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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회고록의 '역설'…文대통령 '운전자' 노력 부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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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6-23 18:15:45  |  수정 2020-06-29 09:14:40
네오콘 시각 투영 각색된 주장…한반도 정세 악영향 우려
볼턴 "트럼프에 북미회담 취소 건의"…평화 훼방꾼 자인
판문점 남북미 종전선언 고민했던 文…노력 과정 부각도
김준형 "文, 트럼프 만류에 가만히 있었으면 책임 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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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싱가포르 선텍 회의장 양자회담장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안내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인사하고 있다. 2018.11.15.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김태규 기자 =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23일(현지시각) 정식 발간을 앞두고 있는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전회의(NSC) 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을 둘러싼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권력에서 축출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각색된 관점으로 점철된 회고록이 한미동맹은 물론, 급경색된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적 평가가 많다. 한편으론 북한을 선제폭격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볼턴의 시각을 통해, 역설적으로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들이 뜻하지 않게 부각됐다는 평가도 공존한다.

특히 볼턴의 회고록은 스스로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었다는 점을 자인하면서 동시에 문 대통령을 돋보이게 하는 스스로 뜻하지 않았던 '나비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판문점 文 동행 거절" vs 남북미 대화 돌파구 노력

볼턴 회고록 가운데 청와대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대목은 문 대통령을 한반도 문제의 '주변인'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볼턴은 6·12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2018년)과 6·30 판문점 남북미 3자 회동(2019년)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3자 회동을 관철하기 위해 매달렸다는 취지로 서술하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한국·미국·북한 정상들 간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특히 볼턴이 회고록 11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으로 시작된 판문점 남북미 3자 회동 성사 과정 속에서 보여준 문 대통령의 모습을 조롱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문제 인식이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랬으나, 문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3자 회동으로 만들려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나 없이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 영토로 들어오는 것은 옳지 않아보일 것"이라며 군사분계선(MDL)에서 김 위원장을 먼저 맞이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계한 뒤 자리를 떠나겠다는 제안을 했었다고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전날 밤 북측에 제안했지만 북측이 거절했다며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뜻과 경호팀 계획에 따라 DMZ 배웅 뒤 오산 공군기지에서 다시 만나자며 완곡히 거절했었지만 문 대통령이 동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게 볼턴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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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면담을 하고 있다. 2019.07.24. pak7130@newsis.com
문 대통령은 "DMZ 내 오울렛 초소까지 동행하겠다"며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여부는) 그 때 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회의에서 정리된 것과는 달리 문 대통령에게 DMZ까지만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문 대통령이 3차례의 거절 의사에도 3자 회동을 관철시켰다고 회고록에서 집중 서술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마련한 자리를 문 대통령이 굳이 끼어들었다는 취지로 묘사한 볼턴의 의도는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사건건 비핵화 협상을 막으려 했던 볼턴이 북미 대화의 교착 상황을 뚫어보고자 고군분투했던 문 대통령의 노력마저도 폄훼한 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이날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 뉴스공장'에 출연해 "우리 보수 매체가 판문점 3자 회동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오지 말라고 그랬는데 (문 대통령이) 굳이 갔다는 식으로 비판하고, 볼턴도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 땅을 거쳐서 판문점을 가는데 청와대가 가만히 있었어야 했느냐"며 "그것이 훨씬 더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천명한 문 대통령이 마치 북미 대화의 '주변인'으로 머물렀어야 했다는 식의 제한된 역할론을 강요하는 시선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볼턴의 주장과 달리 당일 MDL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맞이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김 위원장을 맞았고, 문 대통령은 그 순간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 머물렀었다. 결과적으로 북미 정상이 회동을 위해 자유의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동선을 택했다.

◇文, 3자 종전선언 노력 흔적…볼턴 '훼방꾼' 역할 자인

이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당시 문 대통령이 겪었을 내적 갈등과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방문 계기로 어떻게든 식어버린 남북미 대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비핵화 협상은 북미 정상 간의 문제로 문 대통령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볼턴, 폼페이오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한 것이 아니었겠냐는 것이다.

