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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조승우, 돈키호테 명불허전…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등록 2021.02.07 09:10:42수정 2021.02.09 18: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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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일 미룬 끝 지난 2일 개막

3월1일까지 샤롯데씨어터

[서울=뉴시스] 조승우의 돈키호테,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중.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승우의 돈키호테,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중.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지난 5일 오후 잠실역.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공연 중인 샤롯데씨어터를 향한 관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보통 평일 공연 시작 시간은 오후 8시였다. 하지만 최근 오후 7시30분으로 앞당겨졌다.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음식점은 영업을 일찍 종료하고, 늦은 밤에는 대중교통 배차 간격도 길다.   

걸음을 재촉하는 관객들의 입술 사이에서 여러 번 '조승우'가 새어 나왔다. 애초 이 뮤지컬은 지난해 12월18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세로 예정보다 46일이나 늦은 이달 2일 개막했다.

첫 예매(비록 취소됐지만)가 지난해 10월이었으니, 4개월 간 이 뮤지컬을 보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관객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간 유튜브 등에서 '맨오브라만차' 영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번 '맨오브라만차' 시즌에서 조승우의 첫 공연은 지난 3일 오후 3시 회차였다. 이날이 두 번째 회차였다.

명불허전, 조승우 돈키호테.

조승우의 '돈키호테'는 명불허전이었다.

'맨오브라마차'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1605년)를 무대로 옮겼다. 종교 재판을 받기 위해 감옥에 끌려 온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쓴 희곡 '돈키호테'를 죄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극중극 형식이다. 조승우는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조승우의 인생을 바꾼 작품으로 통한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누나인 뮤지컬배우 조서연이 공연한 뮤지컬 '돈키호테'를 통해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계원예고 시절 주인공은 아니지만 '산초'역을 맡기도 했다. 당시 지방 순회 공연도 돌았다.
 
[서울=뉴시스] 돈키호테 조승우·산초 이훈진, '맨오브라만차'.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돈키호테 조승우·산초 이훈진, '맨오브라만차'.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맨오브라만차'는 2005년 국내 정식 라이선스 공연했다. 조승우는 2007년 처음 세르반테스·돈키호테를 연기한 데 이어 2013년과 2015년에도 나왔다. 이번에 네 번째 출연이다.

극 초반 세르반테스는 지하감옥 죄수들에게 재판을 받는다. 시인에 배우에 극작가인 그는 생계를 위해 세무관으로도 일한다. '생계형 작가'다. 교회가 막강하던 당시 수도원에 세금을 추징했는데 수도원 측이 그걸 거부하자 교회를 담보로 잡아 재판에 회부됐다. 정식 재판 전 죄수들로부터 먼저 재판을 받게 된다. 다른 죄수는 세르반테스를 "이상주의자, 엉터리 글쟁이, 그리고 고지식한 인간"으로 기소한다.

이후 세르반테스는 변론을 연극형식으로 풀어낸다. 그 내용이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다. 세르반테스는 가발을 쓰고, 수염을 붙인다. 그리고 자신을 '돈키호테'라는 기사로 착각하는 괴짜 노인 '알론조 키하나'로 순식간에 변한다. 꼿꼿하던 조승우의 세르반테스가 점차 허리가 굽은 노인으로 변신할 때, 관객은 돈키호테의 세계로 단숨에 빨려 들어간다.

돈키호테는 무모하다. "나는 돈키호테 / 라만차의 기사/ 운명이여 내가 간다"며 거인으로 착각한 풍차에게 돌진한다. 낡은 주막집을 웅장한 성채로 여기고, 주막집 주인을 영주로 착각해 기사작위를 내려달라고 청한다. 이발사의 대야는 황금투구라고 우기며 빼앗는다.

이 과정에서 조승우의 돈키호테는 페이소스가 짙다. 특히 주막집 하녀이자 창녀인 알돈자를 고귀한 '둘시네아'로 여길 때가 그렇다. 냉소주의자인 알돈자는 돈키호테의 모든 행동에 콧방귀를 뀐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1막 마지막에 보이기 시작한다. 돈키호테는 알돈자에게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소"라고 말한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냐"는 알돈자의 물음에 "오직 주어진 나의 길을 따를 뿐"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부르는 노래가 그 유명한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알돈자의 마음이 점차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라는 노랫말은 뮤지컬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특히 "나의 저 별을 향하여"라며 하늘을 쳐다보는 돈키호테, 아니 조승우의 붉은 눈시울을 본 관객이라면 전율을 느낄 것이다.

