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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人터뷰]권인숙 "디지털 성폭력 '지옥문' 열려…n번방에 국정원 수준 대응해야"

등록 2020.04.10 0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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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권력·명예 가까우면 불행해진단 원칙까지 있던 삶"

"모든 걸 바꿔놓은 건 박근혜 정부…그 4년 너무 불행"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고 나이 들며 전문성도 갖춰"

"통합당 반칙에 불가피…과정 문제보다 대의 훨씬 커"

"디지털 세계 성폭력 폭발…큰 책임감 갖고 대처할 것"

"영상 삭제 가장 중요…확실한 전담 기구 만들어야"

"아동·청소년 성적 대상화 만연…'그루밍 방지법' 시급"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09.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한주홍 기자 = 권인숙 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우리나라 여성 인권 분야의 상징적 인물이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알렸고, 이후 성폭력전문연구소 울림 소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을 발돋움시키는 데 기여했다. 

오랜 세월 정치권과는 스스로 거리를 뒀다. 돈, 권력,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려고 했다. 그런 그를 정치의 세계로 불러들인 건 박근혜 정부였다. 박근혜 정부를 보며 느낀 참담함 때문에 2017년에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도 맡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권 후보에게 "스스로 폭력의 피해자로만 살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여성들은 저항하고 외치는 광장의 주인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이번엔 미래통합당이 그를 여의도로 불러들였다. 반칙으로 의회 권력을 장악하려 든 통합당을 좌시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탄생에 일조한 만큼 성공을 위해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 공분을 일으킨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같은 디지털 성폭력은 그의 전문 분야다. 국회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그 스스로 "적합한 시기에 국회로 옮기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다.

9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시민당 당사 인근에서 만난 권 후보는 '5번 더불어시민당'이라고 적힌 파란색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중인 권 후보와 만나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해결책과 이를 위해 정치권이 해야 할 일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권 후보와의 인터뷰 요지다.

- 그동안 기성 정당들의 후보 영입 제안을 거절해왔던 것으로 안다. 이번에 더시민에서 비례 후보로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이렇게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으로 사회에 많이 알려지면서 (주변의) 기대가 컸다. 당시에는 어리고, 전문성도 부족하고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데 세상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선택했다. 그 이후 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등에서 일했지만 전면에 나서는 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돈과 권력, 명예와 가까우면 불행해진다는 원칙까지 세웠다. 이 모든 걸 바꿔놓은 건 박근혜 정부다. 당선 과정부터 제가 믿었던 모든 변화와 역사, 진보가 다 뒤틀려지는 느낌이었다.

박근혜 정권 4년이 너무 불행했다. 더 이상 사회가 이렇게 되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저도 나이를 먹고 나름대로의 전문성도 갖춰졌기에 이제 바운더리(경계선)를 치는 삶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할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돕겠다고 마음먹었고 선대위에도 참여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의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비례 후보로 거의 추천받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한 책임 의식도 있었고, 제가 가진 여성정책 전문가로서의 의제 설정 능력 등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비례 정당이 개정된 선거법의 취지에 어긋나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미래통합당이 반칙을 쓰는 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의회 권력이 무너지는 건 엄청난 일이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시민당의 모태인) '시민을위하여'가 만들어진 과정도 촛불시위 등으로 권력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고 본다. 소수정당이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게 안타깝고 (창당이) 조금 더 명분 있게 진행됐으면 좋았겠지만 과정상의 급박함에서 오는 지적보다는 대의(大義)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 더불어시민당 구성에 대한 평가는.

"전부 전문성이 있는 분들인데 굉장히 열심히 하신다. 가치 지향적 요소가 강하고 대의와 공익을 위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 큰 분들이다. 국회의원이 권력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되기는 어렵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가치가 서 있는 분들이고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라 보기 좋고 다행스럽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09.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09. [email protected]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 성범죄 수위가 점점 더 세지고, 양상은 음지화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10~20대 어린 여성들의 삶에서 최근 4~5년은 디지털 성범죄가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성범죄가 점점 놀이 문화화되고, 산업화 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스스로 알 수 없어 불안해진다. 최근에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등  여러 사건이 있었고 불법 촬영물에 저항하는 여성들이 '혜화역 시위'까지 했지만 우리 사회는 단순히 이를 쫓아가는 수준에 멈춰 있다. 여성혐오를 부추겼던 지난 몇 년간의 사회분위기도 이런 것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성폭력과는 또 다른 면이 많은 디지털 세계의 성폭력이 폭발하면서 거의 지옥의 문이 열린 거다. 큰 책임감을 갖고 이 문제에 대해 대처해나갈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적합한 시기에 국회로 옮기는 게 아닌가 한다."

