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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누구를 위한 '선보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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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6-04 16: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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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배상(賠償)은 불법적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책임지는 것이고, 보상(補償)은 합법적 행위로 생긴 손실을 갚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 금융권에서는 배상도, 보상도 아닌 `선보상‘ 논의가 활발하다.

`선보상’이라는 낯선 표현이 등장한 것은 금융회사들이 사법기관이나 금융당국으로부터 불법·위법 여부를 판단 받기 이전에 피해를 구제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부터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호주 부동산 펀드, 라임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 등이 그 예다. 

이처럼 금융회사들이 과거와 달리 사법적 판단 전에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섰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동안 분쟁 조정이나 민사 소송을 거쳐 손해 배상을 받으려면 장기간이 소요됐다. 긴 분쟁 기간 때문에 법적 다툼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2주년 서면간담회에서 "피해 구제는 분쟁 조정으로 가는 것"이라면서도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배상을 하면 시기적으로 빠를 수 있다"며 금융회사의 선보상을 주문했다.

 하지만 `선보상‘ 논의가 정말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리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보상’은 오히려 판매사들의 책임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 상품 설계 자체의 위법성이 커서 계약을 취소해야 하는 사안조차 투자자들이 더 문제삼지 않는 조건으로 적당한 금액을 지급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속한 구제를 명목으로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절한 배상이 이뤄지지 않을 우려도 있다.또 하나 생각할 부분은 자기 책임의 원칙이다. 고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투자자에게는 고위험이 따라온다. 자본시장법이 금융회사의 손실 보전 약속을 금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예상 못 한 투자 손실이 발생할 때마다 판매사들이 보상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같은 `선보상‘ 사례가 쌓이다 보면 투자상품이 더 이상 투자상품이 아니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시장 질서 자체를 무너뜨려 오히려 `선보상’이 고수익을 추구하는 일부 고액 자산가의 방패막이로 전락할 수 있다.  ’선보상‘은 당장의 투자 손실 보전으로 일부 투자자들을 달랠 수는 있지만 향후 무분별한 투자와 책임 떠넘기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왜 금감원은 `선보상’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을까. ‘선보상’이 자신들의 감독 실패를 감추려는 일종의 ‘선물’이 돼서는 안된다. 무엇이 진정으로 시장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인지 깊게 고민할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silverl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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