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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연한' 재정준칙이 걱정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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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9-20 11: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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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 박영주 기자 = "일시적으로 국가채무와 재정수지가 악화되지만, 정부로서는 재정건전성 문제에 경계심을 갖고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국가 재정건전성 얘기만 나오면 반복적으로 하는 발언이다. 지난해 '2020년 예산안'을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했던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나자 관리에 신경 쓰겠다는 취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데 말을 할수록 빚만 늘었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올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840조원에 달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로 치솟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 정부가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위해 7조5000억원의 적자국채를 찍어내면서 국가부채는 또 늘어나게 됐다. 5개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내놓은 지 불과 15일 만이다. 실제 나라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6.1%로 역대 최고 기록을 쓰게 된다. 2022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소득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가 갚아야 하는 돈이니 빚쟁이가 따로 없다.

물론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전 세계가 전염되면서 경기가 위축된 만큼 확장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해를 본 업종,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지원하고 재기를 돕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문제는 정부의 안일함이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어떻게 갚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매년 예산안과 함께 발표된 5년 단위 중기재정계획은, 매번 지켜지지 않았다. 부채에 허덕이면서도 틀린 답안지만 밀린 숙제 하듯 내놓는다.

문 정부는 출범 첫해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38조4000억원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매년 늘려 올해는 111조5000억원을 제시했다.

또 2018년 재정운용계획에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3% 이내, 국가채무비율 40%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발표에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3% 중반 수준, 국가채무비율 40% 중반'으로 기준선을 올렸다. 그러더니 올해는 국가채무비율을 50% 후반 수준으로 또 수정했다. 갈수록 미래 세대에게 나랏빚만 물려주는 꼴이다. 하지만 법·제도에 구속력이 없어 운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관리하기 위해 '재정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한 재정준칙을 이달 말 발표한다고 한다. 뒤늦게마나 재정악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행동에 나서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유연한 재정준칙'을 만들겠다는 소리부터 들린다. 중기재정계획에 대해 공수표를 남발해 온 지금까지의 전력을 감안하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예외 조항이 정부의 안일한 계획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천 냥 빚을 갚는 것은 말 한마디가 아니라 강력한 이행 의지다. 재정준칙의 예외 조항은 최소화돼야 마땅하다. 중기재정계획처럼 반복되는 예측 실패를 마주하기에는 갚아야 할 나랏 빚이 태산이다. 밀린 숙제만 허겁지겁 하다 말 것이 아니라 숙제도 제대로 끝내고, 예습은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gogogir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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