돈키호테는 마지막에 현실을 대변하는 '거울의 기사'가 든 거울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 뒤 쓰러져 눕게 된다.

[서울=뉴시스] 세르반테스 조승우·도지사 김대종,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중.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세르반테스 조승우·도지사 김대종,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중.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죽음을 앞둔 키하나는 돈키호테로서 행한 모든 행보가 꿈이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로 인해 삶이 변한 알돈자가 그를 찾아와 "내 이름은 둘시네아"라고 외친다. 돈키호테는 다시 꿈을 꾸고, 그들은 '이룰 수 없는 꿈'을 함께 다시 부른다. 조승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조승우의 모든 동작과 표정이 돈키호테였다. 특히 거울의 신에서 거울을 맞닥뜨릴 때, 충격과 혼돈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배신 등 모든 감정이 그의 얼굴에 있었다. 이후 '이룰 수 없는 꿈'을 다시 부를 때는 초연함과 의연함이 감돌았는데, 도저히 같은 얼굴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최근 온라인에선 조승우가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 입양한 반려견 '곰자'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사진과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그런 인간적인 면모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연구로 이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무대는, 팬들이사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커튼콜에서 조승우의 인장처럼 돼 버린, 오른손 어퍼컷과 함께 공연장이 암흑으로 바뀌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 봐도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지킬앤하이드' '맨오브라만차' 등 2000년대 이미 자신의 대표작인 된 작품들 외에 조승우가 신작에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다. '2010년대 초반 '조로' '닥터 지바고' 그리고 2016년 '스위니 토드' 정도다. 관객들은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새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그럼에도 왜 공연인가

'맨오브라만차'는 코로나19 같은 엄혹한 시대에도 왜 공연을 하고 보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세르반테스는 위기 속에서 연극으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대변한다. 소설 원작에서 돈키호테는 환상에 갇혀 있는 귀족을 풍자하는 캐릭터였지만,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는 이상주의를 갖고 있는 숭고한 영웅에 가깝다.

비참한 현실에 패배와 실패를 맛보면서도, 끝까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명분과 대의 그리고 이성만 중시, 세상에서 소외된 자를 편리하게 배제해버리는 세상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서울=뉴시스] 돈키호테 조승우·산초 이훈진, '맨오브라만차'.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돈키호테 조승우·산초 이훈진, '맨오브라만차'. 2021.02.07. (사진 = 오디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뮤지컬의 마지막. 연극이 끝난 뒤 세르반테스는 종교 재판을 받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간다. 그런 그에게 죄수들의 대표인 도지사는 말한다. "돈키호테가 곧 세르반테스 자네라고 생각되네."

공연은 관객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절망적인 세계 앞에서 함께 절망하고, 사력을 다하고자 하는 희망은 줄 수 있다. 그건 냉혹한 현실에서, 그나마 가쁜 숨을 내쉴 수 있게 해준다. '맨오브라만차'의 또 다른 유명한 대사는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현실에만 매몰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많을 수 있다고 뮤지컬은 이렇게 전한다.

공연계도 점차 희망을 찾고 있는 분위기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 무조건 두 좌석 띄어앉기였으나, 이제 한 좌석 띄어앉기 또는 동반자 간 두 좌석 띄어앉기로 조정돼 그나마 숨통이 틔였다.

이로 인해 개막을 미뤘거나 잠정중단했던 '맨오브라만차' '명성황후' '몬테크리스토' 같은 공연들이 지난 2일 나란히 공연장 문을 열었다. 공연을 생계 수단으로 삼던 이들이 다시 일을 하게 됐다. 

실제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달 26~30일 공연계 매출은 약 7억6500만원에 불과했으나 이달 2~6일 매출은 약 24억6900만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공연계는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공연을 이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맨오브라만차'는 오는 3월1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조승우 외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됐다.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은 뮤지컬스타 류정한과 홍광호도 맡는다. 알돈자는 윤공주·김지현·최수진, 산초는 이훈진·정원영, 도지사&여관주인은 서영주·김대종이 연기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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