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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고려왕릉 단독연재] ⑫숙종 무덤, 발굴후 국보 유적으로 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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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3-21 12:13:58  |  수정 2020-04-06 11:08:53
2017년 발굴 후 숙종묘로 확정 발표
병풍석 없어 왕릉 단정 어렵다는 지적도
국보유적 지정 후 최근 모습 첫 공개


북한 개성지역에 흩어져 있는 60여 기의 고려왕릉은 오랜 세월 역사의 풍파에 시달리며 능주를 확인할 수 있는 시책(諡冊)이 대부분 분실됐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며 대대적 발굴·정비에 나섰지만 18기의 능주만 확인했을 뿐이다. 남북을 아우른 500년 왕조의 유적이 처참하게 쇠락한 것이다. 이 왕릉들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남북의 역사를 잇는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뉴시스는 분단 75주년을 맞아 머니투데이 미디어 산하 평화경제연구소가 단독 입수한 500여 점의 개성지역 고려왕릉 사진을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의 글과 함께 매주 연재한다. [편집자 주]


12. 부국강병을 꿈꾼 숙종의 영릉(英陵)

2017년 북한은 개성시 선적리에서 고려 제15대 국왕 숙종(肅宗)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을  발굴한 후 이 왕릉이 숙종의 영릉(英陵)으로 확증됐다고 발표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려 제15대 숙종은 1105년(숙종 10년) 10월 기축일에 승하하여 개성 동쪽 송림현(松林縣)에서 장례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송림현이 어디인지가 불분명하다.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위치가 표시돼 있지 않다.
 
1662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조선 현종(顯宗) 3년에 고려 왕릉에 대한 실태 조사를 했는데, 당시 숙종의 영릉에 대해서는 “능토가 훼손되지 않았고, 사면 석물 대부분이 유존하며, 정자각과 곡장 역시 대부분 남아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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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9년 촬영된 북한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무덤인 영릉(英陵) 전경.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또한 조선 후기 순조(純祖) 18년(1818년)에 고려 왕릉 중 능주와 그 소재가 확실한 30기에 표석(表石)을 세우고, 능주를 모르는 왕릉급 능묘에는 번호를 매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10년대에 일제가 고려 왕릉을 조사할 때만 해도 이때 세운 표석이 남아 있었고, 여기에는 ‘고려 숙종 영릉’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기록들을 통해 볼 때 능주와 위치가 불확실한 대다수 고려 왕릉과 달리 숙종의 영릉은 조선 후기에도 어느 정도 관리가 됐고, 정확한 위치 또한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6년에 나온 일제의 발굴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행정구역상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판문리 구정동에 있는 영릉은 심하게 황폐되었고, 봉분의 높이는 약 1.8m, 좌우 너비는 약 2.7m였다고 한다. 능 구역은 협소해졌고, 봉분의 병풍석(屛風石)은 이미 없어졌다. 그 앞에 조선 시대에 건립한 표석이 서 있고, 석인(石人) 2쌍과 석수(石獸) 1쌍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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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1910년대에 촬영된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 전경.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 순조(純祖) 때 ‘고려 숙종 영릉’이라고 써서 세운 능비가 남아 있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2020.03.21. photo@newsis.com (* 위 사진은 재배포, 재판매, DB 및 활용을 금지합니다.)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은 북한학계가 지난 70여 년 동안, 이 왕릉에 주목하지 않았고, 발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2년 발간된 <개성의 옛 자취를 더듬어>에도 고려 왕릉을 소개하면서 숙종의 영릉 위치는 파악한 지 못한 것으로 서술돼 있다. 2017년 북한학계의 발굴이 해방 후 처음으로 진행된 셈이다.

