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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스포츠 선수 괴롭히는 악플, 이제는 사라지길

등록 2020.08.21 10: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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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김희준 기자 = 8월 초 배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여자프로배구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고(故) 고유민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가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주요 원인 중에 하나로 악성 댓글이 꼽혔다.

고유민이 세상을 떠난 뒤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는 고유민이 생전에 스포츠 멘탈 코치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의 고유민은 "'네가 배구 선수냐', '내가 발로 해도 그것보다 잘하겠다'는 악플들을 보면 운동도 하기 싫고, 시합도 나가기 싫었다"며 "내가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포지션(리베로)을 맡아서 욕을 먹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악플에 시달렸다면서 "어떤 사람이 '돈 떨어졌다고 배구판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마라'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해당사건 이후 한국배구연맹(KOVO)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이트에 스포츠 기사 댓글 기능 개선을 요청했고, 선수고충처리센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한편 심리치료 및 멘털 코칭 교육을 보강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악성 댓글과 인신공격에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스포츠 뉴스 댓글 금지법을 발의해줄 것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님들에게 요청한다"고 요구했다.

연예 기사처럼 스포츠 기사도 댓글을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네이버와 카카오, 네이트는 모두 스포츠 뉴스 댓글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그동안 참고만 있던 선수들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내야수 오지환은 악플러들에게 적극적인 법률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의지(NC 다이노스), 김현수(LG), 박병호(키움 히어로즈) 등의 에이전시인 리코스포츠도 선수들이 악성 댓글로 괴로움을 호소한다면서 법적 대처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스포츠 선수들이 악성 댓글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악의적인 메시지에 시달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까운 시기만 돌아봐도 지난해 말 남녀 농구 국가대표의 기둥 센터인 라건아(전주 KCC)와 박지수(청주 KB국민은행)가 나란히 악플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성 댓글의 수위는 도를 넘고 있다. 건전한 비판을 넘어 인신공격을 하고, 그의 가족들까지 들먹이며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있다.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 SNS를 통해 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는데 "너희 어머니 임신했을 때 계단에서 밀었어야 했다"고 적혀있었다.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스포츠 스타들은 악플에 대한 대응에 소극적이었다. 악성 댓글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았다가 '팬들을 무시한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까봐 그저 참기만 했다. 선수들은 괴로움을 홀로 감내하느라 마음의 상처는 곪아갔다.

선수들의 소극적인 대응에 악플은 늘어나고, 비난의 수위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까지 치달았다. 이제 선수들의 인권 유린을 지켜만 볼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스포츠계는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 등의 스포츠 뉴스 댓글 폐지 결정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류중일 LG 감독은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 중단에 대해 찬성한다. 나는 댓글을 안 보는 편이지만, 선수들은 아마 보지 않겠나. 댓글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까, 안 될까를 고민해봤을 때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칭찬이나 응원하는 글은 좋지만, 악성 댓글은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몇몇 선수들은 악성 댓글 때문에 아예 기사를 보지 않기도 했다. 악성 댓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선수들이 많아 댓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스포츠 선수들이 악플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또 악성 댓글로 인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포츠 뉴스의 댓글 폐지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악성 댓글 문제의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팬들의 자정 노력이다. 팬들이 팬이라는 이름으로 익명성 뒤에 숨어서 도 넘은 비난을 하는 것이 한 사람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자제하는 것이다.

물론 팬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중요한 존재다. 특히 프로 스포츠는 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팬이 선수의 인격을 모독해도 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지켜봤듯 팬들의 자정 노력에만 의지해 악성 댓글을 뿌리뽑기는 쉽지 않다. 팬들의 자정 노력과 더불어 악성 댓글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악성 댓글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약식기소돼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유민을 비롯한 많은 사례에서 봤듯, 악성 댓글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무거운 범죄다. 일벌백계를 통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선수들을 큰 자산으로 삼는 구단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선수들이 혼자 끙끙 앓다가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멘탈 코칭과 심리 상담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선수가 법적 대응을 원할 경우 법률 자문 등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를 하는 것도 선수들을 악성 댓글에서 보호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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