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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조각 삼킨 남수단 글로리아, 세브란스병원서 새생명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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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9-29 11:04:37
약 2.5cm 쇳조각 삼킨 4살 여아
코로나로 막힌 하늘길 뚫고 도착
두 차례 수술 마치고 30일 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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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쇳조각을 삼킨 남수단 4살 여아 글로리아가 세브란스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30일 퇴원한다. 사진은 글로리아와 의료진. (사진=세브란스병원 제공). 2020.09.29.
[서울=뉴시스] 홍세희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하늘길 마저 막혀버린 지난 5월.

약 2.5cm의 쇳조각을 삼켜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국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던 남수단 4살 아이가 세브란스병원의 초청을 받아 한국 땅을 밟았다.

이미 식도를 뚫고 나온 쇳조각은 기관지를 뚫고 대동맥궁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힘든 경우였다. 의료진은 "살이있는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쇳조각을 삼킨 남수단 글로리아 간디(4·여)는 두 차례에 수술을 마치고 30일 퇴원한다.

◇치료위해 남수단에서 이집트까지

29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글로리아는 지난해 7월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통증으로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인근 병원에서 X-ray 검사를 한 결과 가슴에서 쇳조각이 발견됐다.

의사는 내시경으로 쇳조각을 꺼내기 어렵다며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남수단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글로리아 가족을 위해 글로리아 가족이 다니던 교회 성도들과 이웃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항공료와 수술비 12만 파운드(약 920달러)와 1000달러를 마련한 아버지 톰베 간디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수단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단의 병원에서도 수술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술을 해보자고 한 병원에서는 수술로 쇳조각을 꺼내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글로리아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남았다.

수술과 입원비로 쓰고 남은 돈은 200달러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딸의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다. 간디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의료 시설이 갖춰진 이집트로 향했다.

버스로 만 2일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이집트 병원에서도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돈이 없어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두 달간 친척집에 머물던 두 사람은 한국인 선교사가 아픈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인 선교사를 찾았다.

글로리아의 얘기를 들은 선교사는 수술을 위해 이집트의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쇳조각이 수술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자리 잡았다는 이유로 "수술이 힘들다"는 말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글로리아의 소식은 여러 선교사를 통해 세브란스병원에 전달됐고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한국행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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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글로리아의 몸 안에서 꺼낸 쇳조각으로 만든 목걸이. 백원짜리 동전과 크기가 비슷하다. (사진=세브란스병원 제공). 2020.09.29.
세브란스병원과 이집트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출국 날짜만 기다리던 부녀에게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출국 이틀 전 이집트 정부에서 공항을 폐쇄한 것이다. 한국 정부도 모든 단기 입국 비자를 취소했다.

한 달이 넘도록 공항이 폐쇄됐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집트 한국대사관이 취소된 비자를 다시 발급하고, 한국대사관과 이집트 한인회에서 마련한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렇게 5월 5일 어린이날. 글로리아와 간디씨는 한국땅을 밟았다.

◇협진으로 쇳조각 제거, 두 번의 수술로 건강 되찾아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쇳조각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일반 검사로 가늠하기 어려워 AI 기업 코어라인소프트의 도움을 받아 CT 결과를 3차원으로 재건하고 3D 프린팅을 시행했다.

3D 재건 및 프린팅 결과, 쇳조각은 식도를 뚫고 기관지를 밀고 들어가 대동맥궁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칫 대동맥 파열로 이어질 수 있어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 1년 가까이 몸 안에 있던 쇳조각 주변으로 염증도 심했다. 게다가 쇳조각이 기관지를 뚫고 들어가 호흡을 방해해 호흡곤란 증상에다가 식사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박성용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영상의학과,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소아외과, 소아심장혈관외과 등 관련 과와의 협진을 통해 글로리아의 상태를 파악하고 수술 계획을 세웠다.

박성용 교수는 좌측 개흉술을 통해 주기관지를 절개하고 대동맥을 비켜 손상된 조직에서 쇳조각을 무사히 제거했다. 쇳조각은 나사나 볼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와셔(washer)였다.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주기관지의 뒷벽을 완전히 녹였고, 이로 인해 좌측 기관지 대부분이 손상됐으며 기관지 입구가 좁아져 있었다.

글로리아는 수술 후 염증도 줄어들었고 호흡에도 무리가 없었지만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누공이 아물지 않아 1mm 크기로 남아있었다.

박성용 교수와 소아외과 호인걸 교수는 쇳조각으로 녹아버린 기관지 뒷벽을 식도벽을 사용해 새로 만들어 재건했다. 남아있는 1mm 크기의 누공은 기관지 사이 근육을 사용해 다시 봉합하고, 잘려진 2cm 길이의 식도는 당겨서 어어 붙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2 주간의 회복기간을 거쳐 글로리아는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식사도 가능하게 됐다.

박성용 교수는 "쇳조각을 삼키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글로리아가 힘든 수술을 견디고 건강을 되찾아 수술을 집도한 의사로 보람을 느낀다"며 "글로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아버지의 헌신과 글로리아를 위해 함께 치료 방침을 상의하고 헌신적으로 치료해 준 의료진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ong19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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