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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숙환으로 별세...향년 92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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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1-05 19:20:49  |  수정 2021-01-06 15: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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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창열 화백. 사진=현대화랑 제공. 2021.1.0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이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과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상징하는 천자문을 캔버스에 섬세하게 쓰고 그리며, 회화의 본질을 독창적으로 사유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1929년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명필가였던 조부에게 천자문과 서예를 배웠고, 훗날 '회귀' 연작을 통해 그러한 기억을 작품에 녹여 냈다. 어린 시절 서예와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했으며, 중학생 2학년 무렵에는 가족에게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1946년, 서울로 내려와 먼저 월남한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근 일 년 동안 서울의 월남민 피난 수용소에서 지냈다. 이듬해, 사설 미술학원인 경성미술연구소에 등록하고, 이어 서양화가 이쾌대가 운영하는 성북회화연구소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로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여 학업을 중단했다. 1952년 경찰전문학교의 속성 과정을 마친 그는 제주도로 파견되어 근무하기도 했다. 이 인연은 2016년 제주도에 김창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개관하는 계기가 됐다.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하며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1963년 서울의 프레스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65년부터 4년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의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Arts Student League)에서 판화를 전공한 그는 첨단의 미술 환경에 적응하며 작품 제작을 이어갔다.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한 후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좀 더 다양한 미술 경향이 공존하는 프랑스 파리로 돌아간다. 이후 프랑스에 정착하여 유럽 각지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개인전과 국제전을 가지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추구했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그에게 물방울은 그저 '물방울' 그 자체였다. 김 화백은 2013년 갤러리현대서 연 대규모 회고전이자 마지막 개인전이었던 인터뷰 당시 "물방울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무색무취한 게 아무런 뜻이 없지. 그냥 투명한 물방울"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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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2019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추정가 1억3000만~1억8000만원(HKD 850,000~1,200,000)에출품된 김창열의 'Water Drops'. oil on hemp cloth,92.0☓73.0cm,1980.

 '물방울'은 가난이 준 선물이었다. 1972년 파리 근교 마구간에서 살았을때다. 화장실이 없어 밖에서 물통을 만들어놓고 세수를 했다. 어느 날 아침, 세수하려고 대야에 물을 담다 옆에 뒤집어둔 캔버스에 물방울이 튀었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뒷면에 뿌려지니까 햇빛이 비쳐서 아주 찬란한 그림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였다.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그 '물방울은 김창열'이 되었다.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에 입선한 이후 본격적인 '물방울 시리즈'가 탄생했다. 1970~1980년대 파리에서 '물방울을 대신할 한국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절제와 겸손함, 그리고 고집스러운 소재의 반복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다니엘 아바디 前 프랑스 쥬 드 폼 국립현대미술관장)

물방울은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80년대부터는 캔버스가 아닌 마대의 거친 표면에, 80년대 중반부터는 마대에 색과 면을 그려 넣어 동양적 정서를 살렸다. 90년대부터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화면 전반에 배치한 ‘회귀’ 시리즈가 탄생한 후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림은 눈속임이다. 멀리서 보면 진짜 물방울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면 물감과 붓질의 흔적만 있다. 그는 평생 물방울을 그리면서 "영혼과 닿을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고 전한바 있다.

50년동안 그림만 그린 화가는 "너절하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고, '너절한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라고 되묻자, "있으나 마나 하는 작가지요"라고 했던 인터뷰는 마지막이 됐다.

'물방울'로 국내외 현대미술을 평정한 고 김창열 화백은 그의 말대로 너절하지 않았다. 물방울 속에 모든 것을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린 것처럼 깨끗했다. '돈이 된 작품' 200점을 제주도에 쾌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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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사진= 제주도청 제공). photo@newsis.com

2016년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지구에 개관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은 자녀에게 물려줄 작품까지 기증해 지어졌다. 타계 후 미술관이 지어지는 것과 달리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을 맞이한 '행복한 작가'였다.

서울 평창동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이어가며 2019년까지 신작을 발표했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과 의리를 지킨 화가다. 1976년 첫 전시이후 2013년까지 12회에 걸쳐 현대에서만 개인전을 열었다.  2020년 갤러리현대에서 물방울과 함께 문자의 도입과 전개 양상에 초점을 맞춰 기획한 'The Path(더 패스)'전이 생전 마지막 개인전이 되었다.

생전 김창열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1993), 선재현대미술관(1994), 드라기낭미술관(1997), 사마모토젠조미술관(1998), 쥬드폼므미술관(2004), 중국국가박물관(2005), 부산시립미술관(2009), 국립대만미술관(2012), 광주시립미술관(2014)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 및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등 전 세계 주요 미술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그는 양국의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에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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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창열 화백. 사진=현대화랑 제공. 2021.1.06. photo@newsis.com

평생 물방울에 천착했던 김창열 화백은 단색화 열풍속에서도 '물방울 화가'로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뉴시스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에 따르면 김창열 화백은 지난 10년간 분석한 국내 미술품경매사 낙찰 총액 순위에서 국민화가 이중섭을 넘어 5위에 올라있다. 최고가는 지난 2016년 케이옥션 홍콩경매에서 5억1282만원에 낙찰된 '물방울' (195×123cm)로 1973년 마포에 유채로 그린 그림이다.

유족으로는 프랑스 태생 부인 마르틴 김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며느리 김지인, 캐서린이 있다. 빈소는 고대안암병원 장레식장 3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11시50분. 장지 서울추모공원. 02-927-4404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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