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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설움' 충북 곳곳 일제 강요 신사참배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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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8-15 09:38:44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조사 신사 71곳
충북향토사연구회, 시·군별 신사실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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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괴산군 사리면사무소 연못에는 일제강점기 사리신사에서 참배객이 손과 입을 씻는 시설물 데미즈야(手水舎)가 분수대로 쓰이고 있다. 1956년 당시 손근성 면장이 후세에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며 주민들과 함께 이곳에 옮겨 놓았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하도마을에 남아 있는 신사 석물. 2020.08.15. (사진=괴산향토사연구회 제공) 2020.08.15. photo@newsis.com
[청주=뉴시스] 강신욱 기자 = 일제로부터 광복한 지 15일로 75년이 됐지만,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이 또렷이 기억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사(神社·神祠)에 참배했던 일이다.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식민지 조선의 각지에 신사를 건립해 일본의 조상신에게 참배하도록 강요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충북에는 1945년 6월 일반 신사(神社) 3개와 이보다 규모가 작은 신사(神祠) 71개가 있었다. 당시 충북에 읍·면 수가 106개(읍 4, 면 102)였으니 1.5개 읍·면에 1개 꼴로 신사가 건립됐다.

지난해 11월 충북향토사연구회가 주최하고 증평향토문화연구회가 주관한 '31회 충북향토문화 학술대회'에서는 지역별 신사 건립 실태를 조사해 관심을 끌었다.

괴산군과 영동군은 각각 11개 읍·면 모두에 신사가 세워졌거나 건립을 위한 터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동군에는 신사가 모두 건립됐다. 영동읍에는 지금의 영동군청 민원실 자리에, 추풍령면에는 추풍령역 앞에 있었다. 지금도 여러 곳에 당시 신사에 오르는 콘크리트 계단이 남아 있다.

괴산군에는 괴산읍과 사리·연풍·칠성·불정면 5곳에 실제 신사 건물이 지어졌고, 감물·장연·문광·청천·청안·소수면이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았던 것으로 조사했다.

괴산읍에는 서부리 188-5 600주년 기념공원이 신사가 있던 곳이다.

신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석물도 남아 있다.

사리면 방축리 사리우체국 뒤편 야산의 사리신사에 있던 데미즈야(手水舍·참배객이 손과 입을 씻는 시설물)와 석등 등 석물 4점이 사리면사무소와 하도마을에 남아 있다. 데미즈야는 면사무소 연못 한가운데 분수대로 쓰이고 있다.

진천신사는 진천공립보통학교(현 진천상산초) 뒷산에, 충주신사는 문화동 사직단이 있던 사직산에 세워졌다.

이들 신사는 광복 직후 모두 불에 타거나 철거되면서 지금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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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매일신보 1930년 4월9일 자에는 고다마 히데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충주신사에 참배하기 위해 방문한 모습이 실렸다. 이 사진에 보이는 도리이는 현재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세워진 도리이와 같은 형태의 심메 도리이다. (사진=매일신보 캡처) 2010.08.15. photo@newsis.com
이후 이 신사 자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단군전이나 충혼탑 등이 들어서 있다.

1929년 4월27일 허가를 받은 증평신사가 있던 곳에는 1948년 단군전이 세워졌다. 설립자인 김기석씨가 해방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조를 모신 단군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현재 충혼탑이 들어선 청주시 사직동 사직공원, 단양군 단성면 수몰이주기념관 근처 충혼탑 자리가 신사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600주년 기념공원이 조성된 괴산신사 자리에도 1967년 애국선열추모비(일명 삼일탑)가 세워졌다가 2012년 보훈공원으로 이전됐다.

일제가 건립한 신사는 대부분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었다.

학계에서는 입체적 차원의 시각적 지배전략으로 분석한다.

당시 신사에서는 참배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방공단 결성식, 경방단 단기 수여식, 지원병 입소봉고제 등 각종 행사를 열어 일본왕실의 조상신을 모신 성스러운 곳에서 경건한 의식을 거행해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으로서의 결의를 다지도록 한 의도도 내포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식민 통치 정책으로 했음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괴산제일교회 집사 2명을 일주일간 경찰서 구치소에 구금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지난해 '경성신사를 거닐다-일본제국과 식민지 신사'를 펴낸 문혜진 박사는 "식민지 신사도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다. 일제 식민지기 역사바로보기를 통해 식민지 문화, 일본의 우익화 속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식민지 신사에 관한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w6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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