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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지현 "'조씨고아'팀 버티는건 배우·스태프·관객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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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7-21 14:23:25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정영의 처 역할
코로나 여파로 미뤄지다 지난 19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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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지현. 2020.07.20. (사진 = 지킬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그 약속이 뭐라고. 그 의리가 뭐라고. 그 뱉은 말이 뭐라고."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킬 운명에 처한 비운의 필부 '정영'.

결국 공주와 조씨고아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아기를 자신의 친아들과 바꿔친다. 이를 목격한 정영의 처는 한없이 주저 않는다.

정영의 처를 연기하는 배우 이지현은 유장하게 느껴지는 먼 옛날의 다른 나라 고전을 연기만으로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 시대의 이야기로 붓질해낸다.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고선웅이 각색·연출한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고 연출의 공력으로, 연극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이다.

지난달 2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미뤘고 마침내 지난 19일 공연을 시작했다. 지난달 개막을 앞두고 이지현을 만났으나, 개막이 연기되면서 정영의 처의 답답한 마음처럼 인터뷰 공개도 응어리져있었다.

하지만 공연 시작과 함께 응어리가 풀리듯 인터뷰도 풀려나왔다.

지난 2016년 초연부터 이번 네 시즌까지 함께 한 이지현은 "같이 하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니까, 세월이 덧칠해지면서 작품도 더 묵직해지고 향기가 짙어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자신의 반려묘 '생강'이의 폐에 물이 차 큰 수술을 받았는데,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걸 경험했다면서 "지금까지 슬픈 연기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돌아봤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생강이 수술이 잘 끝났어요. 근본적인 것은 고치기 힘들지만,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큰일을 겪고 나서, 다시 한 번 연기를 돌아보게 됐죠."

자식을 잃어 '마음의 구멍'이 난 정영의 처를 연기하면 그 배우의 삶도 아픈 진동이 가득할 법하다. 고선웅 연출이 특별한 점은 배우가 삶에서 그 역으로 살지 않게 안전장치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 '락희맨쇼'에서 고 연출과 작업한 적이 있는 이지현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통해 그와 다시 작업하면서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과 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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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2020.06.04. (사진 = 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인물로부터 좀 더 저를 지킬 수 있는 방식을 배우게 됐어요. 고 연출님이 '슬픈 역을 맡았다고 한 달 내내 슬픈 감정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의 일상은 무엇이 되냐'고 하셨죠. 배우는 무대와 일상에서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정확하게 만들어놓으면 가능한 작업이라고요."

이지현을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도 올린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도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작년과 올해 공연한 '이게 마지막이야'는 삶의 숨 쉴 공간까지 위협받는 노동자 개개인의 서글픈 초상을 그린 수작이다. 이지현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편의점 직원 '정화'를 연기했다.

이지현은 "올해 코로나19로 많은 분들이 삶의 절벽에 밀리다 보니, 특정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전반적인 노동자 이야기가 됐다"고 전했다.

 "노동운동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심정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잘 몰랐거든요. 이연주 작가, 이양구 연출, 정소은 기획자는 삶 자체가 노동에 많이 들어가 있는 분들이라 많이 배웠어요."

이지현은 경기여고 연극반 출신이다. 당시 시인 이상을 연기하는 등 여고생들이 멋있다고 여기는 역을 도맡아 꽤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대신 홍대 교육학과에 입학, 이 대학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다. 과 생활보다 연극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나날을 보내다, 연우무대에서 활동하는 학교 선배의 제안에 따라 1995년 오디션을 보고 이 극단에 입단했다.

이지현은 "처음에는 꿈꾸던 대학로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뻤어요. 가판대에 표를 팔러 나가고, 길에 나가 벽에 포스터를 붙였죠. 제가 배우로서 재능이 없으면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연극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었어요. 연극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나고 재미가 있었거든요"라고 돌아봤다.

대학로에서 연기력으로 입소문이 나니, 매체에서도 이지현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올해 초 JTBC 드라마 '안녕 드라큘라'에서 소녀시대 멤버 겸 배우 서현과 모녀지간을 연기한 이지현은 딸의 성 정체성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엄마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 '여성서사'를 톺아본 작품으로, 이지현의 내공이 작품을 탄탄하게 만드는데 큰 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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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지현. 2020.07.20. (사진 = 지킬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김다예 PD님에게 참 감사해요. 제가 매체는 초보라서 겁도 많고, 잘할 수 있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단막극이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인물이라 걱정이 많았죠. 상대 배우인 서현 씨를 잘 만난 덕이기도 했죠.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좋은 작업자들을 만난 것이 배우로서 운이죠."

이지현의 인복은 이어진다.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과 박서준·아이유가 뭉친 ‘드림’에 남편인 배우 정승길과 함께 출연한다.

지난 19일 성공적으로 막을 올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도 고 연출뿐만 아니라 그에게 많은 좋은 배우들을 만나게 했다.

초연 때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인물 중 한명인 공손저구를 맡은 배우 임홍식도 그 중 한명이다. 초연의 막바지 어느날 공연을 마친 뒤 임홍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국립극단과 제작진은 남은 공연을 모두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배우·제작진은 마지막까지 남은 공연을 올리는 것이 임홍식을 기리는 길이라고 마음을 모으고, 굿하듯이, 제사를 지내듯이 공연을 올렸다. 이후 공연을 잘 끝낸 뒤 임홍식을 대신해 공손저구를 연기한 유순웅의 집에서 풍등을 올리며 다시 한번 고인을 기리기도 했다.

이지현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팀이 올해 코로나19로 또 위기를 맞았지만 함께 연극하는 배우, 스태프가 있어서 그래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국립극단에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마스크를 쓰고 와주시는 관객분들이 계셔서 감사해요. 연기가 갈수록 어려워 아직까지도 더듬더듬 거리며 하고 있는데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함께 작업하다보니 여기까지 와 있네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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