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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무주택자들의 '공포'와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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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8-10 14: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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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공포 때문에 집을 산다는 30대. 이른바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이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황 구매 현상을 들여다 보면 또래 집단 내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30대의 절박감 내지는 조급증이 읽힌다. 바로 세대 내 양극화 문제가 그것이다.  

친구는 부모님 덕에 서울에 아파트가 있는데, 나는 집은 커녕 전세금 월세금 내기도 벅차다는 박탈감, 서울은 고사하고 수도권에도 집 한채라도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자괴감, 그러는 사이 서울 집값은 하늘이 뚫린 듯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집 가진 친구의 자산은 불과 몇년새 두배 세배씩 불어나 있다.  

이러다가는 영영 서울에 발을 들여놓기는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친구와의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밤잠을 설친다는 30대가 한  둘이 아니다. 집값 좀 잡아달라고 절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실제 통계를 보자. 법원 등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의 30대 매수인 3만5352명(소유권이전등기 신청 매수인 현황 기준) 중 생애 최초 부동산 구입자는 50.0%(1만7682명)에 불과하다. 30대 생애 최초 구입자는 지난 2013년(60.0%)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30대의 절반이 이미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거나, 가지고 있던 집을 팔아 형성한 재산으로 집을 구입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서울 주택 공급이 충분한 수준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수급은 늘 불안하다. 갭투자(전세보증금을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형태)가 투기냐 아니냐는 해묵은 논쟁을 일단 제쳐 두자.

이미 집이 집을 버는 구조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지금 당장 집을 사지 못하면 뒤쳐진다는 생각이 클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주택 공급이 늘었더라도, 30대의 조급증을 당할 바가 아니다. 집권당의 의원조차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마당에, 아니 앞으로 집값은 더오를 것이라는 게 대세인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서울 중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시장이 상승세를 지속하는 원인 중 하나로 30대의 과감한 매수세를 꼽는 건 당연하다. "내 친구의 집은 서울인데, 내 집은 하늘 아래 어디에 있나?" 30대 무주택자가 조바심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수요자에 필요한 물량을 감당해내기 위한 공급물량은 그리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마는 투기 목적의 수요가 언제든지 시장에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완충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물량, 이런 것들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급한 '완충 물량'은 공급 문제에 대한 정부 인식의 진전으로 보인다. 30대 무주택자의 조바심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 주택 시장은 늘 수요가 넘치지만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지난 2018년 95.9%로 아직도 100%에 미치지 못한다.

수요자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주택이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한창 집 마련에 대한 수요가 강한 30대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무엇보다 주택 수급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수준의 아파트를 적절하게 공급하는 것도 등한시 해서는 안 된다.

8·4 공급대책이 발표되면서 당장 급한 불은 껐다지만, 수급 불안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아파트값 급등을 시장 심리불안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처사다.

'공황 구매'라도 나설 수 있는 30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집을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무주택자는 어떤 단어로 그들의 공포를 표현해야 하나. 이들의 두려움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 없다면, 이들의 절규를 당국이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은다면 집값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고 봐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ijoin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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