-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집단 문화화 되는 건 우리사회가 전통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문화가 디지털 성문화와 연결된 측면도 있다. n번방 문제가 터지자 또 다른 방으로 옮겨 이런 일을 벌이지 않나.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조차 생기지 않을 만큼의 수위로 지금까지 대응해온 탓이다. 여성혐오가 얼마나 쉽게 성놀이 문화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공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유치원 시절부터 교육돼야 하는 문제다.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정보 해독력)도 중요하다.

현재 성범죄 대처에 대한 제대로 된 단위, 정부 부처의 국(局) 하나 없는 실정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이야기밖에 안 했는데도 사회가 그 정도의 역할도 해주지 못했다. 그런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의 현실과 여성들의 현실이 너무 먼 거리에 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온라인 세계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체계를 만들어야 하고, 정부 부처가 총합해 단일대오를 만들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시급하게 나서지 않으면 (범죄의) 사이즈가 커지고 더욱 습관화된다. 이 산업을 통해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 피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우선 영상 삭제인데 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영상 삭제 전담팀 인원이 17명에 불과하다. 전혀 대응이 안 되는 수준이다. 거의 국가정보원 수준이 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공조 시스템을 만들고 주도해나가야 한다. 예산, 인력, 능력, 전문성, 국제공조 능력 등이 확실히 갖춰진 기구를 만드는 건 우리 사회가 피해 여성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죽어도 끝나지 않는 성폭력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할 일이 너무 많다.

안타까운 건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본인이 무언가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임을 드러내지 않고 숨게되는 경우가 많다. 힘들더라도 피해를 드러내면 의료, 상담 등 도움과 주변의 지지를 받고 싸움을 주도하며 문제를 객관화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이런 객관화가 어렵고 피해를 내면화하게 된다.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는 너무나 쉬운데 극복을 위한 대응은 어렵다. 이에 대한 준비와 대응을 위한 플랜이 시급하다."

- 우리 사회가 젠더 갈등,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등으로 시끄러웠다. 사회 전반의 인식 자체는 어떻게 평가하나. 

"대법원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이야기할 정도니 사회적 기본은 많이 올라간 것 같다. 직장 내 성희롱 등에 대한 감수성도 올라갔다. 조사해보면 미투가 필요하다고 응답하는 이들이 남녀를 통틀어 70~80% 정도 나온다. 서열문화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등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이에 대한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도 있다고 본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09.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권인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4.09. [email protected]

- 현재의 법은 디지털 성범죄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를 막기에 부족한 수준인가.

"국제적 기준에 거의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특히 의제강간 연령이 이렇게 낮은 나라가 별로 없다. 무조건 높여야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매매와 성적 대상화에 굉장히 관용적인 나라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서는 성을 거래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을 확고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 국회에 들어오면 내고 싶은 1호 법안은 어떤 건가.

"1호 법안은 n번방 사건과 관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가 법안에 거의 담겨 있지 않다. 제가 면밀히 보고 있는 건 그루밍(길들이기) 부분이다.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굉장히 유인(그루밍)이 많은데 이 유인 단계에 대한 법안이 없다. 이미 해외 60개국에서는 유인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그루밍 방지법' 등이 대표적이다. 아동에 접근하고 그루밍을 시도하는 것, 성착취 시도를 하는 것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법에 넣어야 한다."

- 국회의원 여성 비율도 턱없이 낮다. 이에 대한 평가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번에 여성 공천이 12.6%인데 지난 총선 10.7%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진 수치이기는 하다. 하지만 30%는 못 지켰다. 의무화가 아니고 권장사항이기 때문에 그렇다. 비례대표처럼 지역구 역시 일정 비율을 지키지 않으면 공천명부를 받아주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의무화를  강화한다면 확 바뀌게 될 것 같다."

-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시민당이 어느 정도 선전할 거라고 생각하나.

"초기에는 저희를 알리기도 쉽지 않았고 언론들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저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어떻게든 보완하기 위해 소수정당이나 시민대표들을 모은 당이다. 그런 노력들이 조금 더 전달돼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 (지지율이) 한 40% 이상 되었으면 좋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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