정치부 기자

[서울=뉴시스] 이승주 정치부 기자


 [서울=뉴시스] 이승주 기자 = "오늘 '손규' 취재 가?" 국회 본관 복도를 지나가다 만난 한 보좌관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손규'가 무엇인지 의아해하며 묻는 내게 그는 답했다. "아, 못 들었어? 이제 측근들 마저 완전 학을 떼고 갔다며 이름 '손학규'에서 '학'을 떼서 '손규'라고 부르잖아."

최근 국회 기자들 사이에서 '손규'란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손학규 이름 속 '학'자를 빼버린 단순 말장난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개월 제목과 내용은 같지만 날짜만 달랐던 '바른미래당 내홍' 기사를 수십 건 써온 입장에선 마냥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손학규 대표는 바른미래당 내홍의 중심에 서있었다. 4·3재보궐선거 참패 책임을 물어 당내에서 손 대표 사퇴를 촉구하면서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 쇄신을 위해 퇴진하라는 비당권파와 대표를 지켜야 한다는 당권파의 싸움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손 대표는 여러 번 사퇴를 공언하고 번복했고 이에 '학을 뗐다'며 바른정당계와 안철수계 그리고 손 대표 최측근이란 이들까지 모두 당을 떠났다.

내홍이 가열될수록 인터넷 공간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그를 모욕하는 말들이 넘쳐났다. 시간이 갈수록 심지어 희화화됐다. 정치권에는 '손학규 징크스'가 회자된다. 그가 만덕산 토굴집에서 칩거하다 내려와 정계 복귀를 선언하자 이내 최순실 사태가 불거졌던 때를 시작으로 그가 정치적인 중대 발표를 할 때마다 대형 이슈가 터져 묻히는 것을 일컫는다. 이제 손 대표가 무슨 발표만 하려면 "오늘 또 무슨 사건사고가 터지려나", "만덕산의 저주로군" 하며 조롱하는 식이다. 최근 탈당 러시가 계속될 땐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로고에 손 대표를 합성한 이미지도 돌았다.

이에 막내 기자 때 정치부를 출입했다 지금은 국회 반장으로 돌아온 한 선배가 조심스럽게 읊조렸다. "저런 취급을 받을 분이 아닌데 참 안타까워. 한 때 존경받던 분이었는데." 기자 출신인 한 국회의원도 식사자리에서 "손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 해외에 나갔다 귀국할 때면 늘 그를 찾았었지. 무엇을 경기도에 유치해왔는지 그 얘기를 들으러 다른 기자들도 대동할 정도였는데"라며 기자 시절 만난 손 대표를 회상했다.

실제로 1년여 바른미래당을 출입하며 손 대표를 지켜보니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해되는 면도 있다. 그는 아침 회의나 기자회견이 끝나면 회의장 밖 바닥에 앉아있는 기자들 모두에게 악수를 청한다. 기자들과 오·만찬도 꽤 자주하는 편이고 그 다음 날 하나하나 전화를 돌려 어제 잘 들어갔는지, 숙취는 없는지 안부를 묻기로도 유명하다. 차가운 국회 복도 바닥에 앉아있다 시간에 쫓기느라 앉은 채 이동하는 기자들을 향해 "걸레질한다"고 말한 의원이나 전화를 받기는커녕 질문에 답도 잘 안 하는 다른 대표들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손 대표를 희화화하는 말 중에는 '화수분'이 있다. 당내 갈등으로 손 대표 곁을 누군가 떠나면 신기하게도 이내 그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나온 말이다. 계속해서 손 대표 지지자들이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타나자 항간에는 당 보조금 100억 원을 선심 쓰듯 퍼부은 결과 아니겠냐는 비난도 나온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기자는 손 대표 '화수분'에는 악수와 전화 한 번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젊은 세대 눈에 비친 손 대표는 '나만 대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선배들이 봤던 그 옛날 손학규를 경험하지 않은 평범한 젊은 세대들에겐 근래 정치권에서 보인 손 대표 행보가 곧 손학규이기 때문이다. 24일 손 대표는 결국 민주통합당·대안신당 통합과 함께 대표직을 내려놨다.

손 대표는 미래세대와의 통합, 세대교체를 늘 외쳐왔다. 청년세대와 통합해 바른미래당을 재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실패했다. 뜻을 함께하겠다는 진정성 있는 청년들이 모이질 않아서다. 청년들이 손 대표를 기득권에 연연한 꼰대, 내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불신의 아이콘으로 보는 이상 불가능할테다. 과연 청년들에게 '손규'가 아닌 '손학규'로 불릴 방법은 무엇인가. 그가 정치개혁과 함께 외쳐온 세대교체를 이룰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사퇴를 선언한 손 대표 향후 행보에 달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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