즉, 볼턴이 회고록에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트위터에 올리도록 건의했다는 점을 밝히는 등 그동안 주요 순간마다 '훼방꾼' 역할을 자인했고, 문 대통령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회고록에 묻어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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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2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외교부 청사에서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7.24. photo@newsis.com
문 대통령이 이처럼 남북미 3자 회동에 공을 들였던 것은 결과적으로 무산됐던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상기 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냉전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서는 모습을 통해 사실상 '남북미 종전선언'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센토사 합의의 토대 위에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강하게 추진했지만,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중국의 적극 관여로 무산 됐었다. 국제법상 평화협정 체결과 달리 정치적 선언 성격의 남북미 종전선언이라는 안전판을 매개 삼아 비핵화 협상에 동력을 이어가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오늘의 만남을 통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평화 프로세스가 큰 고개를 하나 넘었다는 생각"이라며 "전 세계와 남북의 8000만 겨레에 큰 희망을 줬다"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에 대해서도 평가절하 했다. 볼턴은 "종전선언도 원래는 북한 아이디어인 줄 알았는데 문 대통령의 통일 의제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을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하노이) 회담 일주일 전까지 종전선언을 '언론 점수를 딸 기회'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고 적었다.

'하노이 노딜'의 실패 경험으로 제재 완화 요구 대신 체제안전 보장으로 선회했던 북한이 미국의 불가침 담보를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새롭게 꺼내든 게 아니라 처음부터 문 대통령의 구상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2·28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잠정 합의문에 종전선언의 대가로 북한의 핵·미사일 신고 조항을 넣는 방안을 마련했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영변 핵시설 폐기-대북 제재 완화'를 행동 대 행동으로 맞바꾸려던 기존 합의 조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신고가 추가돼야 하고, 미국은 상응조치로 정치적 선언의 종전선언을 내주겠다는 구상이었다는 의미다.

볼턴의 이러한 구상은 당시에도 계속해서 협상의 문턱을 높여 판을 깨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은 '영변 플러스 알파'로 압박하면서 북한이 보유한 핵·탄도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신고를 조건으로 내걸었었다.

이처럼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상당 부분 접점을 봤었던 종전선언 카드를 살리는 것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중재 방안이었다. 당시 정의용 실장은 이러한 접근 전략을 가리켜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거래)', '얼리 하비스트(조기 수확)'라고 표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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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하고, 내주에 후임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5월22일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주관한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모습. 2019.09.11
◇"文대통령, 형식 등 극적인 접근만"…이벤트 중심 접근 비판 불가피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해법을 고수하며 북미 비핵화 협상판을 깨는 데 주력했던 볼턴이지만 회고록에서 스치듯 지적한 문 대통령의 외교적 접근과 관련해서는 향후 남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서도 나름의 시사점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볼턴은 '하노이 노딜' 이후 한 달 여만에 마련된 4·1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한 내용을 토대로 한 주관적 평가를 회고록에 적었다.

문 대통령이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 판문점과 해군 군함을 제안했다는 내용과 함께 "극적인 결과를 이끌 수 있는 시각·장소·형식에 대한 극적인 접근법이 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또 볼턴은 "문 대통령은 회담 말미에 내가 서울로 돌아가면 북측에 6월12일과 7월27일 사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종합하면 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인 6월12일과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27일 사이 적당한 계기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무대로는 판문점 내지는 해군 군함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역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염두에 둔 제안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볼턴이 "극적인 접근법이 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옮긴 것은문 대통령이 제안했던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는 모두 극적인 효과를 기대한 장치적 요소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 국면에서 북한이 문 대통령을 불신하게 된 배경으로 "기름 발린 말", "눈 앞에 닥친 위기 모면" 등 형식적인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 것과 맥이 닿아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평가도 나온다. 외형적인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본질적인 해결책 중심의 접근이 향후 위기 돌파 과정에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kyusta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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