이 무덤은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개성시 선적리 소재지로부터 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나지막한 산 경사면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기 명기(名妓)로 알려진 황진이 묘와 가깝고, 부왕(父王)인 문종(文宗)의 경릉(景陵)에서 남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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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 뒷면 전경. 무덤 뒤에 곡장을 새로 쌓으면서 하늘색 기와를 엎은 것이 이색적이다. 무덤 앞으로는 보이는 도로를 따라 오른쪽(서쪽)으로 조금 가면 도로변에 조선 시대 명기(名妓) 황진이 묘가 있고, 왼쪽(동쪽)으로 가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숙종의 부왕(父王)인 문종(文宗)의 경릉(景陵)이 나온다.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능 구역은 남북 길이 29m, 동서 너비 13m 정도로, 동서 방향으로 놓인 4개의 축대에 의해 구분되는 3개의 구획으로 조성됐다. 이중 북쪽의 1단에는 무덤 칸(묘실)과 봉분 기단시설, 봉분 둘레에 둘러놓은 담장 시설(곡장)이 확인됐으며, 2단과 3단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이 각각 2상씩 동서 6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대칭으로 마주 서 있음이 확인됐다. 일제 강점기 때의 발굴보고서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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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7년 북한은 북한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영릉(英陵)을 발굴하고, 영릉으로 확증됐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발굴 당시의 영릉(왼쪽)과 발굴 뒤 복원된 영릉의 모습이다.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무덤 칸(묘실)은 잘 다듬은 화강석 통돌을 2단으로 쌓아 남북길이 3m, 동서 너비 1.2m, 높이 1.6m로 구성된 반지하식 구조물로 확인됐다. 무덤 칸과 능 주변에서는 몇 가지 유물도 출토되었는데, 금박을 입힌 목관 껍질 조각들과 고려 시대의 청동 숟가락꼭지, 용무늬 암키와 막새와 봉황새 무늬 수기와막새, 용머리 모양 잡상(지붕 장식기와의 일종)조각이 발견됐다고 한다. 해당 유물들에 대해 북측은 “왕릉으로서의 성격과 시기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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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무덤인 영릉(英陵)의 무덤 칸(묘실) 입구.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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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무덤인 영릉(英陵)의 무덤 칸(묘실) 내부 모습.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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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17년 발굴 당시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에서는 ‘청동 숟가락꼭지’, ‘봉황새 무늬 수기와 막새’1, ‘용머리 모양 잡상(여러 신상(神像)이나 수신(獸神)을 조각한 장식기와 '조각’ 등의 여러 유물이 출토됐다. 사진⓵ ‘용무늬 암기와 막새’, 사진⓶ ‘봉황새 무늬 수기와 막새’, 사진⓷ ‘용머리 모양 잡상조각’, 사진⓸ ‘청동 숟가락 꼭지’.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북한학계는 이 유물들을 근거로 이 왕릉이 숙종의 영릉이라고 단정했다. 류충성 영릉 유적조사발굴대 대장은 “영릉으로 보게 된 것은 여기서 나온 봉황새 무늬 막새와 용머리 잡상조각 등이 바로 고려의 왕궁터인 만월대에서 나온 것과 똑 같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남쪽 역사학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민대 한국사학과 홍영의 교수는 “고려 왕릉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12석으로 두른 병풍석인데, 사진상으로 보면 이 무덤에는 병풍석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왕릉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남북의 역사학계와 고고학계가 함께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발굴 후 끝난 후 북한은 고려 왕릉의 조성양식에 맞게 묘역을 정비했다. 2019년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3단에 있던 2개의 석수(石獸)를 1단 봉분 옆으로 옮기고, 봉분 3면에 곡장(曲墻)을 복원한 것이 확인된다. 2단과 3단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을 각각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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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 앞 서쪽에 세워진 문인석과 무인석. 동쪽에 남아 있는 문·무인석보다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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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 앞 동쪽에 세워진 2단의 문인석(文人石, 왼쪽)과 3단의 무인석(武人石).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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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 앞에 남아 있는 동쪽의 석수(石獸).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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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촬영된 사진을 통해 북한이 발굴 후 영릉을 국보 유적 제36호로 새로 지정한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기존에 알려진 북한의 국보 유적 제36호는 동명왕릉이었다.

북한은 최근 발굴된 역사유적을 새로 국보 유적으로 지정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북한은 백두산 기슭에서 발견된 ‘룡신비각’을 2000년대에 국보 유적 제195호로 추가 지정했고, 이후 2010년대에 발굴한 ‘옥도리 고구려벽화 무덤’과 ‘태성리 3호 고구려벽화 무덤’, 2018년 강원도 판교군에서 발굴한 ‘광복사터’, 2019년 새로 발굴한 고려 태조 왕건의 조모 원창왕후의 무덤인 온혜릉과 평양시 강동군 향목리 동굴 등을 새로 국보 유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숙종의 영릉이 국보 유적 제36호로 확인됨에 따라 북한이 단순히 추가만 한 것이 아니라 국보 유적에 대한 재평가에 따라 국보 유적 지정체계를 개편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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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 서쪽 측면 전경.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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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개성직할시 선적리에 있는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 동쪽 측면 전경.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 친조카를 폐위하고 왕에 오르다

영릉의 주인공인 숙종은 1054년 (문종 8)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왕옹(王)이다. 문종의 셋째 아들로 고려 12대 순종, 13대 선종의 동생이다. 그는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과단성이 있고, 오경(五經)·제자서(諸子書)·사서(史書) 등에 해박했다고 한다.

문종의 큰 기대를 받아 “뒷날에 왕실을 부흥시킬 자는 너다”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친조카인 헌종(獻宗)이 어린 나이로 즉위한 지 1년 만에 왕위를 물려받아 1095년에 즉위하였다.

이 시기 고려 사회는 북방에서는 여진족의 세력이 나날이 커지며 급부상하고 있었고, 나라 안으로는 인주(仁州) 이(李) 씨를 필두로 한 외척 문벌 귀족의 부패와 향락으로 인해 사회적 모순이 심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숙종은 문벌귀족인 이자의(李資義) 일파를 제거하고, 조카를 폐위하고 즉위한 뒤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펼쳤다.

오늘날의 서울인 남경(南京) 천도를 추진하고 측근 세력을 양성하는 한편, 우리 역사상 최초로 화폐 유통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다가오는 북방의 풍운에 대비하기 위해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했다. 별무반은 숙종 사후 여진 정벌에 나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105년(숙종 10) 서경(西京)에 순행(巡幸)하여 동명왕묘(東明王廟)에 제사하고, 병이 들어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10월에 수레 안에서 죽으니 향년 52세였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숙종은 임종할 때 자신의 능을 “검약하게 하는 데 힘쓰라”고 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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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려 15대 숙종(肅宗)의 영릉(英陵)에서 멀리 떨어진 밭 가운데 덩그러니 방치된 비석 받침돌. 이것이 원래 영릉에 있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사진=평화경제연구소 제공) 2020.03.21. photo@newsis.com

한편, 헌종은 왕위에서 넘겨준 지 2년 뒤에 14세의 나이로 죽었다. 능 호는 은릉(隱陵)으로, 개성 도성 동쪽에 안장했다고만 전하고,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현재 개성 동쪽에 남아 있는 왕릉 중 능주가 확인되지 않은 개성시 용흥동의 ‘용흥동 1호 무덤’이 은릉일 가능성, 부왕인 선종의 능(‘고읍리 2릉’)이 있는 황해북도 장풍군 고읍리 일대 무덤 중 하나일 가능성을 검토해야 할 듯하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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