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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전 '전기요금 개편' 쉬쉬만 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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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6-12 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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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승재 기자 = 마음에 꺼려서 하지 않거나 피하는 말을 금기어라고 한다. 한국전력 직원들도 최근 들어 꺼리는 단어가 하나 생겼다. '전기요금'이다. 정확히는 올해 상반기까지 내놓으려 했던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다.

전기를 팔아 돈을 남기는 회사에서 이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것은 모순이다. 더군다나 지난해 영업손실이 1조3000억원에 달했고 2년 연속 적자를 냈다면 더욱더 그렇다.

어찌 된 영문인지 따져봐야겠다. 전기요금 체계를 고치려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최종 인가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전기요금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그만큼 좋지 않다. 결국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한전의 전기요금 관련 계획에 줄곧 어깃장을 놓아 왔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했다. 경기가 위축된 가운데 어설픈 전기요금 개편안을 들이밀었다가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기자와 만난 한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말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며 "현재로서는 어떤 방향으로 전기요금 개편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전기요금에 대한 논의는 지난해 여름철 누진제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한전은 2800억원에 달하는 누진제 개편 비용을 부담하면서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체계를 현실에 맞게 고쳐 재무구조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더 싸다"고 주장하면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기요금을 무작정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무구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몇 가지 요금제도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전기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저소비층 가구의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취지와 달리 가구 인원이 적은 고소득층에도 관련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한전은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새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산업용 경부하 요금이 지금과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공장이 심야에 쓰는 전기요금을 덜 받는 제도인데 기업 규모에 따라 적용하는 요금 비율을 조정하면 중소기업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전기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적정한 선을 찾기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야 했다. 한전은 지난해 7월1일 공시를 통해 "전기요금 개편안을 2019년 11월30일까지 마련하고 2020년 6월30일까지는 정부의 인가를 득하도록 함"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지금 분위기로는 오는 28일 열리는 한전 이사회에 관련 안건이 올라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공시는 상장사와 주주 사이의 약속이다. 비록 강제성이 없는 자율공시지만 이를 지키려는 노력조차 없다면 신뢰에 금이 갈 것은 분명하다. 지난 3월 말 기준 한전의 소액주주 비율은 35.48%에 달한다.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지분율도 7.88%이다. 또한 한전은 뉴욕 증권 시장에도 상장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을 받고 있다.

흔히 에너지산업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백년지대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전은 다양한 에너지 정책을 수행하는 국내 최대 공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환율, 유가 등 외부 변수에 따라 한해에 1조씩 손실을 내고 있다면 이는 안보와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할 문제다. 지금이라도 재무구조를 뜯어보고 취약한 부분이 발견되면 이를 보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김 사장은 10년 뒤 한전이 연구개발(R&D)비로만 1조원을 쓸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아직 많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다른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 겨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uss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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