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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박원순 충격' 상처 뿐인 진영싸움…멈출때다

등록 2020.07.27 18: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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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박원순 충격' 상처 뿐인 진영싸움…멈출때다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증거를 공개해라. 없으니까 못 하는 것 아니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보도에 달리는 댓글 중 하나다. '명확한 물증도 없는데 이런 의혹 보도는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한 네티즌은 SNS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관한 글을 쓰면서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모든 증거는 수사기관에 제출했고, 2차 가해가 우려된다는 피해자 측 설명이 있었음에도 이런 글이 올라왔다.

다른 네티즌은 인터넷상에 "고지가 보인다"며 피해자 신상털기 글을 올리기도 했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추적해서 앙갚음하겠다는 취지의 글도 덧붙였다.

'피해자'라며 서울시청 다른 직원의 사진을 SNS를 통해 퍼 나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난무하는 와중에 다른 편에선 박 전 시장의 극단 선택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한 유튜버는 박 전 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시청 청사 앞에서 '헬로, 미스터 몽키(Hello Mr. Monkey)'라는 노래를 튼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박 전 시장의 이름 발음이 원숭이와 유사하다는 것을 희화한 것으로 읽힌다.

검은색 상의를 입고 중년의 얼굴을 한 그는 '흥'이 나는 노래 구절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때론 노란 바나나 껍질을 벗겨 먹으며 웃는 모습도 영상에서 목격된다.

강용석 변호사 등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박 전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기 위해 북악산을 올랐고, 그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죽음이 남긴 후유증은 이렇게 컸다. 여론은 접점없이 극단으로 갈렸다.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은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고, 반대편에선 이 기회를 이용해 죽음 조차 희화화했다.

이런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이 남긴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 하고 있고, 피해자 호소를 검증하기 위해 다각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향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통해서도 의혹의 일부가 규명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이 과정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의혹의 당사자인 박 전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진실 규명은 상당히 더딜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린 '무죄추정' 원칙을 거스를 수 없다. 물론, 무죄를 추정한다는 이유로 피해 호소를 '무고'로 의심해서도 안 될 일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론의 갈등이 소모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국민이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결과를 지켜보자는 취지다.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무턱대고 박 전 시장을 조롱하는 이들도 모두 아무 의미도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만 남기고 있다. 이젠 멈춰야 할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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